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크 수술, 하지 마세요"
그곳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근처 사람보다 멀리서 온 사람이 더 많다. 믿을 수 있다는 이유 하나지만 사실 ‘환자’에게 그 이상 중요한 이유도 없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 4번출구 정승기 정형외과. 환자가 많은 이유가 있다.수술은 권하지도 않고 하지도 않는다. 환자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잘 듣는다. 불필요한 처치로 값을 부풀리지 않는다.
정형외과의 주된 수입원은 디스크 수술이다. 하지만 정원장은 디스크 수술의 결과에 대해 부정적이다.
“결과는 반반입니다. 수술로 나을 수도 있고 물리 치료로 나을 수도 있습니다. 수술을 하지 않아도 나을 수 있다면 몸에 칼을 대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나을 가능성이 거의 같으므로 수술을 권하지 않습니다.”
정원장도 물론 처음엔 디스크 등의 수술을 했다. 빠르고 정확하고 수입도 좋으니 마다할 리 없었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서 마음이 달라졌다.
수술 아니면 안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더 많은 경우 굳이 수술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대부분 툭하면 수술이었다. 임상 결과는 50대 50이었다. 수술을 해도 안나을 수 있고 수술 하지 않아도 낫기도 했다.
그는 사람이 지닌 자연치유력을 믿었다. 운동이나 물리치료로 나을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수술하지 않았다. 혹시 낫지 않더라도 수술로 망치는 경우보다 결과가 더 좋았다.
그리도 병원을 경영하려면 수술을 해야 한다고들 했다. 그도 처음엔 그럴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2000년쯤 불광동에서 정형외과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입원실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수술 유혹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나섰다.
수술 한 번이 100여 번의 상담보다 수입이 좋지만 그것이 옳기 때문에 굳이 힘든 일을 선택했다.
수술을 권하지 않는 의사 정승기.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서 그는 비수술 치료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는 벌써 20년 이상 칼을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최첨단 시설을 구비하고 양의들이 터부시 하는 전통의학과 대체 의학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병원 내부의 구조 변경이 첫 과제였다. 입원실이 들어 설 자리에 1대 1 치료실을 많이 만들었다. 환자와의 소통 시간을 늘리면서 도수치료, 체외충격파 치료를 하기 위해서였다.
도수치료는 당시만 해도 그리 환영 받지 못했다. 많은 의사들이 그저 대체의학쯤으로 여겼고 치료 효과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원리를 살펴보며 연구한 후 치료효과를 확신했다. 그리곤 적극적으로 임상을 실시했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이후 도수치료는 일반화되었다. 의사협회가 직접 지도하면서 2016년엔 도수치료학회까지 설립했다.
체외충격파 치료법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부작용 없는 체외충격파 치료법으로 10년 이상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전도사로 관련학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체외충격파 치료법은 ‘급격한 양압을 이용, 면역 세포를 자극함으로써 부상 부위를 치료하는 방법’. 뼈 이식, 혈관 이식을 해야 하는 난치병 환자에게도 필요하며 비만 해결 등 미용에도 효과적이다.
적용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게 정원장의 설명. 그가 책에서 쓴 대로 신체의 17가지 통증에 고루고루 유용하다. 대표적인 비수술 치료법으로 원래 신장 결석 파괴가 목적이었으나 족저근막염, 테니스 엘보, 퇴행성 관절질환 등의 치료 개선까지 활용하게 되었다. 최근 들어선 더욱 발전해 피부 병변, 허혈성 심장질환, 근육질환, 미용분야 등 치료 영역이 확대되었다.
스포츠의학전문의이기도 한 정원장은 ‘체외충격파 이용 사례 2,000건’을 분석한 결과 근막통증 증후군으로 인한 허리 통증 해소에도 효과적임을 밝혀냈다.
“충격파 파동이 물리적 자극을 줘 몸의 재생과 치유를 촉진시키는 겁니다. 혈류량이 증가하고 혈액 순환이 개선되고 성장 호르몬을 자극하게 되니 치료효과가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정원장은 또 한의들이 주로 활용하는 벌침까지 사용한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봉독요법 전문과정을 수료했다.봉독요법은 꿀벌의 산란관에서 나오는 독액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제한 봉독액 주사를 놓아 류머티즘성 관절염이나 퇴행성 관절염을 치료하는 방법.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았다며 양의들은 꺼리는 편이지만 임상을 통해 효과를 봤기 때문에 자신있게 쓰고 있다.
"환자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집니다"
정원장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환자와 아픔을 함께 나누며 하나하나 치료한다. 통증은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경우 자신은 굉장히 아픈데 병원에 가면 특별히 아픈 곳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아프지 않은데도 아프다’고 하는 바람에 ‘꾀병’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한다.
‘어깨와 목 주변이 뭉쳐있으면 큰 돌을 매달고 있는 것처럼 심히 불편하다. 더러는 머리까지 아프고 구토 증상까지 나타난다. 눈이 빠질 듯 하고 목 돌리기도 만만찮다’
그래서 병원을 찾으면 괜찮다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당장 아파서 병원을 찾았는데 그러니 답답하기만 하다.
“정형외관엔 만성질환자가 많습니다. 참고 참다가 병원을 찾는데 병원에 가도 뾰족한 수가 없어서 체념하며 치료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환자들 중 몇몇은 약간의 우울증 증상을 보이기도 합니다. 특히 노인들은 그럴 경우 ‘죽어야 낫는다’며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건 아니죠.”
정원장은 그래서 환자의 마음부터 살피고 환자가 통증에 대해 말하면 아무리 장황해도 중간에서 끊지 않는다. 오랜 경험으로 그 이유를 훤히 알지만 길게 이야기 하도록 하는 것은 시원하게 말하고 나면 속에 있던 응어리가 풀어지기 때문이다.
많은 환자의 경우 열심히 들어주고 치료 방법을 설명하면 절반은 낫고 시작하게 된다.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 그것은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의 비결이다.
그는 언제나 통증 치료에 앞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진다. 그리고 진단이 나오면 물리치료를 하고 약물 요법을 병행하고 그래도 여의치않으면 트리플 테라피를 동원하다. 트리프 테라피는 통증이 심할 경우 쓰는 방법으로 우선 신경치료로 통증을 없앤 다음 도수 치료로 틀어진 척추 등의 자세를 교정 한 후 마지막으로 근육과 인대를 튼튼하게 도와주는 체외충격파 치료를 하는 것. 복원치료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 방법으로 환자가 나을 것이라고 믿어야 효과가 크다.
병원엔 장기적으로 다니는 노인환자들이 꽤 있다. 그들 역시 자신의 병이 쉽게 낫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굳이 찾는 것은 정원장과 통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면 왠지 모르게 덜 아픈 것 같고 한동안 아프지 않아서다. 그들은 그것만으로도 병원효과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골치 아프게 수술하라는 말 하지 않고 기껏 몇천원 정도의 돈 밖에 나가지 않으니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이다. 그들이 오고 또 와도 정원장은 그만 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좋은 웃음을 보이며 늘 살갑게 대한다. 정형외과 의사가 아니라 심리치료 의사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