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긴 가뭄 끝에 장마가 왔고 지루한 장마가 끝이 났으므로 성가시고 위험한 놈들이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로 지긋지긋한 모기. 일단 물리면 가렵고 물린 자리가 심하게 부풀어 오르며 화끈거려 고생할 뿐만 아니라 편안히 잠을 못 자게 하는 정말 성가신 놈이다.
귀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위험해서 혈액을 감염시키고, 일본뇌염과 지카 바이러스, 뎅기열, 말라리아 같은 특정한 열병을 일으킬 수 있는 가장 질 나쁜 해로운 곤충이다.
다른 생물체에서 소화하기 쉬운 혈액을 빨아들여 알에 영양분을 공급하고 난황을 만들기 때문에 모기는 다른 동물의 피를 빨 수밖에 없다.
번식과 영양을 위해서 흡혈은 필수 조건이지만 애초에 모기의 흡혈 대상은 인간이 아니었다. 인간이 지구에 출현하기 전 숲과 들판, 호수와 강가에는 피를 빨아먹을 무수히 많은 동물이 있었다.
새롭게 나타난 인간이 숲과 호수를 점령하며 모기와 거리가 가까워졌고, 털이 많은 다른 생물체에 비해 매끈한 피부를 지녀 침을 찌르기도 쉬웠다. 게다가 마을을 이뤄 모여 사는 인간 집단은 한번 점령하면 멀리 가지 않아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먹이였으므로 흡혈 대상을 바꾸었다.
흑백의 줄무늬가 두드러져 일명 아디다스 모기로 불리는 숲모기(Aedes 속)는 인간을 흡혈할 때보다 설치류인 기니피그의 피를 빨 때 혈액 부피당 알을 더 많이 낳을 수 있다는 연구 논문이 있다.
그러나 비록 기니피그나 자연 속 동물들이 흡혈 효율은 높더라도 찾아다니며 탐색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으므로 모기와 가장 가까이 살아 찾기 쉽고, 덩치 큰 인간의 피가 더 가성비가 낫지 않을까?
최적의 흡혈 대상이 된 사람을 밤낮없이 괴롭히며 심지어 살인까지 하는 모기! 극성스럽게 우리를 괴롭히는 모기를 완전히 없애고 싶은데,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는 법! 모기에 대해 과연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을까?
모기는 대략 125여 개의 알을 낳고 약 10일 안에 알-애벌레-번데기 시기를 거쳐 모기가 된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세대를 이어간다.
지구 온난화로 봄은 좀 더 일찍 찾아오고 가을은 조금 늦게 물러간다. 모기는 15도 안팎에서 활동을 시작해 26도 정도에서 가장 활발히 움직이므로 기후변화로 약 3주 정도의 시간을 벌면 2세대를 연장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 모기를 매개로 전염되는 질환인 지카 바이러스나 뎅기열, 황열병 감염 확진자는 발생하지 않았고, 설사 발생하더라도 대규모 유행으로 번질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가속화된다면 모기는 더 많이, 더 자주 발생해 우리의 목숨까지도 위협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이렇게 지구가 계속 뜨거워진다면 브라질, 아프리카의 질병이 더는 남의 일이 아니다.
최근 이름도 생소한 ‘러브 버그’라는 털파리가 떼 지어 나타나 한동안 소란스러웠다. 털이 북슬북슬한 낯선 파리가 기괴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하는데, 러브(Love)라니!
몇몇 방송국에서 대담과 토론을 하고, 각종 언론 매체에서 그들의 생리와 생태를 설명하며 오해를 불식시키려 애를 썼지만 ‘보기 싫다는데’ ‘밉다는데’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래도 나쁜 놈은 아니니 며칠만 기다리면 된다고 설득하는 수밖에. 그리고 약 1주일 만에 잠잠해졌다. 어차피 평균 수명이 일주일 내외인 곤충이었으므로.
하지만 모기는 며칠 소란을 피우는 털파리와는 차원이 다르다. 봄부터 가을까지 오랫동안 인간을 괴롭히고 질병을 옮겨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치명적 해충이므로 관리하고 감시해야 한다. 약을 뿌리면 약에 대한 저항성을 갖고, 유전자를 조작하면, 변형을 통해 살아남은 4%의 변형 모기가 질병을 더 확산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니 어떤 경우에도 전부 멸종시킬 완벽한 통제 프로그램은 없을 것 같다. 모기 밀도를 줄이고 접촉을 피하는 수밖에.
생태계 내에서 모기의 역할을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체 곤충은 충분하므로 모기 박멸과 멸종에는 대찬성! 그렇지만 오해와 편견으로 착한 놈들을 죽이는 잘못은 막아야겠다. 눈으로, 느낌으로 혹은 취향만으로 구분하는 느슨한 분류는 모기 아닌 녀석을 모기로 판단할 수 있다.
모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없애야 하는 ‘왕모기’ 천덕꾸러기가 있다. 모기와 거의 비슷하게 생겼고 다리가 유난히 길어 왕모기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이놈들은 사실 피를 빠는 모기가 아니다. 성체의 수명은 고작 10∼15일. 빨리 짝을 찾아 후손을 남기는 일이 바빠 누굴 물고 말고 할 시간이 없다. 일부 식물의 꽃꿀을 빨기도 하지만 대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물기는커녕 가루받이를 하는 사람에게 유익한 곤충이다. 게다가 각다귀의 애벌레는 물속이나 땅속에서 유기물을 분해해 주는 소중한 존재다. 공룡이 살던 1억3천만년 전 지구에 출현한 우리보다 까마득한 선배이고 전 세계에 1만5천종이 사는 성공한 곤충 집안이다.
단지 비슷하다는 외형적 이미지로만 차별당하고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오판해 지레 겁을 먹고 없애려 하지만, 이렇게 훌륭한 놈들을 보호하지는 못해도 보이는 족족 죽이니 얼마나 억울할까?
각다귀도 안 됐고, 털파리도 가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