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생각한 일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다. 더욱이 그것이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은 선뜻 나서지 못한다. 하지만 자신의 신념 하나로 새로운 시작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주인공이 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황칠나무를 보고 '혈혈단신' 제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고 한다.
황칠나무는 제주도를 비롯해 우리나라 남부 해안 등에 자생하는 우리나라 고유 수종이다. 특히 화산토양에서 자란 제주 황칠나무는 약성이 뛰어나다.
실제로 항암, 항당뇨는 물론 노화방지, 성장 촉진, 골다공증 예방, 고혈압, 고지혈증, 변비 해소, 통풍 치료, 정혈작용, 지방분해, 신경안정, 뇌졸중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1681~1763년)의 '성호사설'은 중국의 진시황제가 사신 서복에게 명해 구해오라고 했던 '동방의 불로초'가 바로 황칠나무라는 이야기를 전한다.
학명도 '덴드로파낙스 모비페라'. 번역하면 만병통치 인삼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서울 용산 출신인 구 이사장은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IT회사에 취직해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제주 황칠나무'에 대해 알게 됐다.
당시 마케팅 분야 업무를 했던 구 이사장은 "황칠나무의 효능을 활용한 제품을 만들면 대박을 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 사직서를 던지고 지인들과 2012년 제주 황칠나무를 원료로 건강식품을 만드는 회사를 설립했고, 서울에서 영업을 책임졌다.
이후 제주본초협동조합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한경면 고산리의 마을기업으로 만들어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기업활동을 8년째 이어오고 있다.
제주본초협동조합은 제주에서 자생하는 약물들을 활용해 마을기업과 마을 사람들이 함께 만든 고산리 마을 협동조합이다.
이들은 제주를 대표하는 꽃인 동백꽃, 유채꽃, 메밀꽃을 주 원료로 전통주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6차산업을 주력사업으로 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주요 생산품으로 가공농산물제품, 건강식품 등이 있다.
구 이사장은 "꽃으로 술을 만든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라며 "레시피와 연구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6차산업으로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 또한 높아졌다. 제주 고산리 마을 주민들의 고용 창출과 더불어 1억원이 넘는 마을 발전 기부금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관광자원이 부족한 고산리에 마을에서 운영이 어려운 다목적회관 건물을 양조장, 전시장 등으로 운영하면서 관광객의 발걸음을 잡고 있다.
마을협동조합 답게 이곳의 수익금 일부는 마을 발전으로 다시 돌아가는데, 그 시작이 바로 황칠나무를 활용해 만든 발효술 흑돈주이다.
흑돈주에는 재치있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지고 있다. 오래 전 제주에서는 흑돼지가 집을 나갔을 때 다시 되돌아오게 하는 방법으로 술 향기를 풍겼다고 한다. 그런 지혜를 빌려 흑돈주는 이름에 맞게 흑돼지와 궁합이 잘 맞는 황칠나무를 원료로 사용했다.
도수는 16%로 부드럽고 깔끔한 맛이 장점이다. 또한 이곳 양조장은 왕지케 양조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도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제주본초협동조합의 양조장이 있는 고산 마을은 제주의 가장 풍요로운 지역 중 하나로 오래전 탐라국 왕들이 대대로 제를 지내기 위해 이곳을 방문해 왕지케로 불렀다고 한다. 3대째 그 명맥을 유지하고 계승하는 제주본초협동조합은 제주흑돈주 이외에도 어우야, 황칠주, 주작 등 다양한 발효 술을 판매하고 있다.
지역사회 환원을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인 구 이사장은 "행안부 마을기업에 2017년 처음으로 지정돼, 제주 마을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지역 농산물을 수매한 뒤 제품화와 판매를 거쳐 이익금의 일부를 다시 마을에 환원하는 구조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구 이사장은 "지역주민과의 관계를 맺는데 일방적인 것은 없다고 본다"며 "결국 서로에게 도움이 돼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마을기업에 선정되기까지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공동체를 중심으로 자발적 참여 및 민주적인 운영과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공동체 회복 등에 기여
(공동체성)와 지역 내 다양한 공헌 및 상생을 위한 활동을 통해 공익적·공공적 가치를 창출했는지
(공공성), 주민이 주도해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지역 자원을 활용한 수익 사업을 통해 지역 활성화에 기여
(지역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안정적인 매출 및 수익을 확보하고 지속가능성 확보
(기업성)로 나뉜다.
우수 마을기업은 행정안전부 지난 2011년부터 지역 자원을 활용해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지역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마을기업에 대해 지원해 오고 있는 제도로, 우수 마을기업에 선정되면 제품개발, 기반시설 확충, 홍보‧판촉(마케팅) 비용 등으로 최대 7천만원이 지원된다.
제주본초협동조합을 필두로 구 이사장은 2017년부터 마을기업에 선정된 후 2022년 제주도 우수마을기업(제주도 대표), 2022년 전국 최우수마을기업 선정(행정안전부), 2022년 전국 마을기업 홍보모델(행정안전부)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내면서 지역발전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지역의 예비마을기업들을 상대로 멘토링과 강연등 육성과 교육에도 힘쓰고 있으며, 마을기업육성위원(제주도청소속)으로도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구 이사장은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그는 지역에서 생산한 전통주를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독립운동가 및 유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했다.
조합에서 개발한 독립지사 헌정주인 '위국헌신'은 붉은빛을 내는 제주보리로 만든 증류주를 선보인다. 이 헌정주의 수익금은 소액이긴 하지만 아직 유해발굴이 이루어지지 못한 독립지사의 유해를 발굴하는데 전액 기부됐다.
그리고 2022년 9월 구 이사장은 4·3유족 격려를 위해 써달라며 5천3백여만원의 금품과 물품을 제주4·3평화재단(이사장 고희범)에 기탁했다.
제주본초는 3년만에 개최되는 4·3유족한마음대회 행사 진행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자사 제작의 건강음료 등 5천여만원 상당의 물품과 현금 3백만원을 기탁했다.
특히 현금기부금은 제주본초에서 제작되는 제주전통주 '동백꽃 제주'의 판매 이익금으로, 구자권 이사장은 "앞으로도 '동백꽃 제주' 판매 수익금 일부는 4·3유족을 위해 쓰겠다"고 밝혔다.
사실 제주본초협동조합도 코로나19의 타격을 피해갈 순 없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년여 동안 수익금은 반토막이 났고, 휴업 상태로 있어야 하는 힘든 시간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코로나19도 구 이사장의 꿈과 비전을 막을 순 없었다. 꾸준히 제품 개발과 공장 증설 및 지속적인 사회공헌을 이어오면서 매년 꾸준히 매출을 올리고 있다.
제주본초협동조합은 전통주에서 나아가 황칠을 재료로 만든 이노큐도 선보이고 있다.
이노큐에는 불면증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황칠, 페퍼민트, 칡, 진피, 레시틴, 오미자, 섬오갈피 등이 함유되어 있으며 모두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등록된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인공색소와 인공감미료, 보존제는 들어있지 않아 안심하고 복용할 수 있다.
구 이사장은 이노큐는 잠을 재우게 하는 성분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대신 마음을 안정시키고 머리가 맑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현대의 불면증 원인 중 하나가 수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인데, 심신을 안정시켜주니까 자연스레 불면증도 치료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제주본초협동조합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누룩을 원료로 한 화장품도 개발했다.
구 이사장은 "제주도 서쪽 고산지대에 붉은 누룩이 자라는데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이런 누룩은 자생하지 않는다. 오직 제주도에서만 나오는 누룩으로 해당 성분을 제주 테크노파크 박사들과 함께 국책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제주도 누룩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로부터 딸을 시집보내기 일주일 전에 누룩을 만들어 목욕을 시켜 시집 보내는 풍속이 있다. 유독 서쪽 지역에서만 이런 풍습이 생겼는데 누룩으로 목욕을 하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전해진다.
구 이사장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누룩을 활용한 화장품 제조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그는 누룩에 대한 성분 분석 및 과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연구를 의뢰했고, 주름 개선 효과 및 미백 효과와 더불어 의외의 결과에 놀랐다고 한다.
바로 아토피와 여드름 치료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받게 된 것. 하지만 의약품이 아닌 화장품이었기 때문에 기능성 화장품으로 자리잡기 위해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구 이사장은 "우리가 만든 제품들은 기존 시장에는 하나도 없는 모두 새로운 제품들"이라며 "제품 개발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와의 상생이라는 초심도 잃지 않기 위해 마을 기업의 위상을 세울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가장 큰 아픔인 4.3 사건을 기리기 위해 '동백꽃 제주'라는 헌정주를 개발하고, 수익금의 일부를 희생자유족들을 위해 매년 기부하는 것도 지역상생이라는 초심을 지키고자 이행하고 있는 약속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구자권 이사장은 "제주는 청정헬스푸드 지역특구로 지정될 만큼 대한민국 천연자원의 보고로써 그 가치가 아직도 무궁무진하다"며 "십수년간의 IT 마케팅 경력을 바탕으로 숨겨진 가치들을 발굴해 내 시장에서 원하는 생활에 이로운 제품들을 개발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구 이사장은 "그러면 지역발전과 상생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고 생각한다"며 "지속적인 혁신을 통한 창조개발로 지역을 대표하는 우수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경호 월간마니아타임즈 기자 report@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