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 특파원 뉴스 - 미국 스포츠베팅, 미국 주정부 '곳간' 채우는 '황금알' 급부상
- 코로나19 사태가 낳은 미국 최대 사행산업
- 슈퍼볼, 월드시리즈, 월드컵 베팅 천문학적
- 한정된 파이, 세수 효과 반감 회의론도
장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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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08 15:13
장성훈 기자 미국에 스포츠 베팅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슈퍼볼, 월드시리즈, 월드컵 등에 몰리는 판돈은 해가 거듭될수록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불어나고 있다. 네바다주에서만 합법이었던 스포츠 베팅이 지금은 워싱턴 DC와 31개 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미국 스포츠 베팅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편집자주)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은 선수 시절 무엇에든 내기를 해야 직성이 풀렸다.
2020년 ESPB이 방영한 '라스트 댄스' 다큐시리즈에서 조던은 경호원 중 한 명과 동전 던지기 내기를 했다. 조던은 불리한 조건을 걸었음에도 첫 판을 이겼다. 신이 난 조던은 더 불리한 조건을 걸었다가 지고 말았다. 그러자 조던은 불만에 가득찬 표정을 지으며 경호원에게 험한 말로 내쫓았다. 이 때 걸린 판돈은 단돈 20달러였다. 그 당시 조던의 재산은 5억달러였다. 그런데 2만원 잃었다고 삐친 것이다.
왜 인간들은 내기를 좋아할까?
19세기 영국의 수필가인 찰스 램은 내기의 마력에 대해 "내기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최고의 카드를 잡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기 때문에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의 실험 결과, 내기를 처음 시작할 때 위험보다는 기대 심리가 먼저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이길 확률이 낮음에도 내기를 한다는 것이다.
주말 골퍼 중 90%가 내기 골프를 하는 이유다.
◇ '빈 곳간을 채워라'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얼어붙자 미국 주정부 곳간이 구멍이 났다. 세금을 징수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전전긍긍하던 주정부에 한 줄기 서광이 비쳤다. 바로 스포츠 베팅이었다. 베팅산업에서 거래되는 ‘검은 돈’을 양지로 끌어내 세금을 걷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각 주는 앞다퉈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했다.
이들의 판단은 주효했다. 스포츠 경기가 활기를 띠자 거기에 거는 판돈이 둔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 슈퍼볼 판돈이 10억 달러
미국 스포츠 중 최고인기를 끌고 있는 종목은 프로풋볼(NFL)이다. 베팅하기 가장 적합한 스포츠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열린 슈퍼볼에 총 10억 달러의 판돈이 오갔다. 2008년의 9450만 달러보다 10배 이상 커졌다. 지난해 슈퍼볼 판돈은 5억 달러였다.
미국게이밍연맹(AGA)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 베팅까지 합할 경우 지난 2월 슈퍼볼 판돈은 무려 76억1000만 달러에 달했다. 또 이 경기에 총 3140만 미국인이 어떤 방식으로든 베팅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코인 토스, 킥 오프 선축, 터치다운 수, 쿼터별 득점 등 베팅 종류만해도 무려 300가지가 넘는다.
마켓워치는 스포츠 베팅이 이처럼 '블루오션'이 되고 있는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미국 내 스포츠 베팅 인기가 최고조에 이르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베팅 사이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둘째는, 온라인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하는 주가 늘면서 베팅 열기가 더욱 뜨거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MLB 월드시리즈 베팅으로 7500만 달러 '횡재'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역시 스포츠 베팅 단골 메뉴다.
올해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한 열혈 팬이 월드 시리즈를 통해 스포츠베팅 사상 최고액을 손에 넣은 일이 일어났다.
휴스턴에서 가구점을 운영하는 짐 매킨베일(71)은 이번 월드 시리즈에서 휴스턴이 5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1000만 달러를 베팅, 7500만 달러의 당첨금을 챙겼다. 이는 스포츠베팅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이다. 당첨금도 당첨금이지만, 베팅한 금액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지난해에도 휴스턴이 월드 시리즈에서 우승한다는 데 335만 달러를 걸었다가 낭패를 본 바 있다.
◇ 카타르 월드컵
최근에는 월드컵에 대한 베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AGA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약 2,050만 명의 미국 성인이 이번 월드컵에 총 18억 달러를 걸었다. 이 중 48%는 온라인으로 베팅하고 29%는 친구와 재미삼아 베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전체적으로는 1억 3,200만 명이 거주하는 DC 및 31개 주에서 합법적인 스포츠 베팅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2018년의 3개 주 1천만 명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10배 이상이 증가한 셈이다.
미국 최대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스포츠 베팅 시장 규모는 10년 이내에 400억 달러 시장으로 성장한다.
◇ 음지의 스포츠 베팅
그러나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 불법 스포츠 베팅도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이를 우려한 캘리포니아주 주민들은 지난 11월 실시된 중간 선거에서 스포츠 베팅 합법 법안에 반대했다.
한국 야구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야시엘 푸이그가 좋은 예다.
푸이그는 지난 2019년 캘리포니아주 불법 스포츠 도박업체를 이용해 스포츠 베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연방 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5월부터 9월 사이 푸이그는 테니스, 축구, 농구 경기에 수백 건을 베팅했다. 특히 7월부터 9월 사이에만 무려 899건을 베팅한 것으로 드러났다.
불법 베팅과 함께 스포츠 베팅에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미 전역에 사업자가 늘면 매출에 대한 세금도 각 주가 나눠가져야 해 장기적으로 세수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회의론이 그것이다.
미시간주의 경우, 사업자들이 한 달 동안 950만 달러의 순이익을 올렸으나 주정부에 낸 세금은 고작 14만2,240 달러에 불과했다. 세율이 낮기 때문이었다.
많은 주가 스포츠도박을 합법화해 한정된 시장을 쪼개 가지면 도박 수익으로 주정부 예산을 메우기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파이는 한정돼 있는데 먹을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각자에게 돌아갈 몫은 적어진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베팅중독이다. 뉴저지주의 경우, 스포츠 베팅을 허용한 후 베팅 중독이 전국 평균의 3배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간을 채울 수 있는 가장 쉽고 확실한 스포츠 베팅을 합법화하려는 주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캘리포니아주 역시 지금은 반대 분위기가 많지만 언젠가는 합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클라호마 시티(미국)=장성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