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VOL.3] ‘골프와 삶이 공존하는 공간’...새로운 골프 산업 패러다임으로 주목받는 ‘골프 레지던스’를 아시나요?

김학수 기자 | 2022-07-05 10:07
1919년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골프장 이용객 숙소로 쓰는 'Lodge'. 하루 밤 500달러 이상 받는다. [페블비치 골프장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 확대보기
1919년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페블비치 골프장 이용객 숙소로 쓰는 'Lodge'. 하루 밤 500달러 이상 받는다. [페블비치 골프장 홈페이지 캡처]
[김학수 기자] 골프는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운동이라고 말한다. 새파란 잔디, 빼곡이 들어찬 아름드리 나무와 우거진 숲, 화려한 꽃과 연못이 수놓아진 골프장에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놀 수 있는 운동이자 놀이이기 때문이다. 골프의 다양한 즐거움을 사람들은 ‘골프 3락’으로 표현한다. 골프 3락은 골프를 통해 3가지 즐거움을 만끽한다는 뜻이다. 다양한 골프 3락에서 가장 많이 인용하는 것은 부킹 후 골프장으로 가는 날까지 기다리는 즐거움, 라운딩 하는 즐거움, 뒷풀이의 즐거움이다. 이 말은 골프의 멋과 맛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이라면 한번쯤 골프만 하며 살아봤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봤음직 하다. 골프을 위한, 골프에 의한, 골프의 삶을 살아봤으면 하는 상상을 하는 것으로도 몸과 마음은 새털처럼 날아갈 듯 가벼워질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삶을 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골프의 3요소로 불리는 시간, 투자, 노력 등을 충족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 시간과 돈이 있더라도 골프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골프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100년 된 우리나라 골프 문화는 독특한 양상을 갖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 골프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는 골프가 특권적 지배세력이 즐기던 운동에서 시작해 이제는 바야흐로 다양한 국민계층이 즐기는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아직도 일부 국민들에게 골프는 부자들의 스포츠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골프는 우리나라의 고도 경제성장과 국민경제 향상에 따라 내용적으로도 많은 변화를 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골프장 업무를 청와대에서 체육청소년부(현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해  골프장 건설 붐을 이끌었다. 사진은 노태우 대통령이 현역 시절 외국 수반들과 라운딩을 갖는 모습.이미지 확대보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골프장 업무를 청와대에서 체육청소년부(현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해 골프장 건설 붐을 이끌었다. 사진은 노태우 대통령이 현역 시절 외국 수반들과 라운딩을 갖는 모습.


골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우리나라에서 골프는 예전 아무나 즐길 수 없는 운동이었다. 골프는 한 마디로 ‘가까이 하기엔 먼 당신’이었다. 골프 3요소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랜동안 골프는 재력과 권력을 상징하는 운동이었다. 그동안 골프가 어떤 운동이었는가를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박정희를 비롯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등 역대 대통령들이 집권하던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골프는 그야말로 대통령의 운동이었다. 대통령이 골프를 하니까 장관, 국회의원, 군 장성 등 이른바 권력층들은 골프채를 잡고 권력을 과시하는 모습이었다. 1990년 3당 합당을 선언, 한국 정치사에 역사적인 장을 열게 했던 곳도 골프장이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골프이야기, 골프장에서는 정치이야기’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재벌 회장들과 부동산 등으로 ‘졸부’가 된 신흥 재력가 들을 중심으로 돈과 명예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골프가 활용되기도 했다. 전두환 대통령의 5공 시절 전국 골프장 수는 40여개가 채 되지 않아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서민들에게는 ‘금단의 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우리나라 골프는 본격적인 대중화의 발판을 마련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6월 골프장 인허가 업무가 청와대 인가에서 각 시도 전담제로 바뀌었다. 골프가 관광객 이용시설업으로 교통부 관할이던 것이 ‘체육시절 이용에 관한 관한 법률 및 규정’에 의해 체육 청소년부(현 문화체육관광부)로 이관된 데 따른 조치이다. 이로인해 전국에 골프장 건설붐이 거세게 몰아닥쳤다. 골프장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버린 것이다. 6공 말기에는 골프장 수가 100개를 넘었으며 골프장 사업 승인을 받은 업체는 무려 139개소나 달했다. 멤버 모집만 제대로 하면 기업들이나 개인 사업가들이 골프장을 손안에 넣을 수 있었다.

‘공급이 수요를 낳는다’는 세이의 법칙(Say’s Law)처럼 골프장이 급증하면서 골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그 바람에 골프장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웠다. 골프를 치지 않는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10월 인천 전국체전 공개행사에서 ‘골프는 이제 중산층, 서민층 누구에게나 좋은 스포츠’라 밝히며 ‘골프는 더 이상 특권층만의 스포츠 일 수 없다’고 대중화를 선언,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때맞춰 박세리, 김미현 등이 미국 여자프로골프에서 잇달아 우승을 하면서 국민들의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불식시키는데 이바지 했다.

국민 경제 향상과 함께 찾아 온 골프 대중화

우리나라가 1970-80년대 고도 경제 성장에 성공하면서 골프는 대중화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특권층이나 돈 많은 상류층이 즐기던 골프에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하기 시작한 중산층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산업화, 도시화가 본격화되는 19세기 후반부터 골프장과 골프 인구가 크게 늘어났듯 우리나라도 1990년대 이후 골프문화가 급격하게 바뀌었다. 폭발적인 골프장 증가와 함께 골프인구가 급증한 것이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골프장 수 증가했다는 점이다. 컨트리클럽과 골프클럽으로 이름이 붙은 골프장들이 전국에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헀다. 2000년대 후반 전국 골프장 수는 회원제와 대중골프장을 합쳐 300여개에 이르렀다. 골프장을 이용객 수는 2천만명을 돌파했다. 1990년대 후반 IMF위기와 2000년대 후반 금융위기속에서도 골프장과 골프인구는 오히려 늘어났던 것이다. 중산층의 소득이 증가하면서 골프붐이 지속적으로 이어진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제는 권력자나 대기업 회장이나 CEO 뿐 아니라 일반 직장인들도 친구나 지인들과 골프를 같이 즐기는 시대가 됐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는 최근 "전국에 운영 중인 6개 홀 이상 505개 골프장의 내장객 조사 결과, 회원제 골프장 157곳을 찾은 이용객은 1699만 명, 대중제 348곳을 이용한 내장객은 3357만 명으로 총 5056만 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수십년 만에 3-4배이상 골프장수와 골프 인구가 획기적으로 증가하며 전국민 골프 대중화 시대를 활쨕 맞이하게 된 것이다.

특히 코로나 19 사태의 와중에서도 골프는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비교적 안전하게 야외에서 즐길 수 있다는 잇점과 해외여행 제한으로 인해 오히려 이용객이 늘어났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

국내 첫 퍼블릭 골프장인 올림픽 CC는 새로운 골프 산업 패러다임으로 골프 레지던스를 시작한다. 사진은 올림픽 CC 코스. [올림픽 CC 홈페이지 캡처] 이미지 확대보기
국내 첫 퍼블릭 골프장인 올림픽 CC는 새로운 골프 산업 패러다임으로 골프 레지던스를 시작한다. 사진은 올림픽 CC 코스. [올림픽 CC 홈페이지 캡처]


온 국민이 함께 즐기는 골프...새로운 스포츠 산업 패러다임으로 주목


골프 대중화에 편승해 TV와 유튜브 등에 골프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골프의 매력을 살리고 예능적 요소를 가미한 이른바 ‘골프 예능’ 프로들이 그것이다. 공중파는 물론 종편 채널에서 연예인과 야구와 골프 스타들이 참가하는 골프 예능 프로그램를 방송으로 내보낸다. 골프가 ‘부자들만 하는 스포츠’ 라는 이미지가 옅어지면서 골프를 즐기던 연예인들이 본격 가세한 것이다.

골프 대중화는 다양한 골프 문화를 낳았다. 골프 인구가 늘어나면서 스포츠 산업으로 시장 규모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골프장 뿐 아니라 골프 연습장, 스크린 골프, 골프 용품, 골프 여행 산업 등이 폭발적 성장을 하고 있다. 이미 미국과 일본 등 골프 선진국 들이 경험했던 현상이다.

골프 산업은 이제 새로운 주거 문화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골프장에 들어서는 주택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다. 인천 청라 국제도시에 들어선 청라 베어즈베스트 GC에는 골프장 코스를 따라 골프장을 조망할 수 있는 골프 주택이 인기리에 분양, 판매됐다. 미국에선 사막이나 넓은 평지에 주택을 짓기 위해 골프장을 같이 건설해 판매를 하지만 국내에선 골프장을 이용하기 위해 주택을 구입하는 방식이다. 조그만 국토에 한정된 골프장이 들어서던 보니 주택 판매 방식도 광활한 미국과는 다르게 하는 것이다.

최근 골프 비용이 점차 치솟고 부킹난이 심해지면서 이를 상쇄하는 골프 이용방법이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골프 레지던스이다. 골프장 안에 지어진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 무한정 골프를 즐기는 방식이다. ‘제주 1달 살기, 6개월 살기, 1년 살기’ 등이 높은 인기를 끌면서 골프장에서도 은퇴자나 전문직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해 골프장에서 고급 호텔형 임대 방식이 선을 보일 예정이다.

국내 최초의 퍼블릭골프장인 경기 고양시 올림픽 CC는 국내 최초의 골프 레지던스 이글카운티를 골프장 내에 개장할 계획이다. 365일 골프가 가능한 골프 코스와 럭셔리 호텔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전천후 시설이라는 점에서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 골프 레지던스는 호텔과 같은 고품격 일상 생활을 누리며 골프를 원없이 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글카운티는 골프를 매일 치고 싶어하는 골퍼들의 욕구와 편안한 거주방식을 반영해 1년간 기간으로 회원제로 운영할 방침이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손꼽히는 영국의 에릭 홉스봄은 자신의 대표 3부작의 하나인 ‘제국주의 시대’에서 영국과 미국의 신흥 중산층들의 단면을 소개한 바 있다. 1900년 즈음 미국 보스턴 지방 유지들은 자신들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고 한다. “보스턴은 무거운 세금과 정치적 혼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너희들은 결혼하면 교외지역을 선택하여 살 집을 정하고 컨트리 클럽에 가입해라. 그리고 클럽, 가정, 아이들이 너희 인생의 중심이 되도록 하여라”라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사는 이유는 즐겁게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황혼에 물든 그린에서 골프를 즐기고 골프장 안에 지어진 집에서 편안하게 휴식을 즐기는 것은 아마도 골퍼들이라면 모두 바라는 삶일 것이다.

저작권자 © 월간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