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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생명을 건 숙명, 곤충들의 대 이동

이신재 | 2022-11-07 11:09
곤충도 고향 찾아 대를 이어 이동한다.

9월말, 불볕더위를 잘 버틴 부추 냄새 알싸한 연분홍빛 두메부추꽃이 한창이다. 알록달록 여러 색을 섞은 화려함도 없고, 별 모양, 하트 모양, 대롱 모양 같은 특별한 모습도 아닌 그저 수수한 분홍 단색의 동그란 공 형태의 꽃이다. 정말 두메산골에서나 필 것 같은 촌스러운 외양이지만 영양분은 최고. 늦여름부터 피기 시작해 가을로 접어들면서 절정인 두메부추는 파와 마늘이 속한 알리움(Allium)을 학명(속명)으로 사용하는 백합과 식물로 강하고 자극적인 냄새를 풍긴다.
두메부추에서 꿀을 빨고 있는 산호랑나비이미지 확대보기
두메부추에서 꿀을 빨고 있는 산호랑나비


신진대사를 돕고, 스테미너를 증강시켜 역동적 행동을 ‘부추기는’ 부추는 영양과 맛이 뛰어나 어느 음식에나 들어가는 최고의 에너지원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종류의 꽃들이 즐비한데도 굳이 두메부추가 피어있는 작은 공간에 그렇게 많은 곤충들이 바글바글 떼지어 몰려오는 걸 보면 사람뿐만 아니라 곤충들에게도 먹기 편하고 영양분 만점인 먹이로 이용되는 것 같다.

은줄표범나비이미지 확대보기
은줄표범나비

작은 멋쟁이 나비, 유럽서 열대 아프리카까지

곤충도 고향찾아 대를 이어 이동한다. 여름잠 실컷 자고 깨어난 은줄표범나비와 은점표범나비가 배가 고픈지 경계를 풀고 허겁지겁 두메부추 꿀을 빤다. 알이나 번데기가 아닌 어른벌레로 겨울을 나야 하는 큰멋쟁이나비, 작은멋쟁이나비와 각시멧노랑나비, 네발나비는 두메부추 꿀로 몸을 뜨겁게 달구며 월동 준비를 한다. 부지런히 날갯짓하는 나비와 맑고 깨끗한 햇빛이 내는 소리들로 부산하다.
세상을 인식하고 적응하는 방식이 제각각이라, 같은 종이라 해도 지역에 따라 생활사가 다를 수 있는데 작은멋쟁이나비가 그렇다. 불빛 타오르는 것같이 붉은빛 화려한 날개 무늬가 멋진 작은멋쟁이나비(Cyntia cardui)는 전 세계적으로 고르게 분포하는 나비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작은멋쟁이나비는 추위를 기꺼이 받아들여 겨울을 나는데 반해 유럽의 작은멋쟁이나비는 해마다 가을이면 큰 무리를 이뤄 유럽에서 지중해를 건너고 북아프리카와 사하라사막을 거쳐 열대 아프리카로 가는 장거리 이동을 한다. 아프리카에서 겨울을 난 뒤 이듬해 봄, 길을 되짚어 유럽에서 봄을 맞는 주기적 이동이 확인되었다. 이동 중 잠시 기착하는 곳에서 계속 번식을 하고 또 이동을 한다. 이렇게 한 차례 왕복하는 동안 작은멋쟁이나비는 할머니에서 손녀까지 대를 이어 번식하는 셈이다.

작은멋쟁이나비이미지 확대보기
작은멋쟁이나비

아프리카에서 나비 애벌레가 먹었던 쑥의 성분이 유럽의 작은멋쟁이나비 날개에 남아 있었고, 유럽에서 나비 애벌레가 먹었던 쑥의 성분이 아프리카의 작은멋쟁이나비 날개에 남아있어 이동 경로를 확인한 것이다. 아마 큰멋쟁이나비도 비슷한 생활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동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작은멋쟁이나비 애벌레이미지 확대보기
작은멋쟁이나비 애벌레
일정한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철새들은 더워서, 추워서 철따라 대양을 건너고 대륙을 넘나들지만(Migration), 체온 조절이 가능한 변온동물인 곤충은 단순히 추위를 피하기 위하여 이동하는 것만은 아니다. 정든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건 생명을 건 숙명이기 때문에 해마다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절대적이어야 한다. 신비로운 여정인 이동이야말로 지역을 달리하여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토착하고 있는 질병을 피하기 위한 최고의 생존 전략이 아닌가 싶다.

북미 모나크 나비 여행 유명, 토착질병 피하고 유전다양성 위해

곤충의 대 이동은 사실 모나크나비(Monarch Butterfly, 왕나비)가 대표적이다. 캐나다와 미국 동부에 살던 모나크나비는 큰 무리를 지어 멕시코까지 이동한다. 2011년 멕시코 엘 로사리오에서 만난 수천만 마리의 나비 비행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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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솜털 구름 사이로 선선한 가을바람 불어오자 나무를 흔들던 매미 소리 대신 귀뚜라미 노랫소리가 정겹고, 다 들어간 줄 알았던 반딧불이가 반갑게 날고 있다. 청량한 밤하늘에 늦반딧불이가 아직 반짝거리며 날고 옥구슬 굴러가는 방울벌레 소리 가득하니 가을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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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전통적인 삶과 역사를 깊이 알고 싶어서 소리를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을 즐겨보았는데, 올 초부터 연구소에서 곤충의 소리를 본격적으로 녹음하고 있다. 귀를 쫑긋 세우니 새소리, 개구리 소리뿐만 아니라 애벌레 소리,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나무가 숨 쉬는 소리도 들린다. 늘 충만한 생명이 있었는데 숨겨져 있던 그들의 소리를 비로소 들을 수 있으면서 멜로디가 귀에 익기 시작했다.

글·사진/이강운 홀로세 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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