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 프린트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지음, 이한음 옮김

심리학자 폴 블룸은 생후 3개월 아기들을 대상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언덕 위로 올라가는 빨간색 동그라미를 ‘돕는’ 파란색 네모와 빨간색 동그라미를 아래쪽으로 미는 노란색 세모를 보여주고 아기들에게 선택하게 하자 일관되게 파란색 네모를 골랐다. 색깔과 모양에 따라 선호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두 요소를 다양하게 바꾸어 실험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돕는’ 쪽을 택한 것이다. 또 다른 실험에선 아무런 유인을 하지 않았는데도 걸음마를 뗀 아기들이 서랍을 열려고 애쓰는 척하는 어른을 자발적으로 나서 도왔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돕고 긍정적인 상호작용을 하도록 뇌가 프로그래밍 돼 있다는 연구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VOL.8] 이달의 책

수십 년 간 자연 과학과 사회 과학을 넘나들며 인간 진화의 비밀을 탐색해온 석학 니컬러스 A. 크리스타키스 예일대 교수는 ‘블루 프린트’(부키)에서 우리 유전자에는 서로 돕고 사랑하고 배우도록 좋은 사회를 위한 청사진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자연선택은 지속적으로 이런 유형의 사회를 만들도록 우리에게 압력을 가하는데, 블루 프린트에는 사회를 만들 때 준수해야 할 어떤 제약들이 담기게 된다. 어느 선까지는 청사진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너무 많이 벗어나면 사회는 붕괴한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안에는 좋은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사회성 모둠’이라 부르는 8가지 형질이 있다. 즉 사랑, 우정, 협력, 학습 능력, 개성을 알아차리는 능력 등으로 선사시대부터 이어져온 특성이다.

저자는 진화의 비밀인 협력 유전자를 찾아 다양한 공동체를 우선 탐색한다. 가령 재난으로 인한 우연한 공동체를 비롯, 의도한 공동체, 상상의 인공 공동체 등 다양한 공동체 속에서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 어떻게 기능하는지 살핀다.

역사상 수많은 난파선 생존자들의 생존기는 우발적인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전해준다. 1629년 호주 서부 해안에 조난 당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바티비아호의 선원들은 자원을 아끼려고 여성과 아이들을 대량 학살할 계획을 세웠고, 1816년 북아프리카 서부해안에 난파한 프랑스 메두사호는 146명 가운데 15명이 살해와 식인 끝에 살아남았다.

반대로 성공한 조난 사례도 있다. 1855년 9월7일 태평양 산호섬인 실리섬에서 난파된 줄리아앤호의 생존자 51명은 적절한 리더십 아래 자원 공유와 위험을 무릅쓴 자원봉사 등 이타적 행동으로 모두 살아남아 구조됐다.

그런가 하면 새로운 공동체 만들기라는 인류의 오랜 꿈도 있다. 1694년 독신주의 남성 학자 40명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저먼타운 인근에 만든 ‘황야의 여성 사회’라는 공동체, 소로와 에머슨 등이 거쳐간 조지 리플리가 구상한 유토피아 공동체 브룩팜 등 미국 역사 내내 수천 개의 유토피아 공동체가 생겨났다. 브룩팜은 개성을 존중하고 온건한 리더십과 함께 노동과 교육, 놀이 등 좋은 공동체의 특성을 갖고 있었지만 프랑스 유토피아 사상가 푸리에의 급진적이고 엄격한 교리로 바뀌면서 붕괴됐다. 이스라엘 민주적 공동체 키부츠도 반가족주의에서 가족주의로 바뀌면서 해체됐다.

가상공간에서의 저자의 공동체 실험은 이 책의 백미다. 저자는 가상의 플랫폼 아마존 매커니컬 터크를 이용, 2만5000명을 모집, 40개 집단으로 나눠 특정 구조를 지닌 사회연결망에 무작위로 배치했다. 그리고 등대나 우물처럼 서로 협력하고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 혜택을 얻는 상황을 제공한 뒤 게임이 끝나면 현금으로 교환할 전표를 줬다. 게임은 여러 번 진행됐고 각 게임 때 참가자는 돈을 그냥 갖고 있거나 이웃에게 기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기부할 경우 이웃에게 그 액수만큼 더 얹어 주었다. 즉 누군가 조금 희생하면 이웃은 더 큰 혜택을 입는다. 이 게임을 여러 번 진행한 결과. 호혜성이 강력한 규범으로 자리잡는 게 확인됐다.

다른 실험에선 누구와 상호작용할지를 고를 권한을 부여하자 사람들은 협력하는 좋은 사람과 유대를 형성하고 기여하지 않는 ‘배신자’인 비열한 사람과 유대를 끊는 쪽을 택했다. 어떤 연결망 구조에 끼워지느냐에 따라 서로에게 관대하게 혹은 비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이 만들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공동체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출현한 공동체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이들에서 한결같이 ‘사회성 모둠’이라 불리는 규칙들이 작동하고 있다는 게 확인된 셈이다.

자자는 인간의 애착과 사랑 역시 진화의 산물로 본다. 단독생활을 하던 불안정한 암컷이 식량 공급을 잘하는 남성과 짝을 이루면서 안정적인 집단생활로 전환한 것은 우리 종에게 획기적인 돌파구였다. 짝 결속은 공동육아라는 유용한 방식을 이끌었고 아버지와 자녀 간의 지속적인 애착을 형성하게 된다. 친족 인지는 친척 육아 등 집단 내 협력의 진화를 더욱 촉진하고 나아가 친척이 아닌 개인들 간의 협력과 우정을 탄생 시킬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여기서 나아가 저자는 일처다부, 일부다처, 동성애, 독신을 비롯한 짝짓기의 다양성이야말로 우리 종을 결정적으로 구분하는 특징으로 본다. 사회행동이 고정된 형태로 설치돼 있다기보다 다채로운 형태로 표현되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으며 수정도 가능한 능력을 지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학적 연구가 종족주의, 폭력성, 이기심, 잔인함 등에 초점을 맞춰 왔다면, 저자는 생물학 유전의 또 다른 이면을 밝힌다.

자연선택으로 빚어진 공통된 유전 형질, 즉 함께 살아가는 법과 관련된 보편적 유산을 통해 현재 횡행하고 있는 부족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비전이다.

프랑스의 자살 / 에릭 제무르 지음, 이선우 옮김, 틈새책방

프랑스 우파 지식인이자 언론인으로 대선 후보로 급부상한 에릭 제무르의 베스트셀러. 지난 40년간 프랑스의 사회문화 전반을 아우르며 프랑스가 어떻게 쇠락의 길을 걷게 됐는지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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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그 중심에 68 혁명이 있다고 본다. 제무르는 “68혁명이 만든 작품 3부작인 조롱, 해체, 파괴’는 민족, 노동, 국가, 학교와 같은 모든 전통적 체계의 근간을 무너트렸다”고 지적한다.
책은 1970년 11월9일 드골의 죽음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그날 파리에 내리는 비로 두 페이지를 장식하며, 조종을 울린다.
프랑스의 쇠퇴는 자유와 세계화의 구호 아래 전통을 와해 시킨 좌파와 이에 동조하면서 사리사욕을 챙긴 우파의 무책임에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엘리트들이 옳다고 생각해 추구한 것들이 사실은 프랑스를 좀먹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통렬한 비판이다. 저자의 이상적 모델은 드골의 국가주의다.
제무르의 논리는 우리에겐 혼란스럽다. 프랑스의 좌파 논리는 우리에겐 우파의 주장이 되는 까닭이다. 가령 제무르는 좌파가 국가 공동체의 발전보다 개인주의를, 독자적인 프랑스보다 세계화의 가치를, 민족적 이념 대신 보편적 휴머니즘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비판한다.
제무르의 바판 가운데 젠더 담론도 불편한 지점이다.
그는 여성 인권 신장을 못마땅해 하며 일하는 남성과 집안의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성 역할을 이상적 모델로 본다. 역사를 가로지르는 거침없고 생동적인 기자적 글쓰기를 통해 묘한 설득력을 지닌 진보 보수의 원조인 프랑스 우파 논리를 제대로 만날 수 있다.

거기 눈을 심어라 / M.리오나 고댕 지음, 오숙은 옮김, 반비

시각장애인인 저자가 한 코로 꿰어낸 눈멂의 문화사. 문학과 철학, 대중문화가 어떻게 시각장애인을 재현해왔는가를 살피는 문화사이자 문화·예술 비평이며 시력을 잃어간 자신의 경험을 담은 에세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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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예언자’라는 문화적 코드는 역사가 깊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의 데모도코스, ‘오이디푸스 왕’의 테이레시아스, 밀턴과 핼렌 켈러, ‘눈먼 자들의 도시’‘듄’‘스타워즈’까지 문화콘텐츠에서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여기에는 눈멂이 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게 깔려 있는데, 저자 역시 시각 상실로 몸부림 치던 초기에는 눈멂 예언자 밈이 조금이나마 자긍심을 일깨워줬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저자는 눈멂의 신비화가 결국 비정상적 결핍을 드러내는 방식임에 주목한다. 저자는 다양한 텍스트 속 눈 먼 인물을 호출해 시각 중심 문화와 비시각장애 중심의 상상력이 어떻게 구축돼 왔는가를 밝힌다. 또한 책은 보행용 지팡이부터 망원경, 현미경 등의 시각 장치, 점자와 반향정위의 과학,각종 디지털기기 같은 테크놀로지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룬다. 특히 저자는 현실에서 왜 시각장애에 대해 말하고 재현하는 시각장애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적은지, 점자 문해력을 기르지 못한 시각장애인은 왜 이렇게 많은지,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시각장애 여성이라는 섹슈얼리티는 왜 부정되는지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입을 연다. 저자의 통찰을 따라가다 보면 눈멂을 비정상적 결핍으로 그려온 당연시된 세상이 비로소 이상하게 보인다.

허들 / 신주희 지음, 자음과모음

‘모서리의 탄생’ 이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온 신주희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이번 소설집에는 제21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고통마저 스스로 선택하는 예술가들의 고군분투를 형상화”한 ‘햄의 기원’을 비롯, 일곱 편의 이야기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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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표제작인 ‘허들’은 주인공인 ‘나’가 쓰는 유서의 형식으로 어머니를 수신인으로 한다. 어머니는 나에게 평범한 삶을 요구해왔는데, 그 평범성은 나에게 지나치게 높은 허들로 작용한다. 그 결과, 그저 비난받지 않기 위해 세상의 모든 압력을 견디는 삶으로 평평해진다.‘허들’과 대척점에 선 작품인 ‘로즈쿼츠’는 죽은 엄마의 삶을 반추하며 자신의 삶을 망가트린 어머니에 대한 피해의식과 파해자 되기의 삶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다. 단편 ‘휘발, 공원’은 타인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 유해한 사람으로 매도당하는 데 대한 공포를 그린다. 이번 일곱 편의 단편들에서 주인공들에게 생존과 사람다운 삶, 평범하게 존재하기는 쉽지 않은 일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저 삶을 견디는 존재가 된다. 주인공들은 자주 질문하고 의문을 갖지만 작가는 이에 직접 말해주거나 깊은 내적 진실을 설명하는 대신 이들의 곁에 가만히 있어주기를 택한다. 이를 통해 지지와 가느다란 연대의 끈을 만들어낸다.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박형은 옮김, 동아시아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과학의 탄생’‘16세기 문화혁명’을 잇는 서구 근대과학 탄생사 3부작 중 완결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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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왜 서구 근대에서 탄생했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일련의 책에 이어 이번에는 15세기 중기부터 17세기까지, 중부 유럽을 무대로 한 세기 반에 걸쳐 전개된 천문학과 지리학, 즉 세계 인식의 부활과 전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동아시아에서 세 권으로 분권 출간되는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제2권은 코페르니쿠스가 일으킨 지동설이 등장한 이래 상극적인 우주론들이 나타난 유럽의 16세기, 즉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세계관이 이행해 가는 과도기랄 시기의 과학 발전상과 세계관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코페르니쿠스가 유럽의 세계관에 던진 화두와 한계,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지지한 학자들의 논리,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무관심했던 신학계, 종교개혁에 동반된 교육개혁으로 천문학과 수학이 중시된 독일의 이야기로 이어지면서 지동설이 과학의 발전을 추동한 정신세계에 영향을 미쳤음을 보여준다. 16세기는 14~15세기 르네상스와 17세기 과학혁명에 끼인 골짜기처럼 여겨진 시대이다. 이 시기에 문화혁명이라고 불릴 만한 지식 세계의 지각변동이 일어났다는 점에 저자는 주목한다.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60년대 도쿄대 투쟁을 이끈 전공투 의장 출신으로, 60년대 급격한 경제 발전과 정치사회적 요동 속에서 ‘일본사회가 사실 근대화를 경험하지 않은 것은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과학사 연구사를 집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글=이윤미 헤럴드 경제 선임기자>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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