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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6] "그거 먹을 바에는 든든하고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이 낫지"

[중구 직장인의 맛점 유랑기] 중구형, 맛집 좀 알려주오

김선영 기자 | 2022-11-0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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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마니아타임즈 김선영 기자] 바람에 찬 기운이 조금만 실려도 간사한 입맛은 뜨끈한 국물을 향해 달려간다.

시리고 마른 손을 비비며 기다리다 받는 국밥 한 그릇. 따뜻하고 풍미 깊은 국물을 한 숟갈 입에 넣으면 어깨만큼이나 옹송그렸을 장기들이 기지개를 켜는 기분마저 든다. ‘이게 바로 해장이구나’ 싶다.

해장국의 어원은 장(腸)이 풀리는 게 아니라 숙취가 풀린다는 해정(解酲)에서 왔다. 酲은 숙취, 술병을 뜻하는 한자다. 하지만 오목한 뚝배기를 비워낼 수록 뱃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니, 解腸도 맞다고 우겨본다. 바닥까지 긁어가며 완뚝(뚝배기를 완전하게 비운다는 뜻)하고 가게를 나서면, 아까의 찬 바람쯤은 이제 시원하게 느껴진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한때 ‘국밥 한 그릇’이 화폐 단위로 통용되기도 했다.

“그 돈이면 든든한 국밥 한 그릇이 훨씬 낫지”, “그 돈 주고 그거 먹을 거면 차라리 조금 더 보태서 국밥 한 그릇 든든하게 먹고 말지”, “그 돈이면 국밥이 몇 그릇인데 그걸 먹냐”라는 말이 밈으로 떠오르며 ‘1 파스타=3 국밥’, ‘1 쌀국수=1.5 국밥’이라는 공식까지 등장했다.
어떤 음식이든 국밥으로 치환해 계산하며 국밥 국밥 노래 부르는 사람을 ‘국밥충’이라는 멸칭으로 부르게 된 것도 그즈음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국밥충이다.

국물이 없으면 밥을 못 먹는 식성을 가진 탓에 정 먹을 국물이 없으면 물이라도 말아 깍두기를 얹어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전날의 과음으로 지친 삭신에 조심스레 부어 넣는 따끈한 국물의 위력을 주당들은 다 안다. 그리고 따스하게 스미는 그 국물에 정신이 들고 나면 바로 입맛을 다시며 화려한 손목 스냅을 꺾어 “한 잔 콜?”을 외치게 하는 그 마력도.

콩나물국밥, 북엇국밥, 순대국밥, 장터국밥, 선짓국밥 등 국밥의 이름이 붙은 것들도 그러하지만 육개장, 내장탕, 짬뽕 등 일단 밥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보이는 모든 음식을 사랑한다. 그런 나에게 국밥은 운명의 음식에 가깝다. 그렇기에 나는 기꺼이 ‘국밥蟲’이 아니라 ‘국밥忠’이라 자평한다.

길고 긴 국밥집 리스트를 훑어보니 그 가운데도 순댓국집이 많다.

농민백암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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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국밥 이야기에 이 집을 빼놓고 이야기하면 아마 '맛알못'소리를 들을 것이다. 북창동 중앙 거리에 위치한 이 집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북창동에서 가장 인구 밀도 높은 곳을 찾아보면 바로 이 집 앞이다.

11시 즈음에 달려가도 벌써 대기표에 이름이 절반 가까이 올라 있는 걸 보면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회사에 다니길래 이 시간에 나오는 거야?'하는 생각이 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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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를 기다린 후 내 이름이 호명되면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만끽하며 가게로 들어서지만 그것도 잠시, 주문한 국밥을 초조히 기다리며 이미 먹고 있는 손님들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보게 된다.

이 집의 순댓국은 걸쭉하고 깊은 맛이 난다. 육수의 감칠맛과 들깨의 구수하고 녹진한 맛, 후추 향이 어우러진 국물에 칼칼한 빨간 양념이 방점을 찍는다. 이대로가 이미 완성형 국물이지만, 취향에 따라 부추를 듬뿍 얹으면 또 새로운 개운한 맛이 있다.

건더기로는 촉촉한 머리 고기와 야채 순대가 들어 있다. 묵직한 육수가 부담스러워질 때쯤 아삭한 고추를 한입 먹으면 입 안이 개운해진다. 이 집의 고추는 유난히 아삭하고 싱싱해서 고추 맛집이라는 우스갯소리를 듣기도 했다.

위치 : 서울 중구 남대문로1길 33
영업시간 : 11:00~21:00 토요일 11:00~15:30 (일요일 휴무)
가격 : 순대국 9천원

화목순댓국



여의도에 본점을 두고 있는 화목순댓국 광화문점. 오랫동안 유재석 픽 순댓국집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었는데,최근 성시경의 유튜브에 소개되면서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성시경 픽 순댓국집으로 소개되는 분위기다.

위의 순댓국집 버금가는 대기 줄을 자랑하는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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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순댓국은 순대만 들어있는 순순대국과 내장만 들어있는 내장탕, 순대와 내장이 섞여 있는 순댓국으로 나뉘어 있다. 특히 내장탕은 일반적으로 돼지 부속물 모둠을 이용한 것과 달리 곱창이 전부다.

질기지 않고 부드럽게 익은 곱창이 매력적인 내장탕은 해장과 동시에 술을 부르는 마력이 있다. 곱창 특유의 풍미가 남아 있는 '어른의 맛'으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이 집은 국 속에 토렴한 밥을 미리 말아 낸다. 말아져 나오는 밥이 싫다면 주문할 때 따로 달라고 청할 수 있다.

곱창의 풍미를 좋아하는 나는 그저 '호 불어'다 먹을 수밖에.

위치 :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5길 11
영업시간 : 06:00~다음날 02:00, 브레이크타임 09:30~11:00, 14:00~18:00 (토, 일요일 휴무)
가격 : 순대국 9천원, 순순대탕 9천원, 내장탕 9천원

호남대박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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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의 악기 종합상가인 낙원상가 동편에는 국밥 골목이 있다. 예닐곱 가량의 점포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돼지국밥, 순대국밥, 소머리국밥 등을 팔고 있다. 위의 순댓국집들이 대부분 직장인의 해장과 점심을 책임진다면, 이곳은 탑골공원 옆이라 그런지 노(老) 손님들로 가득 차 있다. 어르신들이 많은 탓에 가격이 저렴한 건지, 가격이 저렴해 어르신들이 모이는 건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과거 어떤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찍은 대선 광고 속 후루룩후루룩 맛나게 국밥을 먹던 장소가 바로 이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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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맛을 내는 여러 집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곳은 호남대박집이다. 이 집에서는 밑반찬과 함께 삶은 간 몇 점을 주는데, 촉촉하고 부들부들한 게 별미다. 차갑게 내오는데도 퍽퍽하거나 딱딱하지 않다. 맛있게 먹고 있으니 흔쾌히 간 한 접시를 더 내주신다. 저렴한 가격의 보편적인 순댓국들이라 순위를 매기기 힘들지만, 저 간 한 접시로 인해 이 집의 단골이 되고 말았다.

편육을 내주는 집, 편육과 간을 내주는 집 등 가게마다 서비스가 조금씩 다르다. 이 골목의 식당들은 가격이 워낙 저렴해서 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을 내거나 계좌이체를 해야 한다.

위치 :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418-3
영업시간 : 07:00~21:00 (일요일 휴무)
가격 : 돼지국밥 7천원, 소머리국밥 9천원

농가순대국



을지로 유명 순댓국집에 가려져 있는 숨은 맛집. 얼큰하고 진한 국물도 일품이지만, 오소리감투를 듬뿍 넣은 얼큰탕이 매력적인 곳이다.
바글바글 끓는 뚝배기를 받아 숟가락으로 휘저으면 탱글한 오소리감투가 가득 들어있는 걸 볼 수 있다. 한 조각 꺼내 새우젓을 찍어 입에 넣으면 오돌오돌 질겅거리는 식감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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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생수 대신 헛개차를 내준다. 해장이 절실한 날, 주문을 기다리며 한 컵 들이키는 헛개차는 그야말로 단비 같은 느낌이다.
근처에 유명한 순댓국집이 몇 곳 있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집이지만, 일단 한 그릇 들이켰다면 그걸로 게임은 끝이다.

위치 : 서울 중구 충무로4길 5
가격 : 순대국 8천원, 얼큰탕 9천원

[김선영 월간마니아타임즈 기자 /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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