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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 휴먼 오딧세이-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이신재 | 2022-07-0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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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금융지주]
IT ain’t over till it’s over.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전설적인 포수이자 감독이었던 요기 베라의 말이다.

“야구, 몰라요. 정말 몰라요”

작고한 야구 해설위원 하일성씨가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다.

9회말 투 아웃에 투 스트라이크 쓰리 볼. 공 1개면 끝나는 그 순간에 5~6점을 뒤집는 대반전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게 야구다.

그래서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고 손 털고 일어나봐야 알 수 있다.

야구만 그런가. 아니다. 우리네 인생 역시 한치 앞을 모른다.

그날 사무실을 비우면서 윤종규는 생각했다.

‘국민은행과의 인연도 오늘로써 끝이구나’

아쉬웠다. 사람들 말을 듣고 조금 움직였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오늘 짐을 싸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살면서 한 번도 자리를 탐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머리 써서 움직이고 모든 사람과 어울리면서 순리대로 흘러왔다.

자리, 임자가 있다. 아닌 사람이 맡으면 탈 난다

1973년 광주상고를 졸업하고 외환은행에 입행했다. 월급을 받고 보니 미처 못 한 공부 생각이 났다.

1975년 성균관대 야간부에 들어갔다. 당시 성대 야간 특히 경영학과는 ‘가난한 천재’들이 모여 들던 곳이었다. 직장 다닐 일 없는 주간 학생들보다 학업 성적이 더 뛰어났다.

학교와 은행을 다니면서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공무원의 길을 가려고 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학내 시위 가담 전력이 있다며 최종 면접에서 탈락시켰다. 후일 그 판단이 옳지 않았음을 입증했지만 이미 지난 일이었다.

공인회계사로 진로를 바꾸었다. 공무원이 아니니 문제 될 게 없었다.

1980년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다. 졸업 전에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했다. . 빠르게 승진했다. 86년 상무이사, 98년 전무이사, 99년 부대표였다.

공인회계사 윤종규는 군계일학이었다. 빈틈없이 정확하면서도 유연했다. 회계컨설팅 일로 만났던 김정태 통합 국민은행장은 그에게 흠뻑 빠져들었다. ‘상고 출신 천재’라고 했다.

하지만 이 말은 어폐가 있다. 상고를 졸업하고 들어간 외환은행에서 그 학벌로 차근차근 올라가 부행장을 했다면 맞다. 그러나 그는 학사에 이어 석사, 박사까지 했고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들고 삼일회계법인에 입사했다.

천재는 사실이지만 상고출신이라는 접두어는 사실과 다르다. 윤종규의 대단함을 드러내기 위한 선의의 표현이지만 그런 점에서 보면 ‘상고 출신으로 은행장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라는 표현도 맞지않다.

어쨌든 김정태행장은 ‘정말 탐나는 인물’ 윤종규를 ‘모시기’ 위해 삼고초려 했고 2002년 모든 부행장 임명이 끝난 후 그를 국민은행 재무, 전략기획본부장(CFO)으로 앉혔다. 보도자료에 ‘상고 출신 천재’라는 문구를 꼭 넣도록 하면서.

다시 시작한 은행은 그러나 그리 길지 않았다.

2004년 KB국민은행 개인금융그룹 부행장이 되었다. 그러나 국민카드 흡수합병 관련 회계처리 문제로 김정태회장과 함께 물러났다. 이것도 후일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2005년 3년여의 은행 임원을 뒤로 하고 김앤장으로 갔다. 5년 남짓 일 한 후 다시 KB금융지주의 문턱을 넘었다. 2010년 이었다.

이번도 그가 먼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이 KB금융그룹 회장에 앉게 되자 전문성, 조직 장악력, 소통 등에 꼭 필요한 인물로 윤종규를 스카우트했다. 5년여만에 다시 돌아 온 국민은행. 이번엔 최고재무관리자(CFO) 부사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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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은행장 후보 1순위. 그러나...

2013년 어윤대 회장이 임기를 마쳤다. 연임 이야기도 나왔지만 결국 관료출신 임영록이 새롭게 KB 금융그룹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더러 줄을 서기도 했지만 윤종규는 엄정 중립을 지켰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믿는 구석이 있었다. 누가 봐도 자신이 은행장 1순위였다.

사실 그는 나름대로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재무 담당이지만 두어차례 들락거리면서 개인금융그룹에서도 뛰어난 성적을 올렸다. 전략, 재무 뿐 아니라 영업에서도 탁월했다. 몇몇 거론되는 인물들이 있었으나 경력, 능력, 인성 등 모든 면에서 그와 비교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었다. 은행장 자리가 그렇게 곧이 곧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4명의 최종 후보군에 올랐다.

최기의 KB 국민카드 사장, 김옥찬 국민은행장 직무대행, 이건호 국민은행 부행장 등 3인이 경쟁자였다.

줄 대기를 한다든가 내부인을 선택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나돌았지만 자신이 파악한 여론은 윤종규였다. 능력은 이미 다 아는 것이고 노조와 직원들도 윤종규를 선호했다. 임영록 신임회장과의 사이도 나쁘지 않았다.

기대반, 설렘반. 하지만 결론은 가장 뒤에 있다고 생각했던 후발주자 이건호였다.

‘그럴 리가...’ 했지만 뒤바뀌지 않는 사실이었다.

노조에서도 ‘미리 정해 놓고 한 것 아니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소용 없었다.

세상이 달리 보였다. 줄을 좀 댈 걸하며 잠시 후회도 했으나 일체의 아쉬움과 미련을 끊었다.

행장이 되면 정말 할 일이 많았고 최고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인연이 닿지 않는 걸 어찌하랴.

국민은행은 이제 정말 끝이다.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라니까...

김앤장으로 유턴했다. 육십이 멀지 않았다. 국민은행과도 끝났고 이제 서서히 떠날 준비를 해야 할 때 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느닷없이 다시 자리가 나왔다.

1년을 겨우 넘긴 2014년 9월쯤이었다.국민은행 행장, 회장 자리였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이 어줍잖은 것 일수도 있는 일로 부딪친 결과였다. 잘잘못이 있고 둘 중 하나는 잘못했을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인이 지켜보고 있는데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면 결과는 늘 뻔했다. 십중팔구 동반퇴진이었다.

회장과 행장의 갈등은 중반쯤엔 잘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최수현금감원장이 경징계를 중징계로 바꾸면서 상황이 급반전 되었다.

이건호 행장이 ‘행장이 책임 질 일이라면 책임지겠다’며 사퇴의사를 밝혔다. 원하건 원치 않건 임영록 회장도 그냥 눌러 앉아있을 수 없는 구도가 되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물러났다.

마음이 동했다.

주변의 지인과 관계자들이 먼저 부추겼다. 만신창이가 된 국민은행을 살릴 적임자임을 각인 시켰다. 그냥 손 놓고 있는 건 ‘한때 몸 담았고 좋아했던 국민은행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들 했다. 말이 어떻든 행장직에 도전하라는 이야기 였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해야하나.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하자. 되고 안되는 걸 떠나 최선을 다해 대시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시도도 하지 않고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소문이 빠르게 돌았다.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과 황영기 전 KB 금융회장의 이름도 오르내렸다. 두 사람 모두 센 인사들이었지만 어차피 강을 건넌 터여서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자고 했지만 사실 뚜렷하게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확실한 의사 표시가 중요하고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게 중요했다. 그냥 KB금융 회장추천위원회 위원들에게 ‘살아 온 세월을 검증 받는 것 정도였다.

1차 회장추천위원회가 곧 열린다고 했다. 7명의 후보 중에서 4명 정도만 남기는 작업이었다. 이동걸, 황영기에 이어 양승우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대표 등이 탈락했다. 이름값에서 앞선 주자들이 빠지고 나니 그라운드가 제법 널찍해 보였다. 뛰어 다닐 공간이 많았다.

1년 전처럼 또 4인의 후보에 올랐다.

4강은 모두 나무랄 데 없었다. 윤종규를 비롯 지동현, 김기홍, 하영구였다.

지동현은 조흥은행 부행장 출신. 2006년 국민은행 연구소장, 2008년 KB금융 전략담당 부사장, KB금융 카드사설립기획단 부단장, 2011년 KB국민카드 경영관리본부 부사장을 역임했다.

김기홍은 전 국민은행 수석 부행장. 조세연구원, 보험개발원,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거친 금융통.

하영구는 ‘직업이 은행장’인 인물. 씨티은행에서 30년 이상 일했고, 14년간 은행장을 지냈다. 4강 중 유일한 외부인사지만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도 했다. 임기가 남은 씨티은행장 직을 내려놓고 도전했다.

뭔가를 보장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보장된 자리를 털고 움직일 만한 동기가 있지 않고선 그럴 수 없었다. 처음엔 현직에 있으며 공모했다가 말이 생기자 바로 사표를 냈다.

가장 강한 도전자. 그러나 직업윤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그토록 오래 있었던 곳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리 냉정한 비즈니스 세계라고 해도 좋게 볼 수 없었다. 여론이 좋지 않았다.

지동현, 김기홍 역시 문제점이 있었다. 4강 중 험담이 나오지 않은 인사는 윤종규가 유일했다. 재직시절 명쾌하게 일을 처리하며 직원들이나 노조원들과 잘 지낸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

윤종규는 일 처리가 비상해 천재소리를 들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다. 공치사를 하는 법이 없었고 잘난 척 뻐기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어린 시절을 나름 힘들게 보냈기 때문에 겸손함을 알았다. 부드럽고 여유있는 성격이지만 정확하고 엄정해야 할 때를 알았다. 배려를 생활화 하면서 자주 잘 섞이는 ‘스마일 맨’이여서 후배들도 대부분 좋아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분위기가 윤종규 쪽으로 흘렀다. 처음 대세처럼 보였던 하영구가 도덕성에 발목을 붙잡히면서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두 번째 회장추천위원회. 과반은 넘겼지만 3분의 2가 되지 않았다.

윤종규 5표, 하영구 4표였다. 3분의 2가 되지 않았다.

다시 선출작업에 들어갔다.

윤종규 6표, 하영구 3표였다.

윤종규는 KB기업문화 이해도와 조직통합능력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전문성, 국제적 감각, 개인적 자질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떠난 줄 알았던 KB금융지주가 윤종규의 품으로 들어왔다.

2014년 11월 KB금융지주 회장에 취임했다. KB국민은행 은행장도 겸했다. .

2017년 11월 KB금융지주 회장 연임에 성공했다. 은행장 직은 놓았다. 2020년 11월 KB금융지주 회장에 3연임했다. 회장만 총 9년이다. 일찍이 없던 일, 국민은행사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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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명 선수 명 감독

명선수가 반드시 명감독이 되는 건 아니다. 더러 조금 못한 선수가 더 훌륭한 감독이 되기도 한다. 신치용은 배구 감독을 훨씬 더 잘했다. 염경업은 프로야구 감독 성적이 더 좋다. 박항서는 대기만성형의 감독. 선수 시절도 나쁘지 않았다. 국가대표를 지냈으나 대체불가의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 축구를 개조 시킨 찬란한 감독이 되었다.

윤종규는 은행장이 되지 않았으면 정말 울 뻔했다. 타고 난 사람처럼 KB를 이끌었다. 안성맞춤, 그 이상이었다.

2017년 6월 시가총액에서 신한금융지주를 추월, 1위에 올랐다. 7년 만 이었다. 2017년 1분기, KB국민은행이 은행권 선두를 기록했다.

2014년 KB캐피탈을 인수했다.

2016년 현대증권을 인수했다.

2020년 푸르덴셜생몀을 인수했다.

윤종규는 그동안 여러 차례 생명보험사 인수의사를 밝혔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M&A의 귀재였다. 노련한사냥꾼이었다. 평소 그렇게 유했던 사람인데 잡아 챌 때는 굶주린 표범 같았다. 자주 많이 했기 때문은 아니다. 충분한 정보로 머리 속을 가득 채운후 강한 심장으로 빠르게 판단한 덕분이었다.

신한금융그룹과의 1위 경쟁에서도 앞섰다. 2018년과 2019년에 2위로 밀려났으나 2020년 리딩금융 자리를 되찾았다. KB금융지주의 2020년 순이익은 3조5023억 원. 4조원 시대를 눈 앞에 두고 3년 만 1위 자리를 탈환했다. 2020년 KB금융그룹의 순수수료이익은 2조9589억 원. 2019년 보다 25.6% 증가했다.

KB국민은행은 2019년 10월 말 알뜰폰 서비스인 ‘리브모바일’(리브M)을 공개했다. 누구라도 유심칩만 넣으면 공인인증서, 애플리케이션 설치 없이 은행과 바로 통신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리브모바일 가입자는 출시 2년여만인 2021년 11월 20만 가입자를 돌파했다.
리브모바일은 윤종규가 기획하는 디지털 전환의 정점이다. 휴대폰이 은행인 세상. 그는 리브모바일이 금융과 통신의 융합으로 진정한 혁신금융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머지않아 구글, 아마존 등의 IT 기업이 KB의 경쟁자가 될 시대에 대비한 포석. 조직의 디지털화를 위해 모든 허물을 벗어 던지도록 했다.
그는 알고 있다. 다양한 업종에서 과거 영광을 누렸던 거대 공룡 기업들이 어떻게 사라졌는지를.

미세한 차이가 초격차가 된다. 변화를 재빨리 읽고 앞서서 움직여야 1등이 될 수 있다.

명선수가 다 나쁜 감독이 되는 건 아니다. 스타 출신의 명 감독도 꽤 많다. 프로야구로 치면 요기 베라 급이고 선동열 급이다.

스타 선수 출신의 명 감독. 윤종규가 그런 경우다. 더러 말이 있었지만 3연임 그 자체로도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다.

이제 1년여. 윤종규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KB를 원팀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다. 천성이 그러니까 분명한 사실이다.

‘오랫동안 함께 가는 것을 좋아하는 스마일, 스마트 뱅킹 맨. 그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존경받는 회장. 일 그리고 인성까지.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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