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늘 길에 서 있다.
낯선 길도 겁 없이 걸었고 험한 길도 피하지 않았다. 꽤 긴 길을 걸었지만 여전히 머물지 않는다. 하나같이 가야 할 길이고 가고 싶은 길이기 때문이다.
“음악이라는 바다가 정말 좋아요. 끝없이 깊고 한없이 넓기에.. ”
음악은 그냥 그대로 삶이었다.
소리는 모두 음(音)으로 들렸고 음은 언제나 춤을 추며 날아왔다. 음표와 건반이 머리를 통하지 않고 바로 눈과 귀로 들어왔다. 대부분의 곡은 첫 소절만 듣고도 피아노로 연주했다.
피아노는 당연한 길이었다. 긴 유학길에 올랐다. 러시아 셍 페터스부르크 국립음대를 거쳐 독일 에센 폴크방 국립음대, 카셀 국립음대를 최고 점수로 입학하고 졸업했다.
독일의 노교수는 동양의 여제자를 후계자로 키우며 수많은 공연장에 올렸다.
피아노는 그러나 길의 끝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보고 자란 아버지의 지휘 모습이 가슴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휘자의 길, 반대가 심했다.
여자가 가기엔 너무 힘든 길이라고들 했다. 애제자를 읽게 된 노교수도 심하게 말렸다. 그러나 갈망이 너무 컸다. 이루기 힘든 꿈을 이루기 위해 막무가내로 덤볐다. 데트몰트 국립음대 오케스트라 지휘 학사, 석사를 마쳤다.
2003년 바흐 음악의 거장인 헬무트릴링의 슈투트가르트 바흐 오케스트라. 합창단 동양 여성 최초 지휘, 빌레벨트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지휘, 쥐트베스트 필하모닉 독일 주요 3개도시 순회연주 등 본고장에서 큰 길이 활짝 열렸다.
하지만 돌아섰다. 고국에서 여성지휘자의 길을 개척해야 했다.
10년. 이제는 우뚝 선 여성 마에스트로 김봉미.
강함을 능히 누르는 부드러움, 다양한 빛깔의 소리와 생동감 넘치는 지휘로 변함없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기공연 때는 보통 오케스트라단이 소화하기 힘든 곡을 반드시 연주한다. 국악과 발라드까지 아우르는 토탈음악을 선보인다. 쉽고 재미있는 해설로 공연장을 흥겨운 잔치마당으로 만든다.
부산에선 청소년을 키우고 인제 시골에선 100인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를 이끈다. 음악에 대한 깊이와 사랑이 있고 관객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있기에 음악으로 감동받고 치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12년만에 여성지휘자에게 처음 입상의 문을 연 2010년 부다페스트 국제지휘콩쿨 심상위원장도 말했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면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김봉미는 아직도 늘 ‘처음처럼’ 무대에 오른다.
공연장을 완전히 자기무대로 만드는 관록.
국내 뿐 아니라 독일, 미국, 중국, 베트남, 태국 등지에서 수백회의 오케스트라, 오페라 공연을 지휘했다.
이력이 날만도 하지만 첫 관객들을 위해서이고 다시 찾은 더 많은 관객들을 위해서이다. 그래서 철저하게 연습하고 완벽하게 곡을 외우는 등 자신에겐 지나칠 정도로 까다롭다.
김봉미는 늘 새로운 음악 길에 서 있다.
/김봉미 지휘자는/
독일 데트몰트 국립음악대학 대학원 오케스트라 지휘 석사
데트몰트 국립음악대학 오케스트라 지휘 학사
독일 에센폴크방 음악대학 대학원 피아노 석사
제5회 대한민국 오페라 대상 지휘상
헝가리 국제 지휘 콩쿨 여성 1위
유나이티드 문화재단 공로상
문화체육관광부 신진여성문화인상
헤럴드필하모닉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
유나이티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단국대 초빙교수
부산대 초빙교수
[이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