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무 오래 따뜻하지 않았다
스물 셋 새파란 청춘에 우울증이 왔다. 자주 재발해 대학병원 정신병동에 여러 차례 입원했다. 삶에 대한 의욕과 열정이 사라졌다. 세상과의 통로가 닫힌 채 오랫동안 아프고 가난하고 외로웠다.1994년 ‘소설과사상’에 ‘또 다른 날의 시작’으로 등단, 소설집 세 권과 장편소설 두 권을 펴낸 차현숙작가의 얘기다. 세 번의 극단적 선택과 극심한 우울로 병원신세를 진 차 작가는 국민적 사랑을 받던 최진실씨의 이모이기도 하다. 최진실씨가 2008년 10월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도 병원의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차 작가는 이 해 소설집 ‘자유로에서 길을 잃다’에 수록된 소설들을 통해 우울증을 처음 고백했는데,그 후 14년 동안 병은 재발을 거듭했고 고통은 계속됐다.
차 작가가 14년 만에 첫 에세이 ‘나는 너무 오래 따뜻하지 않았다’(나무옆의자)를 내고, 35년 간 우울증을 안고 살아온 고통과 치유의 시간을 공개했다.
차 작가는 엄마와 언니들, 조카들로 이어지는 우울증의 집안 내력을 드러내며 자신의 우울증도 유전적 요인이 크다고 진단한다. 특히 심한 우울증일수록 젊은 사람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차 작가는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었고 의사의 지시를 따랐다. 스스로 다스리는 법도 알았다. 작가는 최진실씨와 자신의 가장 큰 차이가 자신의 병에 대해 잘 아느냐가 아니었을까고 생각한다.최진실씨도 차 작가의 소개로 의사와 상담했다고 한다. 그러나 적극적 치료를 하지 않았다. 최씨는 이혼과 사채업자라는 억울한 소문에 고통받았고 우울해하면서 “이모, 왜 이렇게 아무 감각이 없지?”라고 말했단다. 무감각은 위험 신호로 읽힌다.
작가는 어린시절의 가정환경도 우울증에 영향을 끼쳤다고 고백한다. 극심한 가난으로 자식에게 살뜰한 사랑을 주지 못한 부모와 아버지가 다른 언니로부터의 학대, 외사촌 오빠의 추행 등이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 무엇보다 가장 큰 고통은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면서 세상과 멀어졌고 의욕도 열정도 사라졌다.
“열정이 없다는 것은 내게 있어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우울증을 거부했다. 뿐인가. 이혼,아들의 방황, 월세 보증금 천만 원이 전 재산인 경제 상황도 저주했다.”
한 친구가 환경미화원이나 도우미 일을 해서라도 먹고살라고 했지만 모르는 소리다. 우울증은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의 정신병원 입원 이력은 모두 열한 번에 이른다. 그가 들려주는 고통의 증상들은 일반인들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소리에 민감해 문을 여닫는 소리, TV소리, 발걸음 소리 등 세상의 모든 소리가 고통스러워 귀마개를 꽂고 생활해야 했다. 극심한 등 통증, 가슴이 벌렁대고 불안하고 숨을 쉴 수 없는 고통이 이어지기도 한다. 항우울증 약을 먹고서야 통증은 줄었지만 더 무기력해졌다.
작가는 출판사 원고 마감을 잊어버리고 전화를 걸어온 관계자의 원고 독촉에 무슨 일인지 몰라 웃음을 터트리고 전화를 끊은 얘기를 13년 만에 털어놓기도 한다.
작가가 마지막으로 정신 병원에 입원한 것은 1년 여 전. 극단적 선택 충동이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지자 살기 위해 자발적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마지막 입원이길 바라며 병원에서 주는 밥과 약을 먹고 음악 치료와 미술 치료 등을 받으면서 증세가 호전된다. 또한 일기를 써나가면서 마음도 단련 시켜 나갔다.
“병원에서 나는 ‘매일’ 일기를 쓰기 위해 사라지는 기억과 탈진한 몸뚱이와 무기력한 정신에 맞서 피 터지게 싸운다. 어떡하든 열정을 끌어올려보려고…. ‘매일’ 뭔가를 ‘쓰다’ 보면 어쩌면 집 나간 열정이 돌아올지도 모르니까.”
책은 자전적 소설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상태를 드러낸 일종의 치유일기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레이먼드 카버 지음, 정영묵 옮김,문학동네)/
개인의 불안과 상처를 건조하게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복잡한 여운을 남기는 단편소설의 대가 레이먼드 카버의 11편의 단편을 담은 소설집. 카버 재단의 승인을 얻어 오직 한국에서만 출간하는 이 소설집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거나 절판돼 찾아보기 어려운 단편 11편을 엮었다.
작가의 초기작부터 후기작까지 망라한 소설집은 구체적으로는 1983년에 출간된 ‘정열’에 수록된 4편, ‘거짓말’,‘오두막’,‘해리의 죽음’‘꿩’과 카버가 사망한 해인 1988년에 출간된 ‘내가 전화를 거는 동안’에 수록된 ‘누가 내 침대를 쓰고 있든’ 등 7편을 실었다.
이 중 ‘정열’에 소개된 4편은 국내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소설들은 카버 소설의 핵심 키워드인 두려움, 막연한 공포가 중심을 이룬다.
‘오두막’에는 아내 없이 홀로 산장 오두막에 묵게 된 주인공 미스터 해럴드의 불안감을 총상을 입은 사슴과 그를 위협하는 소년들로 구체화한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에선 한밤에 걸려온 전화가 불안과 두려움을 촉발한다. 전 아내나 아이들에게서 걸려오는 전화를 피하기 위해 전화선을 뽑고 잠들곤 하던 부부는 어느날 밤 전화선 뽑는 걸 깜박했다가 새벽 세 시에 누군지 알 수 없는 버드를 찾는 전화를 받게 된다. 잠이 달아난 부부는 병과 죽음, 생명유지장치의 플러그를 뽑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알코올 중독과 파산, 이혼 등 개인사가 반영된 소설과 이전 작품과 다소 결이 다른 체호프의 죽음에 대한 오마주랄 마지막 작품 ‘심부름’까지 독특한 카버 문학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자유주의(에드먼드 포셋 지음, 신재성 옮김. 글항아리)
최근 들어 ‘민주주의의 역행’‘자유주의의 후퇴’라는 우려가 적지 않게 들린다. 영국과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자유민주주의의 종주국들도 예외가 아니다. 자유주의가 내건 자유와 개인, 권리, 평등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 구조적 취약성과 그에 대한 불신이 커진 까닭이다. 비자유적·비민주적 강경 우파의 득세, 경제난, 영미와 유럽의 분열, 지정학적 고립 등도 지반을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는 실패한 걸까?
영국의 정치 전문 저널리스트 에드먼드 포셋은 역저 ‘자유주의’(글항아리)에서 자유민주주의가 옹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면 자유주의를 제대로 살펴보자고 제안한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그의 탐색은 1830년 자유주의의 탄생부터 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씨름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이끌어내고 좌우파로 갈려 21세기 혼란스런 모습까지 200여 년의 자유주의의 성장과 위기의 일대기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자유주의는 19세기 산업화와 혁명의 와중에 싹을 틔웠다. 유럽은 구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에 대한 요구로 요동쳤다. 변화를 거부하고 구질서로 복귀하려는 보수적 시도들이 저항을 받았고 언론,출판, 여행, 거주, 결사, 종교 활동에 대한 제약들이 도전을 받았다. 신생 아메리카에선 자유라는 기치 아래 과거의 제약들이 사라지고 있었는데, 이를 추종하는 당파가 자유주의자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의 초기엔 공인된 이론가도 신앙을 전파할 신도도 없었고, 딱히 자유주의 이념을 대변하는 철학도 없었다. 관점은 느슨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았고 이는 계속 논란거리가 됐다. 최초의 자유주의자들은 초기 산업 자본주의의 격동과 18세기 후반 두 혁명 이후의 사회적 혼란 속에서 윤리적·정치적 안정을 확보할 지속 가능한 새로운 정치질서를 꿈꿨다.
자유주의자들이 내세운 이념들은 저마다 달랐지만 이들이 내건 가치는 갈등의 불가피성, 권력에의 저항, 진보에 대한 믿음, 시민의 존중으로 수렴된다.
이들은 사회의 도덕적 물질적 갈등은 결코 제거될 수 없고 그저 억제되거나 어쩌면 유익한 방향으로 길들여질 수 있을 뿐이라고 여겼다. 또한 정치적이든 경제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견제되지 않는 권력에 반대했으며 인간의 삶과 사회적 병폐는 개선될 수 있다는 진보적 관점을 유지했다. 또한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거나 어떤 존재이던 간에 그들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런 자유주의의 가치는 19세기 보수주의와 사회주의, 20세기의 파시즘과 공산주의, 21세기 권위주의와 좌우 포퓰리즘, 신정주의, 일당 국가 자본주의와도 구별된다.
저자는 초기 자유주의 선구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려주는데, 인간 능력의 무한함에 초점을 맞춘 훔볼트, 개인의 프라이버시의 절대성을 강조한 콩스탕, 견제받지 않는 절대권력을 반대한 기조, 대중 민주주의의 압력에 대한 균형추를 찾고자한 토크빌, 사회진보를 전망하며 정부의 중앙집중화를 강조한 체드윅, 시장을 사회정의의 조정자로 다룬 스펜서, 자유주의의 상충하는 신조를 하나로 아우른 존 스튜어트 밀 등을 소개하며 이들의 주장이 자유주의의 역사 내에 어떤 모습으로 변주되는지 조명한다.
자유주의의 성숙기(1880~1945년)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대타협”을 통해 꽃을 피운다.
1880년대 이후 몇십 년간 계급 갈등의 압력 속에서 정부에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가운데, 신흥 엘리트인 자유주의자들은 정치적· 경제적·윤리적 측면에서의 독점적 위치를 포기하고 인민주권을 수용한 반면 대중 세력은 절차에 대한 자유주의적 규칙, 소유권 보호, 개인의 선택에 대한 존중을 받아들이며 자유민주주의는 하나가 된다.
이 시기는 제국주의 시대로,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자”라는 자기 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데, 저자는 제국주의가 근대성과 개인존중의 사상을 전파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사회는 다양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시민적 존중이 중요한 가치로 떠오르면서 자유민주주의가 더욱 힘을 얻게 된다. 특히 1945년 이후 인권운동에서 성과가 두드러진다. 반면 무역과 경제에선 자유주의적 제국주의적 경쟁을 야기했다.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이후로부터 1989년까지를 자유민주주의의 두번째 성공시대로 본다. 복지국가에 의해 승인된 자유민주주의는 서구의 규범이 되고 소비에트와 대비, 자유민주주의 사회는 살고 싶은 곳으로 매력을 얻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 요구와 분쟁이 갈수록 다면화되면서 자유주의 정치는 복잡해지고 이를 해결할 대안으로 세계화가 진행된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여정을 집짓기에 비유, 1830~1880년에 자유주의자들은 청사진을 그렸고, 1880~1945년 집을 지었지만 그 집을 다 태워 먹었다. 1945년 두 번째 기회를 잡았고 1989년에 이르러선 자유주의가 동네의 자랑거리가 됐지만 이젠 옛일이 돼버렸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자유주의의 종말이 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민주주의적 자유주의가 반드시 실패한다고 혹은 반드시 성공한다고 보장한다는 식의 그 기만적인 이야기들에 저항하라”며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이해되고 옹호되는지에 따라 자유민주주의가 존속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자유주의자들의 연대기라 할 만큼 200년 역사의 각 페이지를 장식한 수많은 정치사상가들의 궤적을 폭넓은 시야와 통찰, 활달한 필체로 한 코로 꿰어내 길을 잃지 않게 안내한다.
격정의 문장들(김경미 지음, 푸른역사)
남존여비의 조선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종종 무시됐지만 당당하게 제 주장을 펴는 여성들도 있었다.
상언과 상소를 통해 시국에 대한 이해와 정치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근대 계몽기에는 나라를 위하는 데 남녀가 없다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시국에 대한 의견을 신문사 투고 형식으로 개진했다.
그 중 신소당은 자신의 주장을 활달하게 편 여성논객 중 하나다.
광동학교 설립, 진명부인회 설립, 양정여학교 관련 활동을 하는 등 교육운동에 앞장선 그는 여학교를 세워 남자와 동등하게 황실을 보호하고 민생을 구제해야 한다고 제국신문에 글을 기고했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조선 후기와 근대 계몽기로 나눠 여성의 글을 살핀 책은 여성들의 글과 함께 시대적 배경 등을 자세히 살폈다.
개 중엔 오늘의 관점에서 봐도 놀라운 글들이 적잖다. 신임옥사로 멸문지화를 당한 노론 이이명의 부인 김씨 부인이 국명을 어긴 이유를 해명한 상언은 영조를 감동시켰다.
19세기 후반 우의정을 지낸 심상규의 손자 심희순의 첩이라는 기생 출신 초월은 시국의 적폐를 고발하고 개선책을 제시했는데, 통괘한 문장이 눈길을 끈다.
1898년 북촌의 여중군자 몇 명이 여학교의 필요성과 여성의 권리를 주장하며 낸 ‘여학교설시통문’에는 여성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노골적인 표현도 등장한다.
정조 대에 여성들이 제기한 억울함을 호소한 상언·격쟁은 405건에 이른다. 전체의 10퍼센트 정도로 평민층 부녀자가 사족 부녀자보다 3배 많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