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야구계에서 가장 핫한 인사는 단연 허구연 KBO 총재다. 특별히 기념상을 시상하기 위해 간간이 야구장을 방문하곤 했던 예전의 총재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그렇다고 야구장만 가는 것은 아니다. 야구계가 원하고 야구와 관계되는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어디라도 간다.
지난 3월 11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제24대 총재 후보로 추천된 뒤 3월 29일 정식으로 취임한 허구연 총재는 스스로 ‘실무형 총재’ ‘한국 야구 구원투수’라고 부른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동시에 야구해설가로 시작해 야구에 관한 한 구석구석을 알고 있어 자리만 지키는 총재가 아니라 현장을 누비면서 문제점이 있는 곳은 직접 해결하겠다는 뜻이 ‘실무형 총재’에는 담겨 있다. 또한 ‘한국 야구 구원투수’라는 말은 그만큼 한국 프로야구가 엄중한 시기라는 뜻이다. 2030 세대들이 야구를 외면하면서 인기가 하락하고 팬들이 줄어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구단, 선수, 지도자들은 왕년의 인기에 매몰돼 지금의 위기 상황을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냉정한 현실 진단이 근저에 깔려 있다.
허 총재가 취임 일성으로 ‘팬 퍼스트’를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허 총재는 취임과 동시에 10개 구단 전 선수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연히 이 편지에도 ‘팬 퍼스트’를 강조했다. 팬 서비스는 적극적으로, 일탈은 특별히 주의를 당부했다. 그러면서 절대로 하면 안 될 4불(不)로 음주운전, 불법도박, 성범죄, 약물복용을 꼽았다. 야구계 선배로서 “선수들이 권리만 챙기고 의무는 충실치 못했다”는 따끔한 충고도 서슴지 않았다.
야구인 출신 첫 총재로 이제 두 달 가까이 지났는데?
- 지금 야구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최근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국민 44%가 ‘프로야구에 전혀 관심 없다’, 23%가 ‘별로 관심이 없다’고 조사됐습니다. 특히 20대의 야구 관심도는 18%에 그쳤고 30대 응답자 51%가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할 정도로 MZ세대들은 야구하고 멀어지고 있습니다. 또 야구가 스포츠산업으로 더 발전해야 하지만 규제는 풀리지 않고. 이러니 구단은 구단대로 어렵고, 구단이 어려워지면 결국 야구 전체에 파급이 되는 거고. 이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그런 명제를 안고 제가 취임을 해 하나하나씩 준비하는데 잠이 안 와요. 걱정이 앞서서. 정말 무서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야구가 외면받는 원인이 있다면?
-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만 생각하고 팬들은 생각하지 못한 탓입니다. 경기장에서는 프로다운 높은 수준의 기량으로 좋은 플레이로 높아진 팬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고 밖에서는 인기 있고 존경받는 선수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하지만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음주운전, 폭행 등 끊임없는 선수들의 일탈이 야구계 전체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것을 프로선수들이 스스로 뼈저리게 느껴야 합니다. 여기에 팬들이 메이저리그를 관전하면서 야구 경기 관전 수준이 엄청나게 높아진 것도 한 원인입니다. 그라운드에서 페어플레이와 스피드업을 통해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도록 선수 모두가 치열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펼쳐야 합니다. 이는 프로선수들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자 책무이기도 합니다.
‘팬 퍼스트’(FAN FIRST)가 ‘트레이드 마크’가 됐는데?
- 너무나 당연한 일을 지금까지 너무 소홀했습니다. 팬이 없는 프로 스포츠는 존재가치가 없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19로 팬이 없는 야구를 하면서 선수, 지도자들이 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으로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팬의 눈높이에 맞춰 프로야구의 수준을 높여 나가야 합니다. 2022시즌 KBO 리그 공식 개막전이 열린 4월 2일 창원NC파크에서 어린이 팬 두 명이 개막을 선언하고 시구와 시타를 했습니다. 지금까지 KBO 총재가 개막 선언을 하던 관례를 깼습니다. 대신 나는 홈플레이트 뒤에 앉아 어린이 팬이 던진 공을 받았습니다. ‘팬 퍼스트’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 첫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경기 운영에도 ‘팬 퍼스트’의 변화가 느껴지는데?
-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직접 팬들이 체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과감하게 실천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면 KBO 리그 수준을 높여 팬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은 당장 실현할 수는 없습니다. 꾸준하게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경기 스피드업이나 비디오판독 시간을 줄이는 것 등은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무시해서 안 될 팬 서비스의 하나입니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공정한 스트라이크존 적용과 경기 시간 단축을 위해 3명으로 운영되던 비디오판독 심판위원을 2명 더 늘여 5명 체제로 진행해 평균 비디오판독 시간을 줄였습니다. 또한 지난 4월 14일 잠실 SSG랜더스와 LG트윈스 경기에서 내야 타구의 파울과 관련해 심판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야기된 팬들의 질책을 겸허히 수용해 지금까지 비디오판독 대상이 되지 않았던 내야 타구의 페어 또는 파울볼의 판정에 대해 5월 3일 경기부터 확대했습니다. 또 국제대회에서 채택하고 있는 연장전 승부치기 도입을 검토하기 위해 퓨처스리그에서 시범운영을 하고 있으며 안타 실책 야수선택에 대한 기록위원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 제도를 신설한 것은 모두 ‘팬 퍼스트’의 일환입니다.
강정호 KBO 복귀를 불허했는데?
- 강정호 문제는 두 가지로 나누어 고려했습니다. 즉 강정호는 2015년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구단과 합의로 선수계약을 임의해지 했습니다. 이는 제재의 의미가 아닙니다. 따라서 임의해지 복귀 신청에 대해서는 허가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단의 선수계약 승인 신청 절차는 이와는 별개입니다. 야구 규약에 따르면 “총재는 리그의 발전과 KBO의 권익 보호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선수와의 선수계약을 승인하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근거해 KBO는 강정호가 세 차례에 걸쳐 음주운전을 해 두 차례에 걸쳐 벌금 100만 원과 300만 원의 형사처벌을 받았고 더구나 세 번째 음주운전 당시에는 교통사고를 일으켰음에도 사고 현장에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고 도주하는 등 죄질이 나쁜 점을 고려해 선수계약을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강정호가 복귀했을 때 프로야구 전체를 바라보는 팬들이 느끼는 실망감이나 배신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또한 ‘팬 퍼스트’로 팬의 눈으로 본 결정입니다.
최근 지자체 단체장들을 잇달아 만났는데?
- 최대한 많은 지방자치단체장과 만날 생각입니다. 시즌 개막전을 창원에서 한 덕분에 가장 먼저 진주에 가서 조규일 시장을 만나 퓨처스리그 훈련시설 건립을 위한 ‘남해안 벨트’ 논의를 했고 박형준 부산시장과는 사직구장 재건축을, 오세운 서울시장과는 잠실구장 재개발 프로젝트인 마이스 사업과 관련해 돔구장 건설 방안을 협의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은 야구 인프라에 실질적인 칼자루를 쥐고 있습니다. 야구장을 하나 제대로 짓기 위해서는 수천억이 필요합니다. 그 돈을 누가 마련할 수 있습니까? 지금까지 기업인 KBO 총재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칫 정경유착의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정치적으로 자유롭습니다. 물론 이쪽저쪽에서 유혹도 받은 적이 있지만 해설하면서 정치적인 소신이나 의도를 밝힌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한눈팔지 않고 야구만 바라보고 지냈습니다. 따라서 단체장들도 만나자고 하면 다른 부담이 없습니다. 프로야구단을 대기업들이 구단을 소유하고 있어 정작 정부나 지자체에 필요한 것이 있어도 요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대신 나서는 것입니다.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팬들을 위하고 야구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나서겠습니다. 특히 야구가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전국 1, 2군 경기장이 있는 지자체에는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달려가 만날 생각입니다.
그리고 KBO 직제를 일부 개편해 대외협력팀을 신설해 전략기획팀과 함께 총재 직속으로 배치했습니다. KBO 리그 발전을 이끌 새로운 정책 발굴과 대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협력 관계는 직접 챙기겠습니다.
3군 사관학교에 야구용품도 기증했는데?
- 야구해설을 하고 있을 때 육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들이 야구 동아리를 만들고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격려금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환영을 받았습니다. 사관학교 교육과정에는 전투체력단련 시간이 있는데 축구와 럭비는 하는데 야구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연간 100만 원밖에 되지 않는 예산으로 장비조차 제대로 갖추기가 어려운 탓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3군 사관학교 야구 활성화를 위해 야구공부터 시작해 포수 장비, 배트, 헬멧 등 3000만 원 상당의 장비를 기증했습니다. 그리고 김광림 윤학길 장종훈 등 은퇴한 레전드들을 지도자로 파견해 야구기술을 전수할 예정입니다. 이는 정식 야구 기술을 익힌 사관생도들이 부임해 군 장병들의 체력훈련 시간을 활용해 야구를 즐기게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야구를 생활화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모두 야구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야구인 출신 총재로 KBO 리그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 중계할 때마다 구단, 감독 코치들에게 지금 야구는 정보, 분석기술 등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고 똑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를 들면 WBC 등에 출전할 때 심지어 이스라엘도 우리 선수들에 대한 자료 다 가지고 있고 강백호 이정후가 어떤 볼을 잘 치고 못 치는가를 모두 알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선수단 전체가 일본의 많이 뒤져있다가 1985년에 삼성이 베로비치 다저타운을 다녀온 뒤 압축성장을 했습니다. 일본이 반복 훈련할 때 우리는 웨이트트레이닝도 하고 여러 가지 기술을 배워 이론을 바꾸었습니다. 이제는 일본이 소프트뱅크 같은 팀들이 문호를 개방하고 국제화를 시켰지만 우리는 KBO 리그 안에서만 복닥복닥하며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만 겁니다. 그러니까 예선에서 떨어지고 올림픽 가서 안 되죠. 그래서 국제화가 필요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스스로 느껴 봐야 합니다.
2년 만에 관중이 정상 입장하고 있는데?
- 올해가 다시 야구 붐을 일으킬 호기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김광현과 양현종이 복귀했지요. 문동주 김도영 박찬혁 이재현 등 우수 신인들도 많이 들어왔죠. 기대만큼 성적을 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야시엘 푸이그처럼 우리 야구팬들에게 잘 알려진 메이저리그 출신도 왔습니다. 한 차례 붐업의 계기가 될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연기되는 바람에 아쉽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호재가 많습니다. 이 기회를 살려 우리 프로야구가 800만 관중을 넘어 1000만 관중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강조하지만 말로만 그치는 ‘팬 퍼스트’가 아니라 팬들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팬 퍼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올해 들어 구단들이 세심한 마음으로 ‘팬 서비스’에 나서고 있어 예년과 견주어 보면 훨씬 나아진 것은 틀림없지만 더 노력해야 합니다. 앞으로 KBO가 주관하는 올스타전이나 한국시리즈에도 ‘팬 퍼스트’가 될 수 있도록 운영 방안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모든 행정력을 집중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시리즈도 관중들이 다 나가고 난 뒤에 선수들끼리 모여 시상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기가 끝나면 3분, 5분 내 구단주들이나 감독, 선수들과 인터뷰를 하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도록 진행을 바꾸겠습니다. 팬들은 바로 이런 구단주 감독 선수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어합니다. 우승 메달을 걸어주고 하는 건 그 뒤에 하면 됩니다. 올스타전도 이렇게 바꾸려고 합니다. 모든 것을 팬 위주로 생각하고 팬을 위해 서비스하는 방식으로 바꾸어 나가겠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에 대해?
- 외국인 선수 첫해 상한액 100만 달러가 적어서 미국에서 좋은 선수들이 오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건 사실이 아니고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내가 마이너리그 코치를 해봐서 아는데 마이너리그 선수들, 트리플A 선수라고 하더라도 그 돈을 벌 수가 없어요. 100만 달러라면 대단한 금액입니다. 여기에다 집, 통역 다 제공하잖아요. 외국인 선수 3명을 쓰는데 우리나라 선수 전체 연봉에 거의 반을 차지할 정도가 됩니다.
그래서 저는 외국인을 쓰지 말자는 게 아니고 쓰되 절대 그게 낮은 금액은 아니다라는 걸 알아야 하고 내 개인적으로는 일본 대만 외에는 모두 풀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즉 일본 대만 외에 중국이나 베트남. 파키스탄 캄보디아 등 이런 나라 선수들은 아무 제한 없이 데리고 와서 육성해라 하고 싶어요. 만약 어느 순간에 베트남 선수가 와서 몇 억을 받게 된다면 베트남에서 가만히 놔둬도 야구를 하게 되요. 그런 식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KBO 위상이 약화 되었는데?
- KBO 위상을 높일 방법이나 구상은 이제 본격적으로 고민을 해야겠지만 KBO는 인사권만 있을 뿐 예산권이 없습니다. 모두 구단이 쥐고 있어요. 그럼 예산을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구단은 경비 적게 쓰고 우승시키는 게 최고의 성과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R&D가 없고 미래에 대한 투자가 없습니다. 당연히 KBO도 여기에 끌려 갈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KBO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단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KBO가 앞장서서 해결해야 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대표적으로 잠실 마이스 문제만 예로 들어보면 지금 야구장은 지하철에서 내려 거의 10분 가까이 걸어서 도착하는 곳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보조경기장이 잠실주경기장 뒤 축구장 보조구장 구석에 가 있어요. 그래서 오세훈 시장을 만나서 나는 절대 이걸 수용 못한다, 무조건 이 장소는 안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거는 구단에서 얘기를 못해요. 땅도 서울시꺼고 마이스 같은 큰 프로젝트에 구단이 어떻게 이야기를 합니까? 구단은 지방자체단체에 절대적인 을입니다. 이제 이런 것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 걸 해결하면 구단들이 “KBO가, 총재가 제대로 일을 하는구나”하고 인정을 하겠지요. 그러면서 KBO의 위상을 높여서 예산권을 확보하고 미래에 대한 투자 등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구해설가로 동남아 쪽 야구 보급에도 앞장섰는데?
- 대한야구협회 강승규 회장 시절에 아시아야구연맹 기술위원장을 맡아 동남아 쪽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가 좀 ‘얌체 같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베이징올림픽 우승, 아시안게임 우승을 하고 아시아야구연맹 회장국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가 아시아야구를 위해서 한 게 아무것도 없어요. 물론 대한야구협회에 돈도 없지만요. 그래서 저는 회장국으로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캄보디아에 야구장 지어주고 베트남 몽골에 야구용품도 보내주었습니다. 이때 제 꿈을 그렇게 정했어요. 인도차이나반도 5개국에 축구의 스즈키컵과 같은 야구대회를 창설하자고요.
태국은 일본이 지원을 많이 하지만 베트남 캄보디아 등 나머지 4개국은 우리나라가 주도해서 야구팀을 만들어 보자고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만수 감독도 동참하고….
우리가 백 년 전에 질레트 선교사가 처음 야구를 보급해 이렇게 발전한 것 처럼 이제는 우리나라가 이들 야구 후진국인 동남아 국가들에게 야구의 씨를 뿌려야 할 때라고 믿습니다.
해설가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 대학 강의하려다가 해설을 시작했는데 이때가 31살이었습니다. 그때 야구 용어는 모두 일본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국제대회 나가서 보면 못 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1982년 프로야구 출범할 때 방송국 워크샵에서 나보고 뭘 하고 싶냐고 물어서 야구 용어를 바꾸자고 했습니다. 모두 일본식인데 이거 지금 못 고치면 영원히 못 고친다, 나는 국어학자가 아니라서 다른 건 몰라도 경기 용어만큼은 우리식으로 고치고 도저히 안되면 미국식으로 그대로 쓰자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고맙게 생각해요. 그 베테랑 아나운서나 PD가 그걸 다 받아들였습니다. 이게 큰 보람입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경기가 있다면?
- 역시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입니다. 전승으로 우승한다는 것도 어렵지만 9회 1사 만루가 됐는데 쿠바에서 가장 강한 구리엘이 나오니까 이게 다 잡았던 걸 놓치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런데 더블플레이로 끝났잖아요. 이건 평생을 두고 못 잊습니다.
그리고 팬들께서 잘못 알고 계신 게 뭐냐면 마지막에 제가 ‘어~~’하고 제대로 말을 못했어요. 그게 뭐냐 하면 이틀 연속 4경기를 중계하는 바람에 분명히 말을 했는데 목이 잠겨서 그냥 방송에서는 ‘어~~’하는 소리만 나온 겁니다. 근데 우리 선수들이 너무 잘해 감격해서 말을 못한 거라고 알고 계시잖아요.
총재로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구단이나 선수들에게 모두 ‘팬 퍼스트’라는 의식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선수들의 기량이 프로답게 높아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팬들, 특히 MZ세대들에게 수준 높은 야구를 제대로 즐기게끔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번에 신설한 ‘MZ위원회’를 통해 MZ 세대들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해 리그 운영, 마케팅 방향성 설정을 할 예정입니다. 팬을 위한 서비스 정신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야구 인프라 확충입니다. 야구 인프라는 야구해설가를 하면서부터 꾸준하게 관심을 기울이며 추진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정치적인 논리에 따라 수시로 변하고 있는 대전구장, 사직구장. 잠실 마이스 등 이런 구장들이 제 임기 동안 착공을 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야구의 국제경쟁력도 높여야 합니다.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우승으로 금메달을 따낸 뒤 세계 최강이라는 착각을 빠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보듯 결코 녹록치 않습니다. 야구도 축구의 A 매치와 같은 교류전이 만들어서 올스타전 기간을 서로 조정해 서로 오가면서 한미전이나 한일전 등 A매치를 창설해 국제화에 나서는 한편으로 야구 붐업도 함께 일으켜야 합니다.
앞으로 KBO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 당연히 팬과 선수 중심으로 가야지요. 죄송한 말이지만 KBO에는 마스터플랜이 없습니다. 도대체 마스터플랜이 없는 조직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중장기 계획을 세워서 몇 년 이후에는 어떻게 되고 아마추어는 어떻게 되고 프로는 어떻게 해서 입장객을 늘여야 하는 등 거기에 맞춰서 투자도 하고…. 아마야구 경우는 구본능 총재 때 일 년에 한 13억 원 정도 주는 기금으로 운영했지 이전에는 거의 빈사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저변 확대가 안 되지요. 따라서 티볼부터 리틀야구, 초중고, 대학교로 피라미드식이 되도록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합니다.
야구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베이징올림픽 우승을 하고 800만 관중이 들어 왔을 때 앞으로 위기가 온다고 여러차례 경고를 했지만 우리 야구인들이 제대로 대처 못했어요. 그래서 선수들은 생각하는 만큼 기량 발전이 더딘데다 각종 사건 사고가 터지고 팬들을 실망시키니까 어찌보면 팬들이 해 주는 사랑을 소화도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배신감을 느끼죠. 그래서 음주운전이나 폭력 등에 대해서는 좀 더 강화시킬려고 합니다. 절대로 운동장 안팎에서 팬들을 실망시키면 안 됩니다. 팬 없는 프로야구 어디 있습니까?
내가 취임을 하기 전에 모든 선수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정말 우리 야구계가 심기일전을 해야 한다. 자각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그걸 이제 총재가 앞장서서 팬들과 소통하고 쌍방통화를 하면서 이해도 시키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팬들에게 사과도 하면서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또 한마디 압축해서 말씀드리면 야구계를 위해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줄어들고 수확만 노리는 사람이 많아졌어요. 그러나 이제부터는 선수부터 야구인들이 돈이 좀 있으면 돈으로 기부를 하고 돈이 없으면 재능기부를 하면서 자기가 받은 것을 좀 돌려주는 그런 것부터 문화로 정착시켜야 됩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 프로야구가 인기가 없어지게 되면 누가 제일 피해를 볼까요? 구단은 안 하면 그뿐입니다. 그런 점들을 이제 잘 인식해서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서 종전과 는 다른 태도와 생각으로 일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대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는 집단과 단체는 도태가 되고 맙니다. 우리가 지금 정상이 아니란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배우고 연구를 하지 않으면 점점 더 멀어집니다. 그러면 당연히 팬도 외면하겠지요. 먼저 현장에서 이것을 느끼도록 총재로서 먼저 노력하겠습니다. 경기장을 많이 찾아 주시고 성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정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