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화 기자 “야구계에서 은퇴한 선수와 지도자가 프로야구 경험을 살려 우리나라 야구발전에 기여할 수 있도록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은퇴 후의 삶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일구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2월 19일 잠실야구장 1층 사단법인 일구회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 올드 야구팬들에게는 홈런타자로 잘 알려진 김우열 씨와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두산베어스 중심타선에서 명성을 떨친 장원진 씨가 ‘은퇴선수카드’에 직접 사인을 하고 있었다. 사인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일구회 김광수 회장(63)은 “야구로부터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우선은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에서 은퇴한 30명의 선수들이 직접 사인한 카드를 제작하게 됐다”며 “은퇴선수들을 위한 수익사업의 첫 걸음”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월에 한국 프로야구 OB 모임인 사단법인 일구회 제5대 회장으로 당선된 김광수 회장은 “일구회가 단순하게 은퇴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의 사랑방 역할에서 벗어나 선수 은퇴 뒤에 어떻게 사회에 봉사하고 야구인으로서 긍지를 지키고 살아갈 수있느냐하는 삶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 사단법인 일구회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신다면.
▲ 일구회는 프로야구에 몸담은 선수나 코치 감독 등 지도자 누구나 제한없이 가입할 수 있는 단체입니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0년째인 1991년 1월에 처음으로 창립했으며 2010년 1월 27일 사단법인으로 전환해 이제 13년째를 맞았습니다. 일구회가 출범한 지 벌써 30년을 훌쩍 넘었고 회원도 1000여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일구회는 초대 회장으로 야구계의 최고원로인 어우홍 전 롯데 감독을 시작으로 고 이호헌 KBO 사무차장, 고 박현식 전 삼미 감독, 백인천 전 LG 감독, 고 강태정 전 청보 감독, 정동진 전 삼성 감독. 김소식 야구해설가, 고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 등이 회장을 역임했다. 2010년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뒤에는 고 이재환 전 롯데 감독, 윤동균 전 두산 감독이 2년씩 연임을 하고 물러난 데 이어 김광수 회장이 2022년 2월 선거에서 당선돼 제5대 회장으로 이끌고 있다.
- 특별하게 하는 사업이 있다면?
▲ 연중 가장 큰 활동으로는 1996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27년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온 일구대상 시상식이 가장 큰 행사입니다. 처음에는 연간 일구대상 1명씩만 선정해 시상을 했으나 차츰 시상 범위를 넓혀 올해에는 모두 9개 부문에 걸쳐 시상을 하고 있습니다. 은퇴선수들의 초상권에서 얻은 수익으로 약간씩 금액은 차이가 나지만 연간 100~300만원까지 회원들에게 돌려드리고 있으며 내년에는 우선 두산과 LG의 레전드 30명이 직접 사인한 카드를 제작해 판매하는 수익사업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2022 일구대상은 은퇴시즌에 최고 활약을 펼친 롯데 이대호가 수상했으며 최고타자상은 예비 처남 매부 사이인 이정후(키움)와 고우석(LG)이 안았다. 또 신인상은 정철원(두산), 의지노력상은 노경은(SSG), 특별공로상 박노준(안양대총장), 지도자상은 박치왕(상무), 아마지도자상 김의수(대전고 감독), 심판상 오훈규(KBO 심판원), 프런트상 류선규(전 SSG 단장)이 각각 받았다.
- KBO 리그가 40년을 넘어섰습니다. 프로 원년 멤버로 소회가 남다를텐데?
▲ 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팀인 농협에 1년을 근무하고 있을 때였는데 김영덕 감독께서 “곧 프로야구가 생기는데 프로에 들어올 생각이 없냐”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농협에 근무하면 선수를 그만 두더라도 평생 은행원으로 안전된 직장을 가질 수 있는데 프로야구에 대한 제대로 지식도 없어 망설이다가 아버지께 상의를 했더니 “한번 해 봐라”라고 말씀하셔서 용기른 냈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시작해 프로야구와 함께 벌써 40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광수 회장은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와 건국대를 거쳐 1982년 OB(현 두산)의 원년 멤버로 입단해 1992년까지 11년 동안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 그리고 좋은 선구안을 앞세워 명 2루수로 이름을 떨쳤다. 은퇴 뒤에는 두산(1993~2011년)과 한화(2015~2017년)에서 수석코치를 역임하는 등 오랜 지도자 생활을 거쳤다.
- 프로가 출범하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 실업팀에서 1년에 기껏해야 2~30게임이 고작이었지만 프로출범 첫해에는 6개 팀이 각각 80경기씩을 치렀습니다. 처음에는 체력적으로 힘들었죠. 하지만 조금씩 적응을 하면서 프로라는 것이 잘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이구나 하는 생각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적은 금액이지만 당시 농협에서 각종 수당을 더해도 25만원 남짓이었지만 프로에서는 네배가 넘은 금액을 받았으니 그럴만도 했지요. 결국 훈련도 더 열심히 하고 몸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특히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되지 않아 손목에 금이 가는 부상으로 쉬고 있는데 백업으로 나선 후배들을 보면서 프로에서는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출전할 수 있는 기회조차 놓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해 몸 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했습니다.
-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다면?
▲ 1982년 3월 27일,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동대문야구장(현 동대문디자인프라자)에서 가진 프로야구 개막식은 지금도 눈앞에서 어른거립니다. 외야쪽에서 함께 뛰어 와 마운드를 중심으로 6개 구단 선수들이 모두 참석한 개막식에서 윤동균 선배가 선수대표 선서를 하던 그 모습이 그려지는 듯 합니다. 또 MBC(현 LG의 전신)와의 개막전에서 2번타자로 나서 이광권 선배의 공을 받아쳐 팀의 첫 안타이자 개인 첫 안타를 2루타로 장식한 순간이나 꼴찌 후보였던 우리(OB)가 예상을 깨고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김유동 선배가 만루홈런을 터뜨려 삼성을 누르고 첫 우승을 한 것운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또한 수석코치로 참여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전승 우승을 일궈냈을 때는 가슴에 뜨거운 기운이 치밀어 오르고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김광수 회장은 현역 선수로 한차례를 비롯해 모두 다섯 차례 우승 기억을 갖고 있다. 현역선수로는 1982년 프로 원년 우승이며 지도자로는 두산코치 시절이던 1995년과 2001년 우승이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김경문 감독과 호흡을 맞춘 수석코치로 쿠바 일본 미국을 모두 누르고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내 한국야구의 최전성기를 구가하는데 힘을 보탰다. 또 세계야구랭킹 상위 12개국이 참가한 2015년 WBSC 프리미어12에 3루 주루코치로 나서 당시 KBO 기술위원장인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며 창설대회 첫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 우승할 때의 팀 분위기는?
▲ 돌이켜보면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원팀이 되어야 합니다. 프로원년에 전문가들이 꼴찌 후보라고 했던 OB가 우승을 한 것이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쿠바 등을 모두 누르고 우승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뭉친 원팀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베이징 올림픽에서 수석코치를 하면서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가 얼마나 무겁고 귀중하나?’와 같은 선수들의 정신자세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막내인 김광현이나 류현진이 훈련이 끝나면 내외야에 흩어져 있는 공을 모은다거나 선배들의 땀과 흙이 묻은 유니폼들을 걷어가서 빨래를 맡기는 등 선수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데 굳이 여기에 더 이야기를 한다면 역효과가 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우승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좋은 선수들이 한데 어우러져야겠지만 선후배들의 조화에 선수들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느낄 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이 예선 풀리그에서 전승으로 1위를 하자 일본과 미국은 준결승전에서 쿠바를 피해 한국과 준결승전을 벌이기 위해 져주기 게임을 하는 추태를 보였고 결국 일본이 한국의 4강 상대로 결정이 됐다. 당시 일본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이승엽? 그게 누구냐? 제대로 치지도 못하고 있는 타자를 4번에 계속 두고 있다니 대단하다”라든지, “이대호도 약점은 있다. 투수들이 실투만 하지 않으면 된다” “김광현은 슬라이더만 참으면 된다. 김광현은 두 번 연속인데 지난번처럼 호투하는 것은 어렵지 않겠냐?”라고 한국 대표팀에 대해 폄하하는 인터뷰를 했다. 그러나 한국은 김광현과 윤석민이 이어 던지면서 2실점으로 막고 이전까지 23타수 3안타로 헤매고 있던 이승엽이 8회말 2-2 동점에서 역전 2점홈런을 터뜨리는 등 4득점을 하면서 일본을 제쳤다. 이 여세를 몰아 한국은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도 3-2로 이겨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구기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신기원을 이루었다.
- 선수와 코치를 하면서 많은 감독들과 함께 했는데?
▲ 프로 원년 김영덕 감독님을 비롯해 김성근, 이광환, 이재우, 윤동균, 김인식, 김경문 감독님과 함께 했고 김성근 감독님과는 두산에서 뿐만 아니라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와 한화에서 수석코치로 보좌를 했습니다. 이들 감독님들은 나름대로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김영덕 감독께서는 베테랑 선수들을 잘 컨트롤을 하셨고 훈련을 많이 시킨다고 소문이 난 김성근 감독님은 열심히 하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전혀 말씀을 하시지 않으시지만 이 정도는 해 줘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엄청 엄격하게 훈련을 시킵니다. 말씀을 잘 하시지 않으시지만 짧은 말에 선수들의 특징이나 성향을 그대로 내포되어 있습니다.
김 회장은 또 이광환 감독은 자율야구로 선수들에게 자율을 강조했지만 너무 빨리 시작하는 바람에 두산에서는 성공을 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윤동균 감독은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하면서도 의외로 디테일한 부분이 많고 김인식 감독은 선수들에게 부담을 안 주고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는데 일가견이 있으며 같이 선수 생활을 한 김경문 감독은 나름대로 뚝심이 있어 자기 주관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고 기억했다.
- 기억에 특히 남는 선수가 있다면?
▲ 많은 선수가 있지만 그중에서 1998년부터 2013년까지 16시즌을 두산에서만 활약하며 273개 홈런을 날린 김동주만큼 재능있는 타자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까 이것저것 부상이 좀 잦았습니다. 저녁 6시30분에 야간경기를 하면 한시간 전인 5시30분에 오더를 교환하는데 느닷없이 5시20분쯤 와서 팔이 아프니 어깨가 아프니하면서 오늘 경기에 나서지 못할 것 같다고 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이 감독에게 보고를 하면 감독께서는 “몇 회만 뛰어보고 도저히 안될 것 같으면 바꿔주겠다”고 하면서 우선은 스타팅으로 나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프다는 김동주가 첫 타석에 들어가 홈런을 치는 거에요. 거기다가 3루수를 하면서 1루까지 엉뚱하게 공을 던지는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을 정도에요.
- 프로야구가 전체적으로 전력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 전력이 높아졌느냐, 아니면 낮아졌느냐를 평가하기는 어렵고 프로야구가 40년의 연륜을 쌓으면서 모든 부문에서 기술적으로 향상을 이룬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최근들어 각종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못내는 것이 현실인 만큼 예전에 비해 전력이 약화되었다고 해도 할말이 없는 셈입니다. 이는 전력분석이나 트레이닝, 타격과 투수 등 모든 파트가 기술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지만 선수들이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입단 첫해부터 뛰어난 활약을 보여 단숨에 특급 대열에 올라선 선수도 있지만 몇 년씩이나 프로의 물을 먹고 있으면서도 아직 프로라고 부르기에는 부끄러운 선수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위권과 하위권의 차이가 크다보니 전력이 예년에 비해 약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 음주운전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데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 프로선수도 사람인 만큼 각종 유혹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야말로 모래성을 쌓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저희들이 처음 프로에 입문할 때 일본프로야구에서 대기록을 세우신 장훈 선배께서 강의를 하시면서 “프로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술, 도박, 여자를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지금도 이 말을 후배선수들이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로선수는 야구에 대한 열정과 끈기, 그리고 목표의식이 투철해야 합니다. 절심함을 가져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 끝으로 일구회의 발전 방향은?
▲ 프로야구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나 지도자들이 은퇴를 하면 야구계에서 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비해 방송 해설 등 많은 분야에서 은퇴 선수나 지도자들이 활약하고 있지만 그 숫자는 사실 미미합니다. 이들의 풍부한 경험을 살려 야구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볼 생각입니다.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한국리틀야구연맹 등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어린이 야구 교실’ 등을 확대하는 등 은퇴 지도자들이 좀 더 야구 저변 확대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보겠습니다. 또 (사)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회와도 협력해 야구팬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야구로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협의하겠습니다.
정태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