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마니아타임즈 김세혁 기자] 인류의 유용한 식량이자 영양 공급원인 버섯. 균사체인 버섯은 그간 다양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는 효능이 발견돼 왔다. 의학계에서는 버섯의 우울증 및 알코올의존증 완화 효과를 입증했고, 건축계에서는 버섯을 활용한 미래형 건자재 개발이 한창이다. 최근 민간의 관심이 집중되는 천문학계에서는 치명적인 우주 방사선을 막을 최선의 원료로 버섯을 주목하고 있다.
■버섯으로 집 짓고 사는 세상 온다
가까운 미래, 사람들은 버섯으로 만든 건자재로 지은 집에 살지도 모르겠다.
미국 뉴욕의 친환경 소재 연구소 에코베이티브(Ecovative)는 지난 2월 플라스틱 등 썩지 않는 소재 대신 언제든 헐어 퇴비화 가능한 버섯 건자재를 공개했다.
에코베이티브의 ‘미코컴포짓(MycoComposite)’은 균사를 결합해 만든 생분해성 친환경 건축 자재다. 건물 벽체는 물론 유리병의 포장재, 침대 매트리스로 활용 가능하다. ‘에어 마이실리엄(AirMycelium)’은 가죽이나 플라스틱을 대체할 튼튼한 바이오 소재다.
이 회사는 창립 15년째 버섯과 균사체를 활용한 다양한 건자재 연구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가볍고 친환경적이며 불에도 견디고 제작이 간단한 버섯 기반 소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를 이용해 건물 벽체를 구성, 일정 수준 이상의 성능을 내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 균사체 업체 모구(Mogu) 역시 모든 소재를 버섯에서 충당하는 건축을 구상하고 있다. 버섯이 석재부터 목재, 플라스틱까지 다양한 건자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이 회사는 바닥재와 방음 패널, 벽돌, 아트피스 등 다양한 재료를 버섯으로 제작하고 있다.
에코베이티브와 모구 등이 참가하는 공동 프로젝트 펑글 아키텍처(Fungal Architectures, 균류 건축)는 건축 공학에 있어 버섯의 무한한 가능성을 추구한다. 여기에 참가하는 글로벌 업체들은 버섯과 스마트 기술을 조합해 빛과 온도 변화, 대기오염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는 버섯 건축물을 구상하고 있다.
버섯이 건축업계에서 각광 받는 이유는 특유의 기능성과 친환경성이다. 버섯으로 건자재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는 이미 상당 수준 발달돼 있다. 버섯 건자재는 버섯을 구성하는 균사체, 즉 균류의 뿌리 부분을 이용한다. 이 조직은 상상 외로 복잡하고 치밀하며 강인한 구조로 성장하기 때문에 건축용 자재로서 안성맞춤이다.
뉴욕근대미술관(MoMA)은 2014년 살아있는 버섯과 옥수수 줄기 폐기물을 사용한 원형타워 제작에 착수, 주목받았다. ‘하이 파이(Hy-Fi)’로 명명된 이 건축물은 균류의 건자재화 가능성을 충분히 입증했다. 버섯 건축물은 해체 뒤 100% 퇴비로 활용돼 의미를 더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이나 달에 건물을 만드는 소재로 균사체가 이상적이라고 본다. 균사체로 소형‧경량 구조물을 만들어 화성까지 날린 뒤, 이 구조물이 현지에서 영양분 등을 얻어 거대한 구조물로 성장하는 시나리오가 이미 완성됐다. 어디까지나 이론상 가능한 일이지만 언젠가 우주의 건축물은 지속 가능한 친환경 버섯으로 만들어지게 될지 모른다.
■오염물질 걸러내는 버섯의 가능성
버섯은 폐수 정화 효과도 탁월하다. 버섯으로 만든 필터로 오염된 강을 정화하는 실험은 이미 1980년 ‘버섯 마술사’로 유명한 미국 진균학자 폴 스타메츠(67)가 기획했다. 당시 폴 스타메츠는 균사체와 목재 칩, 지푸라기가 담긴 큰 주머니를 필터 삼아 실제 강과 호수에서 유의미한 수질 정화 효과를 입증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스테이트대학교 연구팀은 올해 초 버섯 필터를 이용해 빗물에서 대장균 같은 병원균을 제거하고, 음료수에서 중금속을 없애는 실험에 성공했다. 연구팀은 오염된 수원에 의지하는 오지의 원주민 등을 구하기 위해 버섯 필터 보급을 추진 중이다.
건자재나 필터만큼 가시적 성과가 나온 건 아니지만 버섯을 바이오연료로 활용하는 연구도 활발하다.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연구팀은 버섯 폐기물을 이용한 바이오연료가 휘발유를 대체하는 미래를 꿈꾸고 있다. 세균으로 버섯을 분해하고 이를 발효시켜 지금까지와 다른 개념의 바이오부탄올(bio-butanol)을 만들 계획이다.
바이오부탄올은 버섯이나 폐목재나 볏짚, 해조류 등에서 추출한 포도당과 박테리아를 이용해 만든 액체 연료다. 원래 바이오부탄올을 활용하려면 기존 엔진을 개량해야 하지만 버섯은 그럴 필요가 없다. 특유의 구성 물질 덕분이다.
재생 가능할 뿐만 아니라 휘발유보다 휘발성이나 폭발성이 낮아 안전한 버섯 바이오부탄올은 기존의 석유처럼 플라스틱이나 섬유 제조에 쓸 수도 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만큼 많은 양을 어떻게 생산하느냐가 현재 남은 유일한 숙제다.
■다양한 질병 치료에 응용되는 버섯
버섯 속 환각 물질은 다양한 병증 개선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진다. 지금까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 그 효과가 몇 가지 입증됐다.
우선 알코올 의존증.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연구팀은 지난해 11월 말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에서 버섯 속 환각 물질 실로시빈(Psilocybine)이 알코올 의존증에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실로시빈은 다양한 의학적 효과가 기대돼 연구가 한창인 천연 환각 물질이다. 이미 우울증을 완화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팀은 실로시빈이 내 뇌 물질과 연관돼 작용한다는 사실에 착안, 알코올 의존증에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했다.
연구팀은 뇌 내 물질인 대사형 글루탐산수용체(mGluR2)라는 특수한 단백질과 실로시빈의 결합에 주목했다. 주로 학습이나 기억, 통증, 불안 등 감각과 관계되는 이 단백질은 술이나 마약과 반응해 사람을 몽롱한 상태로 만든다. 사람이 술을 많이 마실수록 mGluR2 단백질은 점차 파괴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mGluR2가 적어질수록 술이 더 당긴다.
알코올 의존증을 가진 실험쥐에 실로시빈을 투여한 뒤 변화를 관찰한 결과 버섯 속 실로시빈을 투여한 쥐는 알코올 탓에 망가져 없어진 mGluR2 단백질이 서서히 회복됐다. 이 과정에서 알코올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졌고 관련 병증도 완화됐다.
습관적 음주로 뇌신경이 손상되면서 술에 대한 탐닉이 심해지는 알코올 의존증은 사회 전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병이다. 간경변 등 다양한 질병을 야기하며 정신적 피폐를 불러 우울증이 발병할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알코올 의존증 환자의 사망률은 일반인 대비 최대 7배다.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알코올 의존증 환자는 2020년 기준 200만명에 육박했다. 2019년 기준 청소년 환자도 1만명을 넘어섰다.
■신통방통한 버섯, 우주개발을 부탁해
버섯이 우주개척에 도움이 되리라는 주장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폭발 이후 진행된 연구에서 입증됐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2020년 8월 공개한 논문에서 체르노빌 원전에서 채취한 버섯이 우주공간의 방사선 흡수효과를 보여줬다고 밝혔다.
이 버섯은 1986년 4월 26일 대폭발을 일으킨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 붙어살았다. 당시 폭발이 발전소의 수많은 생명체를 말살했고, 학자들은 수 십 년간 아무 생명체도 살 수 없으리라 장담했다. 실제로 원전 폭발은 체르노빌 일대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었지만 이 버섯은 방사선을 양분 삼아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사고로부터 5년 뒤인 1991년 원자로 벽면에서 채취된 버섯은 흔한 진균의 하나인 클라도스포리움(Cladosporium)의 일종이다. 이 버섯에는 인간의 피부를 검게 하는 색소 멜라닌이 다량 포함돼 있었다. 방사선을 먹이 삼아 자라난 이 끈질긴 버섯에 대한 연구는 30여년이나 계속됐고, 마침내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과 스탠퍼드대학교 연구팀은 방사선 흡수효과를 발견했다.
현재 이 버섯을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보내져 우주공간에서 실험 중이다. 현재까지 이 버섯을 사용해 ISS에 내리쬐는 우주선의 2%를 막는 데 성공했다. 고작 2%라고 여길 수 있지만 21㎝ 버섯층을 만들면 인고위성은 물론 우주선을 강력한 우주 방사선으로부터 충분히 보호할 것이라는 게 천문학자들의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