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 [김학수의 사람 ‘人’] “늙은 붉은 악마가 젊은 붉은 악마와 함께 대한민국의 함성을 카타르 도하에 힘차게 울려 퍼지도록 하겠다” 아리랑 응원단장 권태균 옛골 토성 대표이사
김학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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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7 10:43
[김학수 기자] 컨테이너 하우스 안에는 월드컵과 올림픽 축구 기념품이 하나 가득 들어차 있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주역 히딩크 감독과의 기념 사진, 월드컵 공인구, 월드컵 기념 뱃지, 열쇠고리, 주화, 마스코트 인형, 책자, 기념품, 족자,, 그림, 상패, 기념패, 모자, 장갑 등이 방안 곳곳을 차지했다. 장구, 북, 꽹과리, 나무 신발 등 응원도구도 눈에 띄었다. 수십년간 한국 축구의 성공을 기원하며 해외 각 지에서 벌어진 월드컵과 올림픽에 응원단을 이끌고 가서 수집한 역사적 자료들이다.
서울 서초구 청계산 옛골 초입에 위치한 참나무 장작 바비큐 전문점 옛골토성 권태균(71) 대표이사는 축구 아리랑 응원단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등 한국 축구가 출전한 월드컵과 올림픽 등에서 붉은 악마와 함께 활약했던 아리랑 응원단과 줄곧 함께 해왔다. 한국 축구 경기가 있는 곳이면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를 다니며 응원을 펼쳤다. 북을 치고 꽹과리를 치면 수많은 관중들이 그의 주위로 몰려들어 같이 응원을 했던 것이다.
‘삶에 있어 칠십도 드문 일이다’는 ‘고희(古稀)’를 넘긴 그는 요즘 새로운 응원 준비에 바쁜 모습이다. 3개월 앞으로 다가 온 2022 카타르 월드컵(2022.11.20.-12.18)에서 활약할 아리랑 응원단 원정팀 꾸리기에 나선 것이다. 오는 10월 사전 현지 답사에 앞서 주한 카타르 대사를 만나 지원을 요청했고, 응원단 운영의 세부 계획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26일 옛골토성 청계산점에서 그를 만났다. 태극마크, 한국 태극기, 우루과이, 포르투갈, 가나 국기를 페인팅한 갈색 바지 응원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늙은 붉은 악마라고 불러도 좋다. 한국 축구를 생각하면 늘 기운이 펄펄 난다”고 말했다. 그가 수십년간 단장을 맡은 아리랑 응원단은 회원들이 60-70대 나이로 구성돼 젊은이들로 이뤄진 붉은 악마 응원단과 대조를 이룬다. 나이와 체력 등에선 붉은 악마 응원단에 비해 열세이지만 열정 하나 만큼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게 그의 얘기이다. 아리랑 응원단은 개인 사비를 내 해외 원정 응원을 하는 열혈 축구팬 커뮤니티이다.
◇ 월드컵, 올림픽 축구를 지킨 대한민국 아리랑 응원 단장
-카타르 월드컵 응원단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활약하는 한국 축구가 늘 기다려진다. 올해 어렵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는데 역시 한국 축구가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의 선전을 위해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한국 축구 응원을 하는 것은 마치 무슨 중독증에 빠지는 기분이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 응원단 구성은 이미 마친 상태이다. 25명 정도로 짜여져 있는데 카타르 월드컵 때 현지에서 대표팀을 응원할 계획이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캠프를 차리고 한국 경기가 있을 때 1시간 정도 비행기를 타고 카타르로 날아가 응원전을 펼칠 생각이다. 한국 경기가 없을 때는 두바이 등을 관광하도록 일정을 짜 놓았다. ”
-어떤 응원전을 계획하고 있나.
“사실 카타르 당국이 돔으로 이루어진 경기장 소음을 예방하기 위해 과도한 응원을 통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주한 카타르 대사를 최근 만나 한국 응원단의 편리를 봐달라고 부탁을 했지만 현지 사정이 어떻지 아직 정보가 없다. 현지 한국 교민회 회장에게도 지원을 요청해 놓고 있다. 징, 꽹과리와 함께 나무 신발로 된 응원 도구 등을 준비해 놓고 필요에 따라 응원 도구로 쓸 계획이다. 나무 신발은 휴대할 때는 신발처럼 보이지만 손으로 쥐고 응원을 하면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 때문에 응원도구로 매우 효과적이다. 또 이번 카타르 월드컵 응원단서는 유네스코 무형 문화재로 등록된 제주도 해녀 복장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기회를 갖고 싶다. 해녀 복장을 준비해 입고 응원전을 펼칠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
권 회장은 그동안 한국 축구가 출전한 월드컵과 올림픽 본선에서 징, 꽹과리 등을 주요 응원도구로 활용했다. 한국의 전통 악기인 이들 응원도구를 보고 외국인들이 많은 흥미를 보이며 한국의 응원에 같이 동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응원 구호나 노래로 주로 어떤 것을 쓰나.
“우리의 전통 민요인 아리랑와 함께 한일월드컵 때 부른 ‘오 필승 코리아’를 많이 부른다. ‘오 필승 코리아’는 월드컵에서 다른 어떤 나라 응원가보다 인기를 끌고 있다. 다른 나라 응원단들이 이 노래를 들으면 ‘코리아 월드컵’이라며 엄지척을 많이 해준다. ”
-월드컵 응원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국인이라면 2002년 한일월드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당시 16강을 예상하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 포르투갈전에서 박지성의 천금같은 결승골로 16강 진출이 확정되 전까지 다음 경기 16강 입장권을 준비하느랴 얘를 먹은 적이 있었다. 대전에서 이탈리아전, 전주에서 멕시코전을 두 경기에서 어디가 될지 몰라 두 경기 표를 다 500장씩 구입해 놓았다가 결국 대전 경기로 확정돼 전주 경기 표는 어린이 축구재단에게 기부한 일이 있었다. 그 때는 정말 한국축구가 예상을 뛰어 넘어 승승장구해서 기분좋게 응원을 했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의 예선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을 앞두고 국내 사정이 있어 일시 귀국했다가 현지 응원단내에서 일부 감정싸움이 터졌다는 얘기를 들은 뒤 급하게 다시 러시아 카잔으로 날아가 경기 20분 후 경기장에 도착한 적이 있었다. 한국이 루스타임 때 손흥민이 1골을 넣으며 2-0으로 전 대회 우승팀 독일을 제압했을 때 스스로도 놀라면서도 감격적이었다고 한다.
권 회장은 “응원을 하다보면 오해와 편견이 있을 수 있다. 일부에서 지나친 감상주의로 다른 나라 팬들을 의식하지 않고 무리한 응원을 하다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많다. 나라고 편견이 없었을까. 하지만 모두 축구를 통해 서로 이해하고 한 마음을 느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남다른 ‘축구 사랑’
1972년 6월 서울 동대문운동장에서 한국축구대표팀과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 펠레의 브라질 산토스 방한경기가 열렸다. 20대 초반의 그는 축구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보면서 축구와 첫 인연을 맺었다.
“이회택이 대표팀 스트라이커로 펠레와 경기를 했었다. 당시 운동장 담을 타고 술병을 공급하던 행상을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경기를 볼 기회가 생겼다. 펠레와 이회택의 경기 모습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그는 말했다.
-우연히 접한 축구 관람이 응원단장으로 이어지기까지를 설명해달라.
“1986년 한국이 멕시코월드컵에 진출했을 때 영화배우겸 가수 김민종의 아버지 김주오씨가 주축이 돼 아리랑 응원단이 만들어 졌었다. 나두 이 모임에 참여하게됐는데 본격적으로 간여한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일공동응원단을 구성하기도 했는데.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재일동포 분들과 협의해 한일응원단을 만들었다. 코리아와 재팬의 영어 알파벳 앞글자를 따서 ‘KJ 클럽’ 이라는 한일 공동응원단을 결성했다. 일본에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일본 NHK 방송은 월드컵 특집으로 우리 응원단을 취재하기도 했다. 한일간 축구 응원을 통해 양국이 서로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생각한다.”
-히딩크 감독과의 인연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대표팀 주장 홍명보를 통해 히딩크 감독을 소개 받았다. 과천점으로 초대해 히딩크 감독 방문 행사를 가졌다. 홍명보와는 홍명보 장학재단을 통해 축구 선수 육성 장학금을 전달하며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왔다.”
권 회장이 운영하는 옛골 토성에는 히딩크 감독을 비롯해 골프스타 안니카 소렌스탐, NFL 한국인 혼혈 MVP 하인스 워드, 격투기 황제 표도르, 필리핀의 세계적인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 등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이 다녀갔다.
◇ 한국 축구와 닮은 삶
그의 삶은 한국 축구와 닮은 점이 있다. 한국 축구가 세계 변방의 불모지에서 출발, 월드컵 4강신화와 월드컵 본선 10회 연속 진출의 위업을 이루었듯이 그의 삶도 밑바닥에서 시작해 요식업에서 국내 정상권으로 발돋음했다. 그는 외식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한다. 명동에서 바나나를 팔던 행상에서 시작해 한때 54개 매장을 보유한 외식 프랜차이즈 '옛골토성'을 키워냈다.
-오뚝이 인생을 사신 것으로 알려졌는데.
“ 그동안 실패와 좌절을 많이 맛보면서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한때 사업 실패로 한강 잠수교 위에서 뛰어 내리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번 해보자고 굳은 결심을 하고 이겨냈다.”
그는 명동 일대에서 바나나 행상을 시작한 것은 스물두 살 때였다. 거리에서 좌판을 펴고 바나나를 진열해 팔다 리어카로 과일 행상을 했다. 과일 행상으로 번 돈을 아내가 하는 반찬가게에 쏟아부었지만 빚만 쌓였다. 빚을 다 갚고 난 뒤에는 다시 식품가게를 열었다. 어느 정도 살 만하다 싶었는데 가게에 불이 났다.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 강남으로 터전을 옮겨 포장마차를 했다. 음식 솜씨와 장사 노하우가 있어서였는지 손님이 몰리기 시작했다. 유명 연예인뿐 아니라 유명 일식집 주방장까지 포장마차를 찾아왔다. 포장마차로 돈을 제법 벌었다. 1995년 청계산 원터골에서 고깃집을 시작했다. 외환위기 시절 해장국을 3000~3500원 받고 팔던 이 고깃집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을 정도로 아주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2004년 잘 운영됐던 고깃집이 임대계약 만료로 정리를 해야 했다. 당시 골수염을 앓으면서도 바비큐 식당인 현재의 옛골토성 청계산점을 차렸다. 다행히 식당이 참나무 장작 가마로 유명한 바비큐 전문점으로 자리매김하고 프랜차이즈 사업도 자리를 잡게됐다.
-매년 1월1일 ‘사랑의 떡국 나눔 행사’를 해오고 있는데.
“2001년 처음 시작해 20여년 이상을 맞고 있다. 고객 감사 차원에서 매년 1000명 이상의 고객에게 무료로 떡국을 나눠 주고 있다. 주변의 소외계층과도 함께 초청해 따뜻한 위로를 하고 있다.”
권 회장은 독도지킴이 후원회, 삼성병원 어린이 담요 후원, 꿈나무마을 축구단 후원, 사랑의 떡국 나눔 행사, 사랑의 배추할인 판매행사, 바우뫼 복지회관 사랑의 떡 전달 등 다양한 사회 봉사 활동과 나눔활동을 펼쳐왔다. 2014년 대한민국 세종대왕 나눔봉사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영원한 축구 응원단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권 회장은 축구에 대한 열정은 누구보다도 뜨겁다. 비록 사업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지만 마음만은 항상 축구로 향해 있다. “일을 하면서도 축구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축구는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자양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축구 응원단장을 하기 싫은 때는 없었나.
“축구는 나의 삶이요 믿음이라고 본다. 응원을 통해 한국 축구 대표선수들의 기가 살아나는 것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다. 운동 선수에게 응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나는 잘 안다. 오랫동안 응원을 하면서 사기에 민감한 영향을 받는 운동 선수들을 많이 봐왔다. 지금까지 응원단장을 내 스스로 좋아서 했던 것이며,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
권 회장은 1살 아래의 아내 이연희(70)씨와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때 딱 한번 동행하지 않았다. 그 이외에 권 회장의 응원에는 항상 아내가 함께 했다. 벌써 응원을 같이 한 게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20여년이 훌딱 지났다.
-부부 내외가 같이 응원을 다녀면서 느끼는 점은.
“아내가 밀어주지 않으면 응원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항상 나를 위해주고, 한국 축구를 좋아하는 아내 덕분에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영원한 응원단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나는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하는 평범한 한 개인인 것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