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신재 기자] 이런 곳에 어떻게 지하철역이 있지.
조금은 후미진 그래서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지하철 5호선 종로 3가 역이 있다. 그리고 5번 출구를 막 나서면 송해 길이 시작된다. ‘일요일의 남자’로 34년간 KBS-1TV의 ‘전국 노래자랑’을 진행한 우리들 모두의 ‘영원한 친구’인 바로 그 송해 선생이다.
그의 기획사 사무실이 그곳에 있고 그가 사람들과 어울려 밥을 먹고 세상사 희로애락을 술잔에 타서 마신다는 걸 알고 종로구가 그렇게 이름 지었다.
길이라고 하지만 그리 길지는 않다. 종로 큰길 육의전 건물까지의 200여m에 불과하다.
하지만 송해 길은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바로 옆의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그리고 그 옛날의 단성사, 피카디리 극장까지 이어지는 피맛길까지의 반경 400여m도 포함된다.
모두 오래전 탑골공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부락’ 같은 곳으로 세월이 비껴간 듯 40여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 최초의 도심 공원-파고다 공원이 아니라 탑골 공원
탑골공원은 원래 절터였다. 고려시대 흥복사에서 조선시대 원각사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연산군이 절을 헐면서 백탑만 남았고 후일 ‘탑이 있는 절터 마을’ 즉 탑골이 되었다.
1919년 3.1 독립 만세 운동의 발상지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던 곳. 민족정신이 살아 흐르는 역사의 현장으로 1970년대엔 정부 성토의 마당이었다. 시국이 수상할 때 앞서 깨달은 사람들이 ‘무지몽매한 군중’들을 향해 사자후를 토했다. 그곳에 가면 언제든지 선각자 서너 명은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의 해박한 정보와 분석을 들으며 신문에 나지 않는 사실들을 알게 되곤 했다.
당시만 해도 공원의 이름은 탑골 공원, 파고다 공원 두 가지였다. 탑골 공원에서 파고다 공원을 찾는 사람도 있었고 파고다 공원에서 탑골 공원이 어디냐고 묻는 이도 있었다.
파고다는 ‘탑이 있는 사찰 또는 사찰의 탑’이라는 뜻으로 공원을 열면서 그렇게 불렀다. 3.1 운동 때도 그곳의 이름은 파고다 공원이었다.
1992년 탑골 공원으로 개칭했다. 현재의 정식 명칭은 서울 탑골 공원이고 들어가는 문은 삼일문이다.
독립을 외쳤고 시위와 궐기의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은 한때 이상하게 변했다. 지하철 바로 옆에 있는 시내 공원이다 보니 노인들이 많이 모였다. 할아버지들의 휴식 공간이고 놀이터가 되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활동이 좀 편해진 할머니들과 아줌마 들이 모여들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녀가 어울리다 보니 교제가 빈번해졌고 나중엔 돈으로 파트너를 잡는 일이 발생했다. 속칭 ‘박카스 아줌마’의 등장인데 박카스를 사고팔면서 노인들의 성매매로 이어졌고 한때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다.
지금도 탑골 공원 주변엔 여전히 노인들이 많다. 유동 인구의 평균 연령이 70세가 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더 이상 ‘박카스 아줌마’는 없다.
허리우드, 피카디리, 단성사
종로 큰길에서 탑골 공원 오른쪽 담을 끼고 내려가면 1970년대 풍경을 만난다. 담벼락에 플라스틱 간이의자가 놓여있고 한낮은 항상 만원이다. 6천 원에 머리카락을 자르는 이용원이 있고 만원을 다 안 줘도 살 수 있는 구둣방이 있고 잠깐 요기를 할 수 있는 호떡집이 있고 6천 원에 설렁탕이나 돼지국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두어 군데 있다.
담 끝에는 장기판을 앞에 둔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기도 두고 훈수를 둔다. 더러 술 취한 이가 ‘잘 있거라 부산항’을 부르고 ‘대전발 0시 50분’을 목청껏 부르기도 하지만 길게 가진 않고 대부분 못 본 척한다.
그 담을 다 돌면 낙원상가로 가는 큰 길이 다시 나오고 그 길 옆에 돼지국밥집이 대여섯 곳 자리 잡고 있다.
낙원상가는 악기로 대표되는 고급 상가였다. 그 옛날엔 그것이 바이올린이든 기타든 아코디언이든 악기라면 모두 비쌌으니 당연한 일.
그곳엔 고급 악기에 걸맞은 개봉관이 있었다. 허리우드 극장이다. 지금은 70대~80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흘러간 영화를 2천 원에 보여주고 있지만 일류 영화관이었다.
이곳의 허리우드와 뒷길로 5백여m 가면 만나는 피카디리와 단성사는 모두 개봉관. 막 개봉하는 영화를 보려고 중년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어서 음식점, 커피숍이 꽤나 번창했다.
지금은 모두 흘러간 영광이다. 단성사는 단성사인데 보석 가게이고 피카디리도 영화관은 오래전 없어졌다. 그 자리 한쪽에 CGV가 들어앉아 이 영화 저 영화를 다 틀어주고 있다.
단성사, 피카디리 시절엔 한 개의 영화만 상영해서 골라서 들어가야 했다. 상영 시간이 안 맞거나 표가 많이 팔려 바로 사지 못하는 경우 기다리는 장소가 필요했고 그곳이 식당이거나 다방이었다.
사방이 골목
북촌 한옥마을이나 서촌의 골목 같은 정취는 없다. 오래전부터 상가였기 때문이다. 작은 식당 골목이라고 보면 된다.
낙원상가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틀어서 80여m 가면 5호선 3가 역 5번 출구다. 1호선 1번 출구에서 옛 피카디리를 끼고 피맛길을 따라 조금 걷다가 중간쯤 어딘가의 골목으로 들어서 두세 번 꺾으면 역시 5호선 3가 역 5번 출구다.
이리 돌고 저리 돌고 다 돌아도 3천 보를 넘지 않고 다시 만나기도 하고 전혀 다른 곳이 나오기도 한다.
5호선 5번 출구 길 쪽은 저녁이면 포장마차가 자리를 잡는다. 조금은 더 세련된 을지로 쪽 포장마차보다 그 옛날 전통 포장마차에 더 가깝다. 보통 5~6개의 포장마차가 손님을 맞이한다.
포장마차 촌(?) 맞은편으로 3개의 골목이 보인다. 첫 번째 왼쪽 골목은 큰길로 가는 길. 맛거리이고 길 끝에 떡집이 있다. 가운데 골목은 현대화된 골목. 젊은이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옷 집이 있고 카페가 있다.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보이는 골목은 좁디좁다. 마주 오는 두 사람이 스치듯 지나가야 할 정도다. 음식점임을 알리는 불빛이 서너 개 번쩍거린다.
포장마차 안쪽으로 들면 골목 천지다. 비슷비슷하지만 가는 곳이 다르다. 가장 가까운 골목으로 접어들면 처음에 별게 없다가 조금 지나면 그곳에 있을 것 같지 않은 상점이나 모텔 등이 나온다.
그 길 중간에서 다시 골목길을 만나는데 송해 길 초입의 골목길이고 이곳을 쭉 따라 내려가면 종3 피맛길이고 보석상으로 변한 단성사 간판이 보인다.
골목의 공통점은 ‘옛날’. 길도 옛날 길이고 사람도 옛날 사람이고 음식값도 옛날 값이다. 이렇게 싸게 팔아서 뭐가 남지 싶을 정도인데 기본적으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대접한다는 정이 깔려있다.
이름이 ‘소문난 집’
5번 출구로 나와서 2차선 길을 건너면 바로다. 송해 선생이 돌아가시기 바로 전에도 찾았다는 곳이다. 그는 이곳에서 점심을 하고 저녁을 하기도 하면서 이곳 사람들과 어울렸다. 빨간 뚜껑 소주에 애환을 섞었고 더러는 여러 사람의 밥값을 다 내기도 했다.
이 집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송해 선생이 처음 다닐 때 소문난 추어탕이었다. 지금은 ‘소문난집 국밥전문’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60년 전통 송해의 집’이라는 글자도 있고 ‘원조’라는 글자도 보인다. 하지만 그건 앞 간판이고 옆 간판은 또 다르다. 그래서 부르는 이름이 제각각인데 ‘소문난 집’이 가장 일반적이고 그다음이 국밥집이다.
요즈음은 단일 메뉴다. 뭘 먹을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들어가서 앉으면 공깃밥이 바로 나온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뭐지 하고 있으면 주인아주머니가 우거지 국밥을 내려놓는다. 식성에 따라 소금을 넣거나 고추가를 뿌리면 된다. 소금, 고춧가루, 깍두기는 언제나 테이블에 셋팅 상태다. 추가 양념 없이 주는 그대로 먹는 게 좋다. 담백해서 좋다.
자리 곳곳은 거의 노인들뿐이다. 혼자서 온 사람도 있고 두셋인 경우도 있다. 이 집에선 빨간 뚜껑 소주가 많이 팔린다. 한 잔 털어놓으면 ‘캬’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톡 쏘는 맛의 옛날 25도 수주다. 파란 뚜껑 소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잘 없다.
냉장실 소주 칸의 절반 이상이 빨간 뚜껑이다. 평균 식당과는 다르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술집은 대부분 파란 뚜껑이다. 그들에게 25도는 너무 독하다. 국밥을 한 숟갈 두 숟갈 뜨면서 벽을 여기저기 쳐다보고 있으면 송해 선생 사진이 곳곳에 붙어있다. 60년 단골이라고 했다.
그의 커리커쳐 옆에 가격표라고 할 수 있는 안내문이 있다.
‘원가 상승으로 인하여 6월 1일부터 2,500원으로 인상합니다.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소문난 국밥집-
한 그릇에 2천5백 원이다. 값을 알고 나면 그 어떤 한 가지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다.
이름 말고도 소문난 집들
유진식당은 돼지국밥과 평양냉면이 맛있는 집이다. 탑골공원 오른쪽 담 끝에 있다. 평양냉면이 유명하지만, 돼지국밥과 설렁탕이 특별히 맛있는 집이다. 이 집 역시 가격 경쟁에선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할 집이었다. 오랫동안 설렁탕, 돼지머리 국밥이 4천 원, 물냉면이 7천 원이었다. 그러나 최근 ‘많이 올랐다.’ 코로나 영향까지 받아 2년 정도 사이에 2천 원이 올랐다. 돼지머리 국밥이 6천 원이다. 그래도 역시 싸지만, 주인장은 굉장히 미안해한다.
평양냉면은 시원하다. 집적 면을 만들고 준비하기 때문에 면발도 다른 곳과 다르다. 가격은 최저고 맛은 최고이다.
녹두지짐, 소 수육, 돼지 수육을 팔고 있으며 배고플 때 술국 한 숟가락을 입어 넣으면 음식 나올 때까지 먹고 또 먹게 된다. 식사 때는 피하는 게 좋다. 방송 등에서 하도 많이 소개해서 제법 기다려야 한다.
종로 진 낙지는 무교동 낙지와는 조금 다른 맛이다. 옛날 맛을 찾는다면 이쪽이 더 나을 것 같다. 칼칼한 맛이나 매운 맛이 보다 클래식하다. 역시 송해 선생이 자주 들렀다는 곳이다. 간판 한쪽에 송해 선생의 캐리커쳐가 있다. 풀네임이 종로 진 낙지이지만 종로낙지라고 많이 알고 있다. 종로낙지는 큰 글자로 쓰여 있고 가운데 진은 조그맣게 한자로 박혀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낙지볶음도 먹을 만하다. 맛은 무교동 못지않은데 가격이 보통 2천 원~3천 원 정도 싸다.
최고 메뉴는 산낙지 철판 볶음밥. 송해 선생이 개그맨 이영자, 배우 정우성과 함께 가서 먹어 더욱 유명해졌다. 사실 산낙지와 냉동 낙지는 그게 그거다. 웬만해선 맛을 구별하기 힘들다. 그러나 그건 미리 준비해두었다가 나오는 낙지볶음일 때의 이야기고 철판에서 바로 굽고 볶을 때는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산낙지라야 제맛이다.
낙지 철판 개발자 중의 하나인 서린낙지는 철판에다 낙지볶음을 부어 먹는 스타일이지만 종로진낙지는 낙지, 콩나물, 깻잎 등을 철판에 넣고 함께 볶는다. 낙지는 오래 익히면 딱딱해진다. 직접 보면서 요리하므로 먹기 좋을 정도로 익었을 때 맛을 볼 수 있다. 낙지는 당연히 맛있는 거고 콩나물이 뜻밖의 선물이다.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물김치의 국물과 매운 낙지가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마무리는 볶음밥. 이건 반드시 먹어야 하는 필수 코스고 적당히 태워서 먹으면 더 맛있다.
언젠가 이곳을 방문했던 외국인이 실컷 먹고 난 뒤 또 밥을 볶자 기겁하며 숟가락을 놓았다. 하지만 그 구수한 냄새에 끌렸다가 주위에서 한 숟가락 먹여주자 숨도 안 돌리고 볶음밥에 빠져들었다는 일화도 있다.
철판 볶음밥은 먹은 뒤에 먹는 누룽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식집 보화장의 짜장면은 3천 원이다. 송해 길 초입 오른쪽 청춘 1번지 건물 2층이다. 말 그대로의 맛집은 아니지만, 평균 이상이다. 값이 3천 원일 걸 감안하면 대단히 훌륭하다. 짜장 국물이 넉넉해서 옛날짜장을 찾는다면 제격이다. 단무지와 양파도 수준급이다.
만 원짜리 한 장이면 짜장면, 간짜장, 짬뽕을 먹을 수 있다. 그 길을 조금 빠져나와 건너편에 가면 짜장면 한 그릇에 못 해도 8천 원을 내야 한다.
짜장면 3,000원, 간짜장 4,000, 짬뽕 4,000원, 볶음밥 5,000원, 탕수육 10,000원, 잡채 10,000원, 양장피, 고추잡채 15,000원, 소주, 막걸리 3,000원이다.
한국통닭은 이제 3마리를 만 원에 팔지 않는다. 모든 물가가 올라 가격을 지킬 수가 없다. 얼마 전 눈물을 머금고 가격을 올렸다. 1마리 5천 원, 2마리 9천 원, 3마리 13,000원이다. 이제는 잘 쓰지 않는 이름, 똥집 튀김은 5,000원이다. 이곳 역시 입구 창에 송해길 통닭 맛집이라는 글자를 넣었고 송해 선생의 전신 커리커처가 있다.
우리는 익히 알지만, 외국인들이 보면 ‘송해가 과연 어떤 사람인가’ 하며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장면들이다.
가격이 싸다고 해서 통닭 맛까지 ‘저렴’한 것은 아니다. 맛은 최고, 가격은 최저라는 말 그대로는 아니지만 겉은 바삭바삭하고 속은 제법 촉촉하다. 이 집에서 먹고 나면 1마리에 거의 2만 원으로 받는 BHC, 교촌, BBQ 등 브랜드 통닭을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싸고 맛있는 수많은 맛집들이 깔려있다. 최고로 맛있는 집들은 아니지만, 가격을 감안하면 갑자기 더 맛있어지는 음식들이다. 아귀찜, 아귀탕, 해물찜, 해물탕을 파는 원조 마산아구찜. 송해 선생이 소주 3병 정도는 땄다는 곳이다. 4명이 갔다면 작은 걸 시키는 게 좋다. 양이 많아서 충분하다.
그 밖에도 낙원빈대떡, 낙원순대국집, 돼지국밥집 돈맛꿀, 양푼이 돼지고기 김치찌개의 순천가, 가마솥밥 직화구이 토담토담 등이 구석구석 자리 잡고 있다. 송해길 낙원상가 맛집을 일주일에 한 번 찾는다고 하면 한 2년 걸린다. 그러니 다 갈 수는 없는 일. 그저 정이 그립고 사람 냄새가 그리운 날, 한 번쯤 돌아보면 새롭게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