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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 곤충의 세계

정리 이신재 기자 | 2022-07-05 10:06
[정리=이신재 기자] 몇 년 전 붉은불개미(Red Imported Fire Ant)가 화제의 곤충으로 떠올랐다. 사실과 달리 붉은불개미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오해와 잘못된 정보 때문에 시작된 사건이었다.

뒷검은푸른쐐기나방 애벌레.이미지 확대보기
뒷검은푸른쐐기나방 애벌레.


대부분의 생물들은 새로운 서식처나 자원들을 찾아 나서는 고생을 하지 않고 되도록 주어진 환경에 더 잘 적응하는 법을 배운다. 생명을 건 이동(Migration)은 현재 살고 있는 서식처에 토착하고 있는 질병을 피하거나 지역을 달리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여 대를 이어 번식하기 위함이다. 캐나다와 미국 동부에 살던 모나크나비가 큰 무리를 지어 멕시코까지 이동하는 사례나 유럽에서 지중해를 건너고 북아프리카와 사하라 사막을 거쳐 열대 아프리카로 가는 장거리 이동을 하는 작은멋쟁이나비는 대표적인 곤충의 대이동이다.

짝짓기할 때 잠깐 사용하는 투명하고 연약한 날개를 지닌 붉은불개미에게 산맥은 너무 높고 바다는 너무 넓다. 최소한 모나크나비, 작은멋쟁이나비 정도의 큰 날갯짓이어야만 이동이 가능한 일이므로 정든 곳을 떠나 우리나라로 옮겨 온 붉은불개미에게 이동은 이들 나비처럼 생존 전략이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기후와 식생에서 살다 인적, 물적 교류로 우리나라에 툭 떨어져 느닷없이 외래종이라는 멍에를 쓴 것이다.

붉은불개미에 대한 혐오는 북미 대륙에서 한 해 평균 8만 명이 쏘여 100여 명이 사망’한다는 것으로 시작되었던 것 같다. 사람을 죽이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파괴자로 갑작스레 집중 공격 대상이 된 것인데 농림축산검역본부가 “일본 환경성에 게시된 자료이나 일본에서도 이 자료를 이미 내렸다”고 확인했으나 한 번 퍼진 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전문성을 갖춰야 할 관계 기관의 허술한 대처가 문제였다. 처음 발표된 기사에 살을 붙여 붉은불개미와 전쟁을 하자는 태세로 바깥에서 온 침략자, 살충제인 DDT보다 2~3배 독한 솔레놉신이라 불리는 독성으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살인개미란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붉은불개미가 주로 사는 곳은 온도, 습도 등 외부 환경의 변화에도 견딜 수 있는 산이나 숲의 땅 밑이어서 인간과 충돌할 일이 거의 없다. 풀숲에서 갑자기 마주칠 때 자신의 집과 새끼를 지키기 위해 공격성을 보이지만 굳이 인간과 일삼아 싸우지는 않는다. 게다가 독성도 크게 우려할 수준은 아니다. 보통 개미들이 갖고 있는 포름산처럼 쏘이면 아프고 가려운 정도의 독성이라는 사실은 이미 밝혀졌다. 거대한 크기의 장수말벌부터 국내산 벌목 곤충의 독성에 비하면 붉은불개미의 위험 정도는 새 발의 피다.

작은 멋쟁이 나비이미지 확대보기
작은 멋쟁이 나비


붉은불개미는 성격이 포악하고 천적이 없어 토착종을 몰아내고 농작물을 훼손하는 등 기존 생태계를 해칠 것’이라는 기사도 계속 증폭되고 있다. 생태계를 점령한 점령군 같은 불청객처럼 보이는 붉은불개미이지만 톱니바퀴가 맞물리듯 작동하고 있는 생태계 내의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에서 보면 결코 독주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도마뱀, 두꺼비, 새부터 개미귀신(Antlion) 개미집귀뚜라미(Ant-loving Cricket)라 불리는 곤충까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잡아먹으려는 포식자와 개미살이맵시벌 같은 기생자까지 천적은 바글바글하다. 비록 도입 초기에는 그들의 존재를 잘 몰라 머뭇거리다가 차차 먹이로 인식하면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다.

그 유명한 황소개구리나 블루길을 잡아먹는 물장군이 나타나고 꽃매미나 매미나방을 박새나 잠자리, 파리매, 침노린재가 포식하고 고치벌이 기생하는 장면이 자주 목격된다. 그들의 생태를 전혀 모른 채 불과 8차례에 불과한 출현으로 이런 잣대를 들이대는 건 너무 섣부르다.

등검은말벌이미지 확대보기
등검은말벌


경계색인 붉은색과 시뻘건 불을 합쳐 정말로 핫(hot)한 붉은불개미로 이름을 만들었으니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두려운 존재지만 자연 속에서는 그저 한 종류의 곤충이다. 외래종이라며 그들을 깡그리 없애려 하거나, 한 마리의 벌레도 없는 세상을 이상향이라 생각하는 일은 옳지 않다. 지구 전체 약 70% 생물체인 곤충을 다 죽이면 인간은 무얼 먹고 살 수 있으며 그 많은 쓰레기를 누가 처리하나? 실상 그 피해는 온전히 사람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붉은불개미가 뒤틀려 있는 자연과의 관계를 조화롭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지옥독나방 애벌레이미지 확대보기
지옥독나방 애벌레


도시인에겐 외계인처럼 보이는 붉은불개미는 벌이나 다른 개미처럼 투명한 날개를 가진 곤충들의 그룹인 ‘벌목(Hymenoptera)’에 속하는 곤충이다. 벌목은 가장 크고 복잡한 사회를 이루는 최고의 ‘사회성 곤충’으로 조직 생활을 한다. 떼로 다니는 데다가 공격적 성향 때문에 공포의 대상이 되었지만, 인간 생활과는 거리가 있다.

붉은불개미를 포함한 대부분의 개미는 특정한 장소인 지하에서 살기 때문에 인간과 충돌할 일이 거의 없다. 추석에 성묘를 위해 벌초할 때 말벌에 쏘이는 경우도 사람을 목표로 공격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느낀 말벌의 방어 전략이다. 즉 숲이나 산으로 가서 그들의 집을 헤집기 전에는 만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 곤충의 독성은 천적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자기 방어물질이라 할 수 있다. 쐐기나방 애벌레와 독나방 애벌레에 쏘이면 욱신거리고 먼지벌레를 건드리면 흉측한 냄새가 난다. 가뢰라는 곤충은 ‘칸다리딘’이라는 독성 물질을 분비해 살에 닿으면 물집도 생긴다.

붉은불개미의 독성은 오히려 이러한 종류의 곤충보다 훨씬 약하며, 정작 살인적 독성이나 양봉 농가의 피해를 생각하면 봄부터 가을까지 거의 일 년 내내 위협적인 외래종 등검은말벌이 훨씬 위험하며, 과수 농가나 전국적으로 수목에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키는 꽃매미를 제때 제거해 주는 일이 오히려 더 시급한 문제였다.

붉은불개미를 만날 일도 거의 없지만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글·사진=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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