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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 멋과 맛-청와대 길과 효자동

이신재 기자 | 2022-06-07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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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있었다.

아름드리 가로수를 끼고 길게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갈 수 없었다.

길 끝에 청와대가 있었고 주인인 대통령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1968년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턱밑까지 쳐들어온 사건 탓도 있었지만 여하튼 군출신 정권들은 잘 있는 길을 막고 늘 바리케이드를 쳤다. 효자동 주민들은 들락날락할 때마다 검문받았다.

효자동 삼거리에서 청운중학교 바로 밑 팔판동 삼거리, 그러니까 청와대 앞과 청와대 담벼락이 끝나는 곳까지였다.

그 안에 궁정동 안가가 있었다. 그곳은 10.26을 부른 곳이고 유명 여가수와 배우들이 드나들었던 곳이고 우리 모두에게 시바스리갈을 알게 한 역사의 현장이었지만 그날까지 아무도 알지 못했던 곳이었다.

있지만 없었고 없는 듯 있었던 그 길은 1993년 열렸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선 때였다.

그리고 무궁화동산, 청와대 사랑채와 새 모습의 분수대가 들어섰다. 길은 열렸지만 볼 것이 없어서였다.

무궁화동산은 궁정동 안전 가옥 터였다. 길이 열리기 전엔 그곳도 청와대였고 그중에서도 으슥한 곳이었다.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리저리 한 바퀴를 돌면 3백m는 족히 된다. 태극 무늬로 무궁화를 심었고 전국 각지의 야생화 7천여 개와 무궁화, 소나무 등 수목 13종 1,500여 그루가 있다. 박정희 정권 18년을 끝낸 역사를 되짚으며 한 번쯤 걸어볼 만하다.

무궁화동산을 한 바퀴 돌고 건널목을 건너면 청와대 사랑채다. 길이 풀리기 전엔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이었다. 기념관 성격인데 역대 대통령의 발자취를 볼 수도 있고 기념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길이 열리면서 이곳은 시골 노인들의 관광 명소가 되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젊은이와 외국인들도 찾아 들었다. 경복궁 뒷담 길을 걸어 삼청동에 이르는 고즈넉한 산책길이 되었다.

길은 한 번 더 열렸다. 야간 통행 때는 그래도 검문을 받아야 했으나 2017년 6월부터 하루 온종일 완전히 개방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 뒷산을 열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앞길을 활짝 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길 뿐 아니라 경복궁에도 제 모습을 찾아주었다.

경복궁 요지를 차고앉은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였다. 바로 중앙청이었다.

‘치욕의 역사도 역사’라거나 ‘건축물로서의 가치’를 논하며 반대했지만 그것이 민족의 정기를 찾는 일보다 중요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일제의 조선 통치 심장을 경복궁 안에 그대로 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조선총독부는 광화문보다 높았고 넓었다. 그게 뒤에 서 있으면 광화문이 초라해 보였고 그 뒤는 보이지 않았다. 북악산 끝이 겨우 보일 정도였다.

일제는 총독부 본청 건물 옆에 별관을 서너 개 더 지어 경복궁을 완전히 초토화 시켰다. 쇠말뚝 박기처럼 조선의 기를 꺾기 위한 것이니 철거는 당연했고 그래서 일부에선 시원하게 한방에 폭파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 이야기가 다시 나오자 일본은 ‘자신들이 비용을 다 대고 가져갈 테니 철거를 미루어 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노태우 정부 시절이었던 1991년 중앙청 철거가 논의되자 “양국 간에 불행한 역사이긴 하지만 동아시아 근대 건축물 역사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니 보존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했다. ‘메이지 건축 연구회’라는 일본 근대 건축사 연구단체의 망발이었다.

다른 이유로 철거가 진행되지 않았으나 일본의 그 말 때문에 철거론이 대세가 되었다.

중앙청은 일본인들의 한국 관광 필수 코스였다. 그들은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그들의 ‘신나는 역사’를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단칼에 잘라버리고 1995년 8월 15일 광복절 50주년 기념일에 철거 공사를 시작했다.

주돈식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은 철거에 앞서 그 이유를 확실하게 밝혔다.

“우리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 박탈했던 식민 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여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궁 복원 작업과 새 문화 거리 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

그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경복궁이다.

그리고 이제 그 길 끝에 있는 청와대까지 길이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긴 덕분이다. 오랜 세월 ‘구중궁궐’의 대통령 거처가 시민의 휴식 공간이 되었다.

시원한 가로수 길을 따라 청와대를 거쳐 뒷산까지 거침없이 오를 수 있다. 광화문으로 들어가 경복궁을 여기저기 둘러보고 후문 쪽으로 나간 후 돌아서지 않아도 된다. 곧바로 ‘청와대 공원’ 정문으로 들어가고 나와서 출출하면 맛집을 찾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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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을 오른쪽에 끼고 있는 적선동과 효자동은 먹을 곳이 그리 많지는 않다. 길이 막혔던 곳이고 청와대 근처여서 개발이 제한된 탓이다.

경복궁 돌담 맞은편은 그 옛날 영화로도 나왔던 효자동 이발소가 있던 곳. 하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길이 열리면서 여러 집이 들락날락했지만, 이쪽 길엔 최근 젊은이들이 담소를 나눌 카페 형식의 휴식 공간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앞으론 더욱 많아질 것 같다. 그래도 한 끼를 때울 곳은 있고 길을 건너면 지천이다.

경복궁역 3-1이나 4번 출구 근처는 한복 대여 가게가 여럿이다. 한복을 입으면 경복궁 입장이 무료이기 때문이다. 경복궁 무료입장과 추억 쌓기로 젊은이들이 한복을 유행시켰다.

문화재청은 처음 명절날에만 실시했으나 반응이 좋아 1996년쯤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한복은 고궁을 더욱 멋있게 만드는 중요한 배경인데 여행국의 문화 체험을 중요시하는 외국인들까지 가세, 요즘 경복궁 근처는 한복 천지다.

누구의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한 아이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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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한복 대여점 사이의 골목길에 ‘강구 미주구리’ 집이 있다. 물회 정식, 막회, 막회무침이 대표 메뉴고 여름철엔 민어탕, 겨울철엔 곰치탕을 끓인다. 세꼬시는 모두 자연산이라고 했다.

맛집의 기본은 밑반찬. 맛이나 종류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 밑반찬만으로도 밥 한 공기를 거뜬하게 비울 수 있다.

강구는 대게로 유명한 영덕의 대표적인 항구. 아침노을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미주구리는 물가자미의 사투리로 영덕군에선 해마다 ‘미주구리 막회 축제’를 연다.

1997년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 최불암, 최진실, 이경진, 박원숙, 차인표, 송승헌 등이 출연한 드라마로 시청률이 50%를 넘나들었다. 드라마와 함께 더욱 유명해져 대게 철이 아니어도 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체부동, 통인동 등을 양옆에 거느리고 자하문까지 똑바로 올라가는 길이 자하문로다. 강구 미주구리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꺾으면 그 길이다. 잡다한 가게들이 줄 지어 있으나 오래된 명물 노포는 없다.

100여m쯤 오르다 오른쪽 골목길로 들어서면 기와를 얹어 옛날 분위기가 나는 두 집이 있다. 첫눈에 보이는 게 ‘곰솔’이고 맞은 편이 ‘고래(古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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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솔은 그리 비싸지 않은 한정식집이다. 점심과 저녁의 값이 다르다. 점심은 15,000원, 저녁은 20,000원 정도이다. 방으로 꾸며져 있어 가족들이 가긴 좋지만,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의 입맛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돼지고기볶음, 생선구이, 돌김, 전, 된장국 등 여러 가지 반찬이 깔린다. 깊은 맛이 있어 중, 장년층이 많이 찾는다. 통상 효자동이라고 하지만 행정상 공식 명칭은 통의동이다.

이 동네는 동이 여러 개다. 자하문로이고 효자동으로 많이 불리지만 경복궁역에서 청와대, 자하문에 이르는 길은 1.5km 남짓. 하지만 적선동, 누하동, 통의동, 효자동, 궁정동, 팔판동, 청운동, 필운동, 신교동, 옥인동, 통인동, 체부동 등 10여 개 이상의 동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고래는 대문을 마주하고 서있다. 근처의 태진복집보다는 눈에 덜 띄지만 곰솔보다는 잘 보인다.

곰탕, 도가니 수육, 도가니탕, 족탕에 수육 정식, 한정식을 판다. 잘 우려낸 곰탕만 시켜도 영양가도 충분하고 잘 먹었다는 느낌이 든다. 한정식을 베이스로 한 집이어서 기본 차림이 10여 가지다. 전, 무조림, 깍두기, 배추김치, 콩나물, 시금치가 따라 나와 다양하게 먹을 수 있다.

놋그릇 밥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 느낌을 준다. 도가니의 수육 맛도 상당 수준 이상이다.

다시 큰길로 나와 사거리를 지나 조금만 더 가면 길옆에 촌스러운 식당 간판이 보인다. 상호가 ‘해장국 사람들’이고 주종이 삼봉 국밥이다. 하지만 삼봉은 국밥 이름이 아니다. 돼지국밥, 순대국밥, 선짓국밥의 세 가지 맛있는 국밥을 가리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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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 사람들’의 또 한 가지 메뉴는 다슬기탕과 다슬기 무침. 가격 대비 양도 괜찮지만, 맛도 좋다. 진한 푸른 국물이 건강을 보장할 것 같은 느낌이다. 오소리감투, 염통 볶음, 토종 순대, 감자전 등 술안주 용도 별미다.

해장국 사람들이 더 좋은 점은 가격. 얼마 전까지 국밥이 5천 원 선이었다. 그러나 최근 6,500원으로 올랐다.

‘해장국 사람들’의 맞은편이 통인동이고 통인시장이다. 통인시장은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 만 온 사람은 없다’는 광고 문구를 유행시킨 곳. 재래시장이지만 정리를 잘해 놓았고 시장길을 그대로 다 지나면 세종마을이 나와 젊은이들 주말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 잡았다.

보통의 재래시장이었지만 젊은이들이 개업을 하면서 시장 맛집으로 발전시켰다. 입구에서 엽전을 바꾸면 유리하다. 그냥 현금으로 내도 되지만 엽전에는 할인된 가격이 들어있다.

통인시장 ‘음식 특허 1호’는 기름 떡볶이. 간장 양념이든, 고추장 양념이든 일단 기름에 볶는다. 어린이나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딱 맞다. 떡 자체가 기본적으로 쫀득쫀득하다.

통인시장의 길이는 기껏 걸어서 10여 분. 양쪽으로 나뉘어서 한눈에 다 볼 수 있다. 그래도 있을 건 다 있고 어느 집에서 군것질을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어느 집이든 최소한의 맛을 유지하고 있다.

통인시장에서 사거리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청운반점. 이곳에서만 20여 년이고 청운동을 비롯 이 동네에서 50여 년이다. 사장님이 그때도 지금도 변함없이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래된 사람들이 그렇듯 부부가 운영하는 청운반점은 ‘무뚝뚝한 정’이 흐르는 곳이지만 싸고 맛있어서 애 터지게 정을 찾을 필요도 없다. 물만두, 군만두 5,000원, 짜장면 6,000원, 짬뽕 7,000원이다. 우리가 중국집에 가면 흔히 시키는 탕수육, 고추잡채, 양장피 등도 다른 곳보다 조금씩은 싸다.

값도 그렇지만 짜장면은 근동에서 가장 맛있다. 옛날 짜장면의 구수한 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짜장 국물까지 완벽하게 비울 정도가 된다.

사장님은 ‘인왕산 자락에서 긴 세월 긴 면발로 가족이 살고 꿈을 키우고 행복했다’며 ‘푸른 세월 잘 참은 청운반점’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글을 적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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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층의 조그마한 집, 화려하지 않은 간판, 어수선한 주위 탓에 지나가면서도 놓칠 수 있다.

청운반점에서 100m쯤 내려오다 골목 안쪽을 보면 ‘삼다도’ 간판이 보인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 동네 맛집이다. 깨끗한 실내, 정갈한 음식으로 유명한 곳인데 백합찜이 특히 일품이다. 백합은 당연히 맛있고 백합 조개 속에 우러난 국물은 이곳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서너 개의 룸이 있어서 서너 명이 모처럼 회식하기 좋은 곳이다.

코스를 시키면 모든 맛을 다 볼 수 있다. 문어숙회, 고춧가루 양념 꼬막, 삼치구이, 가자미회 무침, 전복구이가 줄을 이은 뒤 마지막에 주인공이 백합찜이 등장한다. 한 개 한 개 은박지에 쌓여 있다.

토속촌 삼계탕은 이 근처에서 가장 유명한 곳. 청와대와 멀지 않아 여러 대통령이 다닌 덕이기도 하지만 원래 이곳 삼계탕 맛은 쉽게 잊지 못한다. 삼계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말끔히 비울 정도. 삼계탕을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도 별 거부감 없이 한 뚝배기를 간단하게 비운다.

집으로 가는 길에 옛날식 전기구이 통닭을 사가도 좋다. 깔끔한 맛이 있다. 워낙 사람들이 들끓어서 끼니때는 언제나 기다려야 한다. 미리 잘 기획해야 기다림 없이 삼계탕을 즐길 수 있다. 주말 오전 10시면 바로 먹을 수 있다. 오골계, 산삼배양근 삼계탕 등이 있지만 그냥 기본 삼계탕이면 된다. 푹 고왔기에 국물이 찐하기는 마찬가지다.

경복궁역 2번 출구는 ‘세종로마을 음식문화 거리’. 입구 아치에 그렇게 쓰여있으나 체부동 맛 골목으로 알려진 곳이다. 세월 따라 조금씩 유행 음식점이 다르고 좋아하는 맛이 달라 가고 오는 음식점들이 많지만 대부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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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중은 20~30대의 회사원, 주말은 40~50대의 등산객이 모여드는데 딱 한 집만 고르라면 많은 사람이 ‘체부동 잔칫집’을 추천한다.

이 집의 들깨 칼국수는 속칭 ‘서울시민이 뽑은 칼국수 5대 천왕’의 하나다. 수제비 맛도 빠지지 않고 김치전, 해물파전 역시 푸짐하면서도 특별한 맛을 지녔다. 사람이 많아 탁자 간 간격이 좁은데 별관을 열었어도 여전히 복잡하다.

붐비는 게 싫은 사람이라도 어쩌다 한 번 들러서 이것저것 맛을 보다 보면 다시 찾게 된다. 안주류 15가지에 면류 5가지로 20여 가지의 맛있는 음식이 기다리고 있고 그걸 한 번에 다 맛을 볼 수 없으니 두 번 세 번 찾을 수밖에 없다.

[이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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