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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호] 곤충, 그 아름다운 이야기-청띠 신선나비

이신재 기자 | 2022-05-16 10:16
청명(淸明). 이름만으로도 맑고 깨끗하다. 절기에 때맞추어 봄비가 내려주니 미세먼지도, 뿌연 황사도 씻어주어 하늘은 더 맑고 깨끗하다.

예전에는 봄비가 내리면 가장 먼저 논과 밭작물의 생육에 크게 도움을 주는 농사를 떠올렸고, 청명한 봄비 소리에 꽃이 피고 새잎이 돋는 소리를 들었는데 몇 년 전부터는 싱그럽고 상쾌한 공기를 떠올린다.

너무 흔해 고마움을 몰랐던 깨끗한 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여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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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띠 신선나비


생명력이 왕성한 이즈음에는 아침, 저녁으로 꽃이 피고, 새싹이 나오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강원도, 해발 450m 고산 지대에 자리한 연구소라 아직 꽃향기 물씬 나는 봄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쌀쌀한 가운데 봄기운이 충만하다.

꽃으로, 연한 초록의 새로운 잎으로 생명의 기운을 이야기하는 신호가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나비만큼 역동적인 생명체는 없는 것 같다.

종마다 생물 시계가 있어 각각 때를 맞추고 조절하며 살아가지만 월동형 나비를 보면 그저 신비롭기만 하다. 그들은 추운 겨울 방한복 한 벌 없이 숲 속 나뭇잎 밑에서 나비로 지내다 기온이 올라가면 날갯짓을 하며 다시 세상으로 되돌아온다.

네발나비, 뿔나비, 각시멧노랑나비, 청띠신선나비는 나비 상태로 혹독한 영하 25를 견뎌내며 봄에 다시 우리 곁에 나타난다.

며칠 전 청명 즈음에 산속 깊은 곳 신선처럼 은밀하게 살 것 같던, 신령스런 존재인 청띠신선나비와 만나 홀린 듯 봄날 하루해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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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띠 신선나비 애벌레


청띠신선나비의 속명인 Kaniska는 위대한 왕을 뜻하는데 태양의 신(Apollo butterfly)으로 불리는 붉은점모시나비와 함께 이름만으로도 최고 대접을 받는다.

텃세도 심하고 예민해 가까이하기에도 어렵고, 자연에서 채집한 애벌레를 키우다 보면 거의 기생을 당해 제대로 우화시켜 보지 못한 까다로운 나비인데 아주 운 좋게 종일 곁을 지키며 신선과 놀았다

날개를 접은 자태는 영락없이 찢어진 낙엽이나 나무껍질과 흡사해 눈에 잘 띄지 않는 은둔자나 신선 같고, 쇳빛 바탕에 양쪽 날개를 가로지르는 청색의 빛나는 띠가 신비롭게 보이니 청띠신선나비 맞다.

나비 연구가 석주명(1908∼1950) 선생이 이름을 멋지게 지으셨다.

빨대를 내어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빠느라 정신이 없는지 가까이 다가가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약 6개월간 굶주렸으니 주린 배를 채우느라 정말 꿀맛이었을 것이다.

각시 멧노랑 나비이미지 확대보기
각시 멧노랑 나비


사람 입에도 달짝지근한 단맛과 효험 있는 골리수(骨利水)로 알려진 고로쇠의 수액이 청띠신선나비에게도 훌륭한 먹이였다. 2번째 껍질을 벗은 3령 붉은점모시나비 애벌레가 오후 늦게까지 일광욕을 한다. 혹한을 즐기며 쑥쑥 성장해 왔지만 뜨거워지는 지구가 걱정이다.

혹한이 이들의 생존 조건인데 가늠할 수 없이 들쭉날쭉한 온도와 날씨 때문에 어떻게 버틸까? 뜨거운 열과 건조한 여름을 피할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그냥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 ‘어쩌다 나비’는 없다.

네발나비이미지 확대보기
네발나비

너무 흔해 늘 곁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많은 생물이 사라지고 있다. 장난감처럼 갖고 놀던 잠자리와 논에서 내 다리를 물던 물장군이 멸종될 것 같다고? 소똥구리가 없어졌다고? 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이다.

환경부와 협의해 4월 1일을 ‘멸종위기종의 날’로 선포했다. 멸종위기 야생생물이 갖는 의미와 보전 가치 등을 널리 알리고 위험한 고비를 넘겨보자는 의미다. 생명을 보장받지 못하는 멸종위기생물들에 따뜻한 말 한마디, 죽음의 문턱에 있는 이들에게 맑고 푸른 하늘과 희망의 봄을 느끼게 해 주는 일도 잔인한 4월에 우리가 할 일이다.

붉은점모시나비 3령 애벌레.이미지 확대보기
붉은점모시나비 3령 애벌레.

멸종위기종을 연구하면서 개체 수를 늘리고 있고, 보전 연구를 꾸준히 해 학문적인 진보도 많이 이루었지만, 2021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이주 전문가 집단 책자에 14년간 증식·보전을 위해 연구해 온 붉은점모시나비의 성공적인 복원 사례가 실려 뿌듯하다.

세계의 복원 생물학 전문가 그룹의 참고 문헌이 되고, 다양한 응용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더욱 귀하게 느껴지는 붉은점모시나비이다.

글·사진/ 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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