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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 [곤충, 그 아름다운 이야기] 반짝임 뒤에 숨겨진 반딧불이의 힘

이신재 | 2022-10-0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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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첩산중의 골짜기, 어두컴컴한 밤. 저 하늘엔 별들이 반짝이고 땅 위 숲 속에서는 반짝 반짝 별처럼 빛나는 반딧불이 세상이 펼쳐진다. 해가 짧아지고 태양의 열기가 식는, 딱 이맘때면 멈춘 듯 적막한 어둠을 가르고 리듬에 맞춰 춤추는 늦반딧불이의 마법 같은 ‘빛의 향연’이 시작된다. 하늘과 별과 반딧불이는 밤 새워 봐도 질리지 않고 낭만적이다.

늦반딧불이는 애반딧불이나 파파리반딧불이에 비해 가장 늦게 출현한다고 붙은 이름이다. 반딧불이의 또 다른 이름인 개똥벌레는 늦반딧불이 애벌레를 두고 이른다. 옛날 집 주변에 개똥이나 닭똥 같은 동물 배설물을 퇴비로 사용하기 위해 쌓아놓았던 축축한 두엄더미위에서 배 끝에 빛을 달고 달팽이를 먹는 늦반딧불이 애벌레를 보고 지은 이름이다. 늦반딧불이 애벌레의 행동 특성을 아주 정확하게 묘사한 소박한 이름이다.

하늘의 반짝이는 별보다 더 가까이, 손에 잡히는 별을 보며 황홀한 기분에 넋을 잃고 가장 신비로운 자연 현상에 빨려든다.

반’은 '반짝'과 마찬가지로 빛이 나는 모습을 표현한 의태어이며, 반딧불이과를 지칭하는 '람피리데(Lampyridae)'도 '램프(Lamp)'와 어원이 같고 반딧불이를 뜻하는 한자인 형(螢)자도 불과 벌레를 합친 글자다. 반딧불이는 빛나는 벌레를 말한다.

짝을 찾는 수단으로만 반딧불이의 발광 현상을 이야기한다면 알에서 나오는 빛이나 애벌레가 반짝이는 형광색 빛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반딧불이의 빛은 짝짓기를 위한 통신 수단이기도 하지만 알, 애벌레, 번데기 어른시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생존을 보장하는 비장의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 짝을 유인하는 발광 능력을 한 단계 끌어 올려 그들의 생존에 중요한 기능을 하는 특별 기관으로 만들었다.

움직이지 못하는 알이나 번데기는 비록 약한 빛이나 움직일 수 없어 앉은 채로 먹힐 수 있다. 풀 사이로 기어 다니는 애벌레도 숨어서 움직이지만 쉽게 표적이 된다. 그러나 짝 찾아 날아다니는 어른 반딧불이의 연한 초록 등불은 어둠 속 까만 밤에 아주 두드러져 정확히 짝을 찾을 수 있지만 노출이 심해 더 위험해 보인다. 보다 더 위험한 행동은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매우 느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루시부파긴(Lucibufagin)을 장착한 반딧불이를 공격할 천적은 없다.

루시부파긴. ‘빛을 가져오다’라는 뜻의 라틴어 ‘루시퍼(Lucifer)’와 두꺼비 속(屬)의 '부포(Bufo)'를 합쳐 만든 단어로, 두꺼비 피부에서 분비되는 독성물질인 ‘부포톡신(bufotoxin)’같은 독성을 지닌, 빛이 나는 독성물질을 뜻한다. 반딧불이의 빛이 보내는 화학적 메시지를 무시하고 한 입에 덥석 물은 천적들은 바로 죽는다.

먹기 편하고 영양분 덩어리인 알은 무당벌레나 집게벌레 혹은 개미 같은 천적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다. 그러나 이러한 천적들이 먹지 못하는 알이 있다. 북아메리카 동부의 포투리스(Photuris)속의 반딧불이 알은 어미로부터 넘겨받은 루시부파긴을 갖고 있어 천적들이 자극했을 때 빛을 내는데 이 빛이 알을 방어하는 무기가 되었다.

포투리스(Photuris)속의 암컷 반딧불이는 사냥감인 포티누스(Photinus)속(屬) 암컷의 짝짓기 신호를 흉내낸다. 먹이를 유인하고자 포식자가 먹이 흉내를 내는 공격 의태(Agressive Mimicry)로, 가짜 신호를 따라 온 포티누스(Photinus)속(屬) 수컷을 잡아먹음으로써 자신에게는 없었던 루시부파긴을 몸에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외부에 있던 먹이를 먹음으로써 먹이 속에 들어있는 독성 화학 물질을 자신의 방어 무기로 활용할 뿐만 아니라 알에게 물려주어 자식까지 지켜 주었다.

밤에 어슬렁거리며 움직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 두꺼비도 반짝이는 북방반딧불이(Lampyris noctiluca) 애벌레는 맛도 없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루시부파긴 같은 독성 물질 뿐만 아니라 생물 발광(Bioluminescence) 자체만으로도 두꺼비를 학습 시킨 것이다.

별처럼 빛나는 ‘지상(地上)의 별’인 반딧불이는 몸이 말랑말랑한 연약한 딱정벌레가 아니라 막강한 힘을 가진 경이로운 생물체였다. 그러나 그 힘도 어둠이 있어야 가능하다. 전국 구석구석 세워진 가로등과 불야성처럼 밝히는 불 때문에 빛 없는 곳이 없다. 어떻게 하면 경이롭고 낭만적인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을 계속 볼 수 있을까?

<글=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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