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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7]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지난 1년간 정보량 총 1만1,210건…"긍정률 53.46% 기록"

정태화 기자 | 2022-12-08 15:18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화훼농가를 돕기 위해 ‘플라워 버킷 챌린지’ 캠페인에 동참했다. ©NCsoft이미지 확대보기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화훼농가를 돕기 위해 ‘플라워 버킷 챌린지’ 캠페인에 동참했다. ©NCsoft
정태화 기자 “저 친구를 주목해야 겠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던가? 현대그룹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이 병역특례로 입사해 매년 승진을 거듭하며 어린 나이로 현대전자 개발팀장이 된 어느 젊은이를 두고 한 이야기다. 고 정주영 회장이 관심어린 눈길을 보낸 이제 갓 20대 중반의 젊은이는 바로 1990년대 말~2000년 대 인터넷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과 함께 IT 벤처기업으로 성공신화를 쓴 김택진 NC 소프트 회장이다.

성공을 꿈꾸는 MZ 세대들에게는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기업가로 손꼽히는 김택진 회장(CEO)은 오롯이 자신의 능력으로 NC 소프트를 세계적인 온라인 게임 기업으로 키워 냈다. 그렇기에 MZ 세대들에게는 더욱 선망의 대상이자 도전해 뛰어 넘고 싶은 상징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서울 강동구에서 운수업을 하는 꽤 잘 나가는 집안이었지만 이후 아버지가 사업부도를 맞으며 학창시절에는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부모님의 힘든 모습을 본 김택진은 부모님을 돕는 길은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기계를 유난히 좋아했다. 기계를 보면 분해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직성이 풀릴 정도였다. 중학교에 다니면서 고등수학을 마스터한 그는 1985년 당시 신흥 명문으로 이름을 날린 대일고등학교 때 당시 갓 떠오르기 시작한 컴퓨터에 눈길을 돌렸다.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서도 학교 공부는 등한시한 채 컴퓨터(PC)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 청계천 세운상가에 살다시피 하면서 컴퓨터에 파고 들었다. 이 덕분에 컴퓨터의 작동원리와 기계 구조를 훤히 그릴 수 있는 경지가 된 그는 소프트웨어인 프로그래밍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프로그래밍을 배우기 위해 가입한 것이 바로 서울대학교 ‘컴퓨터 연구회(SCSC)’라는 동아리였다. 여기서 그는 ‘한글과 컴퓨터’의 창업주인 이찬진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김택진과 이찬진, 그리고 다른 동아리 멤버 2명이 함께 개발한 첫 작품이 5.25인치 디스켓 3장으로 구성된 ‘아래아 한글’이다. ‘아래아 한글’은 한글의 워드프로세스화에 첫 발을 뗀 역사적인 이정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1989년 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 10월 ‘아래아 한글’을 모태로 한 ‘한글과 컴퓨터’를 창립했으나 그는 과감하게 ‘한글과 컴퓨터’의 경영에 참가하지 않고 자신의 꿈인 대학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다.

여기서 동료들과 함께 한메소프트를 만들고 한메타자교사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북부 수중도시로도 유명한 베네치아로 더 잘 알려진 한메타자교사는 아마도 당시 세대들이라면 어느 누구라도 할 것없이 이 프로그램으로 자판을 익힐 정도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제일 위쪽에서 글자가 나타나고 이 글자를 자판에서 치면 사라지지만 그렇지 못하면 밑으로 조금씩 내려오면서 제일 밑에 있는 벽돌이 하나씩 깨어져 마지막 벽돌이 깨어지면 끝나는 게임의 일종이지만 한글 자판을 익히는데는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개인용 PC에는 무조건 깔려 있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이 프로그램 개발로 컴퓨터 업계에서 높은 명성을 얻었다.

그를 또 다른 세계로 이끈 것은 1991년 석사과정을 마친 뒤 산업기능요원으로 현대전자 보스턴연구개발센터에서 근무하면서 처음으로 경험한 인터넷이었다. 그에게 인터넷은 새로운 세계였다. 그는 인터넷에 주목하기 시작하면서 또 파고 들었다. 정주영 회장이 김택진이라는 이름을 외우고 다니면서 “저 친구를 주목해야 겠네”라고 관심을 둔 것도 이 즈음이었다.

그 첫 번째 결과물이 산업기능요원을 마친 뒤 정식으로 현대전자에 입사해 1995년에 선을 보인 국내 최초의 검색 포털사이트인 아미넷이다. 하지만 김택진은 자신이 개발한 아미넷으로 회사를 떠나게 된다. 바로 현대전자와 현대정보통신이 아미넷의 주도권을 두고 1년이 넘도록 싸움이 이어지자 회사에 염증을 느낀 것. 이럴 바에는 차라리 자신이 회사를 세우는 게 낫다고 생각한 김택진은 사표를 던지고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다. 나이 31살, 1997년 3월이었다.

김택진이 창립한 회사가 바로 지금의 NC 소프트다. NC는 ‘Next Company’의 약자다. NC 소프트는 창업초기에는 소규모 소프트웨어 회사로 시작했지만 1년반인 1998년 9월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내놓으면서 대한민국에 게임시장에 대변혁을 일으켰고 돈버는 게임(P2E)의 시초가 되었다.

KBO의 9번째 심장이 된

NC 다이노스

고생을 하면 엄청난 권력을 갖게 되는 게임 구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리니지’는 NC 소프트를 돈방석에 앉게 만들었고 여러차례 버전을 바꾸면서 지금까지도 NC 소프트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김택진은 2011년 KBO의 제9구단으로 NC 다이노스를 창단했다. 당시 창원을 중심으로 한 경남을 연고지로 하는 NC의 창단에 반대한 일부 구단들이 연매출 1조원도 안되는 NC 소프트가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프로야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능력이 되겠느냐며 회의론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이때 그는 “내 개인 재산만으로도 야구단을 100년은 할 수 있다”며 강력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창단 기자회견에서 “초등학교 시절 만화 ‘거인의 별’을 보며 꿈을 키웠고 중학교 시절엔 빠른 볼을 잘 던지려고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녔다. 학창시절 롯데 최동원 투수는 내 마음속 영원한 별이자 영웅이었다. 야구라는 단어가 내 가슴을 뛰게 한다. 나한테 야구는 내 마음대로 즐길 수 있는 영화이자 삶의 지혜서다. 투수가 던지는 볼 하나하나에서 드라마를 느낄 수 있다. 야구 자체가 목적인 구단을 만들고 싶다. 사람들의 가슴을 두근거리는 구단을 만들고 싶다”고 야구단에 대한 애정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야구단 창단 이후 김택진 구단주는 다른 어떤 구단주들과 달리 창원에 내려와 직관도 자주 하고 선수단과의 소통도 원활했다. 특히 2018년 시즌이 끝난 뒤에는 선수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양의지가 우리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요청을 받은 뒤 125억원이라는 당시 최고 액수로 FA(자유계약선수)가 된 양의지를 영입할 정도로 통큰 투자도 보여주었다.

김택진 구단주는 2020년 NC의 정규리그 우승을 앞두고 우승 확정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광주, 대전 등 야구장을 일주하면서 직관을 했고 10월 24일 창원 홈에서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짓자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어 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부터 직관을 하며 4승2패로 두산 베어스를 제치고 2013년 1군 리그에 합류한 뒤 8시즌, 그리고 팀 창단 9년만에 통합우승을 일궈내자 직접 경기 후에 응원단장, 치어리더들과 응원단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해 ‘개념 구단주’ ‘택진 형~’이라는 애칭으로 불릴 정도로 야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김택진 NC 소프트 회장은 우리나라 게임 산업과 프로야구에 미친 공로는 많지만 이에 못지않게 비난도 받았다.

‘리니지’ 게임을 통해 막장 과금정책이나 젊은 세대들에게 게임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비난을 받았고 야구단을 통해서는 특히 지난해 코로나19 펜데믹에도 불구하고 방역수칙을 어기고 원정숙소에서 일부 선수들이 술판을 벌이면서 프로야구가 사상 처음으로 중단되는 사태가 벌어져 부정적인 여론이 일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대장동 게이트’와 관련된 내용까지 언급되면서 그동안 자수성가한 벤쳐사업가이자 ‘택진 형~’으로 쌓은 이미지가 허물어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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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에 대해서 빅데이터 조사를 실시한 결과, 지난 1년간 드러난 포스팅 중 긍정률이 53.46%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터앤리서치는 마니아타임즈 의뢰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에 대해 뉴스·커뮤니티·블로그·카페·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페이스북 등 12개 채널을 대상으로 온라인 포스팅 수(정보량=관심도)에 대해 빅데이터 분석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분석 결과 지난해 11월부터 올 10월까지 온라인에 김택진 대표 이름이 들어간 포스팅 수는 총 1만1천210건이었다.

월별로 보면 지난해 3월 가장 많은 4천326건을 기록했으며 지난해 1월에 가장 적은 835건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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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1천210건의 김택진 대표 포스팅 중 긍정 포스팅 수가 1만1천163건으로 53.46%의 긍정률을 기록했으며 부정 포스팅 수는 1천896건으로 부정률은 9.08%였다.

긍정률에서 부정률을 제외한 값인 순호감도는 44.38%인 것으로 집계됐다.

온라인 글들 중 유저가 자신의 프로필을 드러낼수 있는 트위터·인스타그램·유튜브·페이스북·카카오스토리·블로그등 7개 채널에서의 같은 기간 여성 관심도와 MZ세대 관심도를 분석했다.

우선 자신을 남성 또는 여성이라고 밝힌 글에서 성별 비중을 살펴본 결과 남성이 26건, 여성이 95건을 올린 것으로 드러나, 이 부회장은 남성보다는 여성의 관심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나이를 밝힌 유저를 대상으로 연령별 포스팅 비중을 집계한 결과 연령이 드러난 포스팅 수는 총 15건으로 나타났으며 그 중 20대와 30대로 드러난 포스팅수는 총 14건으로, 타 연령 정보량 대비 MZ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93.4%인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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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년간 김택진 대표에 관련해 검색되는 주요 연관 키워드로는 △MMORPG 8천101건 △이벤트 6천525건 △업데이트 5천716건 △아이템 5천513건 △신작 4천367건 등으로 조사됐다.

김택진 대표는 지난 1년간 MMORPG 게임의 이벤트, 아이템, 신작 개발 등에 큰 관심을 두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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