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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과학이 바꾸는 장례…녹색장이 뜬다

김세혁 기자 | 2022-05-16 10:08
인생의 마지막에 치르는 의식 장례. 죽음에 관한 것들이 대개 그렇듯, 장례는 꽤 무거운 주제지만 최근 인식이 바뀌면서 절차나 방법 등이 변화를 맞고 있다.

특히 주목 받는 것이 과학을 접목한 친환경 장례, ‘녹색장’이다. 우리나라는 장지 부족으로 화장이 1993년 통계 작성 이후 꾸준히 증가했으나 최근 환경오염 문제가 대두되면서 녹색장들이 차츰 관심을 받고 있다.

녹색장은 최대 1000도 고온에서 시신을 태우는 화장에 비해 에너지 소비가 적고 환경오염이 덜하다. 저탄소를 실현하려는 세계 각국은 화장을 대체할 녹색장 개발을 위해 과학기술과 자본을 대거 투입하고 있다.

■시신 용해하는 수장
수장의 원리 [사진=News Direct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Florida funeral home to employ body dissolving machine'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수장의 원리 [사진=News Direct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Florida funeral home to employ body dissolving machine' 캡처]


현재 주목 받는 녹색장 중 하나가 수장(water cremation)이다. 특유의 친환경성 덕에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미 2017년 수장을 공식 장례로 인정했고 2020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물로 화장한다’는 의미의 수장은 시신을 알칼리용액으로 가수분해해 유해만 남긴다. 시신을 안치한 고압탱크를 알칼리용액(물 96%, 수산화칼륨 4%)으로 채우고 180도로 가열한다.

시신에는 150psi 정도의 압력이 가해진다. 수장이 끝나고 알칼리 용액을 빼내면 탱크 내부에 유해만 남는다. 가루를 낸 유해는 화장한 뼛가루보다 입자가 곱고 설탕같다.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수목장을 치를 수 있다.

수장의 단점은 유족이 받는 강한 충격이다. 녹색장 중에서도 수장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강하다. 인간이 죽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며 수장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고인을 녹인다는 점을 납득하지 못하는 유족이 아직은 훨씬 많다.

■급부상하는 퇴비장(Human Composting)
미국 사회에 퇴비장을 알리고 있는 Recompose사 [사진=Recompose 공식 홈페이지]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사회에 퇴비장을 알리고 있는 Recompose사 [사진=Recompose 공식 홈페이지]


시신을 퇴비로 만드는 장례 방법이다. ‘죽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에 가장 가깝다. 2019년 5월 공식승인에 이어 지난해 5월 퇴비장을 시행한 미국 워싱턴주에는 현재 두 곳의 퇴비장 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퇴비장은 시신을 200gal(약 760ℓ)의 목재 칩이 깔린 탱크에 안치하고 온도를 145~155도로 유지한다. 통풍시설을 갖춘 탱크에는 산소를 지속적으로 공급해 부패를 가속화한다. 필요에 따라 태양열을 추가해 세균이나 미생물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준다.

최대 2주가 지나면 퇴비장이 끝난다. 퇴비로 변한 유해를 인계 받은 유족은 대부분 수목장을 치른다. 심지어 시설에 퇴비를 기부할 수도 있다.

퇴비장의 단점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5500달러(약 607만원)로 비싼 점이다. 참고로 화장에 드는 비용은 우리나라의 경우 관내는 12만원, 관외는 100만원이다. 워싱턴주의 한 퇴비장 시설은 비싼 비용을 고려해 분납도 받고 있다.

퇴비장은 시신을 비료가 되도록 인위적으로 썩게 만드는 점에서 어느 정도 거부감이 있다. 다만 결국 누구나 죽어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추세다. 때문에 2021년 말 기준 워싱턴주에서는 8명이 퇴비장을 치렀고 400명 넘는 대기자가 퇴비장에 동의했다.

■유해를 얼려 분해하는 빙장
Susanne Wiigh-Mäsak은 녹색장의 장점은 물론 거부감이나 윤리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법을 제안한다. [사진=TED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Environmentally friendly burial: Susanne Wiigh-Masak at TEDxStHelier 캡처]이미지 확대보기
Susanne Wiigh-Mäsak은 녹색장의 장점은 물론 거부감이나 윤리문제에 대해 다양한 해법을 제안한다. [사진=TED 유튜브 공식채널 영상 Environmentally friendly burial: Susanne Wiigh-Masak at TEDxStHelier 캡처]


스웨덴 생물학자 Susanne Wiigh-Mäsak이 개발한 장례방법이다. 시신을 동결건조한 뒤 가루처럼 분해하며, 이후 매장하면 1년여 뒤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간다.

빙장은 탱크에 안치한 시신을 -196도의 액체질소로 급속냉각해 결정 상태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후 탱크 바닥을 살짝 흔들면 얼어붙은 시신이 부서지며 가루가 된다. 남은 수분과 이물질을 완전히 제거한 뒤 친환경 상자에 담아 인계한다. 유족은 상자째 매장하고 나무 등을 심어 고인을 기린다.

이 장례는 이미 스웨덴 정부의 정식 승인을 받았고 여러 국가에서도 관심을 얻고 있다. 앞선 장례방법들과 같이 친환경적이라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국토 대비 장지가 부족한 우리나라 역시 매장, 화장과 더불어 빙장을 공식 장례로 인정했다. 다만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제도가 미비하고 시설도 부족해 아직 초보단계에 머물러 있다.

■다가오는 우주시대, 녹색장은 더 뜬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 등 각국의 화성 탐사가 속도를 내면서 인류의 화성 이주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화성에서 눈을 감으면 좋겠다는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50)의 꿈이 언제 실현될지 아무도 모르지만 화성이 제2의 지구가 되는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다.

미국 웨스턴캐롤라이나대학교 법의학 연구팀은 지난해 논문에서 인류의 화성 이주가 실현됐을 때 정착민이 사망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지구와 어떻게 다른 처리 방법이 동원될지 고찰했다.

이 과정에서 뜬 게 우주 녹색장이다. 연구팀에 따르면 일론 머스크가 소원을 이루더라도 지구에서처럼 경건한 장례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구와 환경이 전혀 다른 화성에서는 시신이 부패하지 않는 데다 혹시라도 시신을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하게 될지 몰라서다.

지구에서 사람이 죽으면 시신은 차가워지고(사냉) 중력에 의해 혈액이 쌓이며(시반) 근육은 경직되고 굳어진다(사후경직). 체내 효소의 작용으로 세포가 분해(자기융해)되고, 음식물 소화를 돕던 세균들에 의해 썩기 시작된다(부패). 시신이 변색되거나 부풀어 오르는 것은 자기융해와 부패의 영향이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화성 [사진=pixabay]이미지 확대보기
미 항공우주국(NASA)이 이주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화성 [사진=pixabay]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시신의 부패는 온도와 세균이 핵심이다. 대사에 의해 시신이 분해되려면 적절한 온도가 필요하고 매장했을 때 곤충이나 세균이 활동하는 데도 온도가 필수다.

화성의 온도는 시신이 부패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화성의 평균 기온은 영하 63도다. 게다가 지금까지 관찰한 바로는 화성 지표에는 물이 없을 확률이 높다. 즉 화성에 이주한 인간이 사망하면 시신은 곧장 얼고 건조된다.

세균 활동 역시 지구와 달리 크게 제한된다. 인체가 부패할 때 작용하는 세균은 대부분 호기성, 즉 산소를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화성에는 산소가 없어 혐기성 세균밖에 활동할 수 없으므로 시신이 부패하기 적절하지 않다. 온도가 낮고 물까지 없다 보니 미라화될 가능성이 높다.

연구팀 관계자는 “화성에서 사람이 죽을 경우 시냉과 시반, 사후경직까지는 일어날 수 있다”면서도 “시신의 부패는 거의 진행되지 않고 영하 63℃의 혹독한 추위에 얼어붙고 건조해 마지막에는 완벽한 미라만 남는다”고 설명했다.

영화 '마션'은 화성에서 자원이 얼마나 귀중한 지 잘 묘사했다. [사진=영화 마션 스틸]이미지 확대보기
영화 '마션'은 화성에서 자원이 얼마나 귀중한 지 잘 묘사했다. [사진=영화 마션 스틸]


때문에 연구팀은 미라로 변화한 시신을 땅에 묻어도 오래도록 부패하지 않고 남아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장례의 의미가 퇴색한다고 지적했다. 화성의 토지 재사용이 불가능하다고 가정할 때 묘지를 만들더라도 상당히 계획적이어야 한다.

화장을 하기도 어렵다. 시신을 500도 이상 고온으로 몇 시간 태워야 하는데 화성은 자원이 극히 한정된 곳이므로 시신 처리를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캡슐에 시신을 담아 지구까지 운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구팀은 “화장이 가능하더라도 바이오매스(생물로부터 얻는 재생 가능한 자원)가 상실된다는 단점이 있다”며 “지구의 시신 부패 과정 자체가 인체 바이오매스를 환경으로 돌려보내는 완벽한 재활용인데, 자원이 부족한 화성의 경우 이런 바이오매스를 적극 이용해야 할지 모른다”고 예상했다.

즉 향후 화성 이주민이 사망한다면 지구와 비슷한 온도로 관리된 방에 안치하고 부패시켜 비료나 흙으로 재활용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 유족 입장에선 친환경 장례 수단인 수장(water cremation)이나 빙장(promession)만큼이나 비윤리적으로 여겨지겠지만, 이런 퇴비장(human composting)은 이미 미국의 일부 주에서 승인을 받아 시행되고 있다.

연구팀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곤충이나 균류를 옮겨가 시신을 분해, 최종적으로는 비료나 흙으로 만들어 재이용하는 방법이 실제 고안되고 있다”며 “혐기성 세균의 적응 진화에 대한 연구도 활발해 아무래도 화성의 장례는 지구의 퇴비장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세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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