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화 기자 “장애인e스포츠 선수들뿐만 아니라 동호인들이 마음놓고 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장애인e스포츠 선수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사실상 경력이 단절되는 상태입니다. 실업팀 창단을 비롯해 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난 11월 초 대한장애인e스포츠연맹 긴급 대의원총회에서 제3대 대한장애인e스포츠연맹 새 수장에 오른 이명호 회장(60·자영업)의 말에서는 다소 비장함이 묻어났다.
“할일이 너무 많다. 지자체들뿐만 아니라 기업체, 그리고 장애인 복지에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가 절실하다”며 절절한 심정을 내비친 이 회장은 “제가 필요한 곳이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라도 달려가겠다. 발품을 파는 데는 어느 누구에 못지 않다”며 장애인e스포츠에 국민들의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또 “우리나라가 e스포츠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듯 장애인e스포츠도 우리나라가 종주국으로써 이에 못지 않다”며 “앞으로 패럴림픽이나 아시안패러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될 것에 대비해 지금부터 그 기반을 쌓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패럴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대비해야 할 때
- 어려운 시기에 회장을 맡았는데?
▲ 먼저 전임 임윤태 회장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장애인e스포츠연맹이 지금의 위치까지 오기까지에는 임 회장이 닦아 놓은 공로가 너무나 크고 깊습니다. 특히나 임 회장은 어려운 여건에도 국제장애인e스포츠연맹을 창립해 우리나라를 장애인e스포츠의 종주국으로 기본 터전을 닦으셨습니다. 이제 임 회장이 닦아놓은 터전을 바탕삼아 장애인e스포츠를 좀 더 활성화하고 더 많은 장애인e스포츠 전문선수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신임 회장으로서 포부는?
▲ 하고 싶은 일이 많습니다. 아직은 계획 속에만 있는 사업도 있고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하는 급한 일들도 있습니다. 우선은 연맹 활성화에 정성을 기울이겠습니다. 각 지역 회장님들과 활발한 소통과 협력을 통해 장애인e스포츠 발전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 각종 현안들을 하나씩 헤쳐 나가겠습니다. 비장애인e스포츠는 지난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처음으로 시범경기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아직은 먼 이야기가 될 수도 있고 빠르면 2년 뒤인 2024년 파리 패럴림픽이 될 수도 있지만 장애인e스포츠가 패럴림픽이나 아시아페러게임에 정식종목이 될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지금부터 그 토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의 선후를 정해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하겠습니다.
- 연맹 활성화라면?
▲ 현재 장애인e스포츠 선수들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면 더 이상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다보니 이들을 위한 대회를 개최할 수도 없구요. 이 바람에 우수한 실력을 갖춘 선수들의 경력이 단절되어 버리고 맙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팀이나 기업체에 장애인e스포츠팀을 창단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어느 곳이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현재 3~4개 실업팀 창단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임기 동안 반드시 실업팀과 대학팀을 창단해 우리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터전을 넓혀 놓겠습니다. 결국 연맹 활성화는 회장이나 임원들이 만든다기보다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고 이들이 활동하는 영역이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수 있다고 믿습니다.
- 충남장애인e스포츠연맹 회장을 오래 역임하셨는데?
▲ 2012년에 처음 연맹을 창립해 올해로 11년 동안 맡아 운영했습니다. 그동안 충청남도, 천안시 등 각종 지자체를 비롯해 각 기업체들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많이 팔았습니다. 그래도 예전에 비해 장애인e스포츠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다른 종목의 곁다리로 생색내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인식은 우리 장애인e스포츠 선수들이나 임원들이 하나씩 풀어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e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된 연유는?
▲ 젊은 시절에 컴퓨터 게임을 즐겼습니다. 아들, 딸과 같이 PC방에 가서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 e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 게임은 스포츠로 인정받지 못한채 게임 중독이니 뭐니 해서 배척을 받던 시기였지요. 그런데 아들, 딸들과 함께 게임을 하다보니 오히려 학교 공부에만 매달려 있을때보다 부모와 자식간에 소통도 더 잘되고 아이들도 스트레스도 덜 받고 매사에 적극적이 되더라구요. 아, 그래서 게임 중독이나 여러 가지 부작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보다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생활에 활력을 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참에 때마침 충남에서 장애인e스포츠연맹을 창립하게 돼 함께 한 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
장애인e스포츠에 대한 인식 조금씩 좋아져
- 장애인e스포츠는 현재 충남이 가장 활성화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 사실 연맹 재정이 열악해 연간 4개 대회 정도밖에 치르고 있지 못합니다. 전국장애인소년체전과 전국장애인체전, 그리고 흥타령배전국장애인e스포츠대회 등이 대표적인 대회입니다. 흥타령배 대회는 코로나19로 한차례 제대로 대회를 치르지 못하고 건너 뛰기는 했지만 올해까지 6회를 치르면서 대회때마다 300~350여명의 참가해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치르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충남도지사배 대회도 할 예정이고 얼마전에는 계룡시에서 장애인e스포츠 대회를 치르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 등 전국적으로 조금씩 장애인e스포츠에 대해 인식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 대회를 하면서 가장 인상에 남은 일이 있다면?
▲ 대회장에 직접 와 보셔서 지켜보셔야 느낌을 알 수 있는데요. 일반 대회하고는 전혀 다릅니다. 그야말로 이기고 지는 승패를 떠나 축제나 다름없습니다. 함께 모여 웃고 떠들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다보니 이렇게 대회를 치르게 되면 초등학생들은 막 뛰어놀고 박수치고 소리 지르고 심지어 피곤하면 누워 자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정말 가슴이 뿌듯합니다.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2015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때 청각장애가 있는 초등학교 여자 아이가 저쪽에서 다가 오더니 내 손에 사탕 한 개를 쥐어 주고는 부끄러운 듯 뛰어갔습니다. 사탕을 받고 보니 얼마나 오랫동안 손에 쥐고 있었는지 손바닥 열기에 사탕이 거의 다 녹아서 흐물흐물해 져 있었습니다. 나에게 그 사탕을 주기 위해 거의 2~3시간 이상을 손에 꽉 쥐고 놓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그 어떤 선물보다 감동스러웠고 눈물이 나도 모르게 울컥 솟았습니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좀 더 열심히 장애인e스포츠를 활성화시켜야 겠다는 생각을 더욱 한 계기가 됐습니다.
- 현재 등록된 장애인e스포츠 선수는?
▲ 지금은 학생 선수가 고작입니다. 실제로 학교나 집에서 개인적으로 e스포츠를 즐기면서도 선수로 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나갈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5년부터 흥타령배 전국장애인e스포츠대회를 하니까 거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10년만에 만나는 선수도 있었습니다. 이제 그런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할동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아울러 전국에 있는 장애인학교들을 중심으로 e스포츠 보급에 적극 나서 저변 확대에도 힘을 쏟겠습니다.
장애인의 보편 복지에 최적의 효과
- 장애인e스포츠의 장점은?
▲ 장애인e스포츠는 장애인들의 보편 복지에 최적의 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듯이 장애인들은 시각 청각을 비롯해 보행 등에 불편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자유스럽게 활동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e스포츠를 통해 어린 학생들에게는 운동할 기회를 제공해 주고 전략이 필요한 e스포츠를 통해 사고의 폭을 넓혀줍니다. 특히 장애인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줌으로써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직접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기업체 등에서 장애인e스포츠 선수들을 고용하면 각종 혜택도 있습니다. 이들이 각종 대회에서 이름을 떨치면 기업의 홍보효과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경기 종목은?
▲ 공식대회는 닌텐도의 테니스와 FIFA 4, 리그오브레전드 등 3개 종목으로 치루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닌텐도의 테니스는 컨트롤러를 통해 샷의 타이밍에 따라 볼이 날아가는 방향이 결정되고 손목의 스냅으로 백스핀이나 톱스핀, 로브볼 등으로 변합니다. 실제 동작이 같이 이루어져야 해 학생선수들에게는 장애인 학생들에게 실제 운동 효과도 있는 종목입니다. FIFA는 말 그대로 온라인으로 하는 축구경기이며 리그오브레전드는 전략게임입니다. 경기종목은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똑같습니다. 앞으로 장애인e스포츠에서는 보다 어린 학생선수들이 다양한 스포츠로 즐길수 있도록 테니스 이외에 볼링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언젠가 시범경기로 볼링을 추가했더니 모두가 좋아하더라구요.
- 장애인선수와 비장애인선수의 실력 차이는?
▲ 평균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식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선수들이 대면경기를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장애인e스포츠대회에서는 아직 단체전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의외로 장애인선수들이 마음이 여리고 착합니다. 단체전에서 지면 자신이 잘못해서 졌다고 자책을 많이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단체전은 하지 않고 있지만 앞으로 실업팀이나 대학팀이 창단이 되면 단체전도 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하는 어울림 대회 개최도 할 예정입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정회원종목 단체로 승격 중요
- 17개 시도연맹 가운데 미결성된 지역은?
▲ 현재 13개 시도연맹이 결성되어 있고 인천광역시, 강원도, 경상북도, 세종특별자치시 등 4개 시도가 아직 창립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서울은 문제가 있어 사실상 공백 상태이고 실제로 5개 시도가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부 지역에서 연맹을 창립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해 온 곳이 3~4곳이 있는데 철저한 조사를 거친 뒤 인정을 할 예정입니다. ○○장애인e스포츠연맹 회장이라고 하면 뭐 거창하게 보이잖아요. 정말 장애인들을 위해 봉사할 마음을 가지고 있고 e스포츠에도 열정이 있는 분으로 연맹을 구성할 예정입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와의 관계는?
▲ 지난해에 대한장애인체육회 인정회원종목단체에서 준회원종목단체로 한계단 승격이 되었지만 정회원종목단체는 아닙니다. 정회원종목단체가 되어야 대한장애인체육회의 각종 지원이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아직은 …. 우리가 좀 더 노력해야 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대한장애인체육회에서도 계속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회장에 취임하니 지역 사회에서 명망있는 몇몇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지원하고 싶다는 분들이 계셨다”는 이명호 회장은 “이 분들과 함께 임기동안 최선을 다해 e스포츠의 발전과 저변 확대, 그리고 실업팀 창단을 위해 뛰어다니겠다”며 “약속을 지키는 회장이 되겠다”고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쳤다.
정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