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빅데이터 속 윤석열 대통령 2년차 이야기 | 소통과 협력] 소통 한계 봉착…협치도 난망
김학수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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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1 12:14
1대 100. 일방적인 스포츠 경기 스코어는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100명과 만날 때의 숫자 비교이다. 지난 12월15일 열린 국정과제점검회의에는 정부 부처 장관뿐만 아니라 국민 100명이 함께 했다. 부처에서 정책 관련 수요자들을 추천받아서 선정한 패널들이었다. 이날 회의는 국민패널들의 분야별 질문에 윤 대통령이나 장관들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주부·자영업자·대학생·사회복지사·마약중독 재활단체 활동가·노조위원장·교수 등 총 14명이 질문을 던졌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윤 대통령이 TV에서 생방송으로 중계한 가운데 국민들과 허심탄회하게 토론하는 자리를 가진 것은 이날이 처음이다.
윤 대통령은 “국민 패널 백여 분하고 이게 생방송이 되면서 국민 여러분께서 다 보고 계시기 때문에 저도 좀 긴장이 됩니다. 아하하”라며 첫 말문을 열었다. 처음 생방송으로 국민과 만남을 가진 때문인 듯 윤 대통령은 상당히 긴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 국민 패널은 “주 52시간에서 8시간 추가 연장 근무를 하는 일몰이 이번 달에 폐지가 됩니다. 일몰에 대한 연장이 너무나 시급한데요, 저는 이 확답을 이 자리에서 꼭 대통령님께 듣고 가고 싶습니다”고 질문하자 윤 대통령은 “일몰제는 야당의 초당적 협력이 필요한 입법 사항이고 추진을 하고 있습니다만은 지금 국회에서 아직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요”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답변이 부족하다 싶으면 소관 부처 장관을 호출하기도 했다. “국토부 장관께서 추가 설명을 좀 해주십쇼” “행안부 장관 나오셨나? 그럼 이 기업 이전 인센티브에 대해서…”, “법무부 장관께서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등으로 장관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이날 평소 논리적이고 정돈된 말솜씨를 갖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제가 언론이나 국회에서 질문 받을 때 별로 긴장 안 했었는데요. 국민들로부터 직접 질문 받으니까 참 많이 떨립니다”라고 웃음을 띄우면서 말하기도 했다. 이날 TV 생중계는 100분으로 예정됐지만 50분 더 이어지면서 회의는 총 2시간 30분에 걸쳐 끝났다.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윤석열 정부의 소통, 약속, 미래를 볼 수 있었다”며 “역대 대통령들이 지키지 못했던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탈권위’ 공약을 지키고 국민들께 청와대를 돌려드린 바로 그 약속 실천의 공간에서 국민대표들과 함께 대통령이 직접 소통한 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양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국민 한분 한분의 질문에 대해 꼼꼼히 경청하고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직접 설명하기도 하는 등 현안 해결의 의지를 강하게 보여줬다”면서 “윤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개혁의 의지도 재천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초당적인 국회의 협력을 당부하며 개혁을 위한 과정이 우리 대한민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이 되기를 바라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정부도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며 “민주당도 분열이 아닌 국민통합과 미래로 가는 담대한 개혁과 약속이행의 골든타임에 함께 나서주길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반면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윤 대통령의 국정과제점검회의는 오늘도 지난 정부 탓으로 시작해 자화자찬으로 끝났다”며 “진정한 소통은 없었고 국민을 들러리로 세운 일방적인 국정홍보 쇼”라고 혹평했다.
박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시종일관 개혁을 외쳤지만 그저 전 정부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퇴행적 정책을 밀어붙이겠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며 “10.29 참사에 대한 반성과 사과도, 국민 안전에 대한 다짐도 없었다. 참사를 막지 못한 책임자들을 대동하고 나와 자화자찬하는 모습에 국민의 복장만 뒤집어졌다”고 했다.
이어 “국민 앞에서 야당 탓을 하는 것도 여전했다.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면서도 대화와 협상은 거부하는 것이 윤석열 정부의 협치 방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이 강조한 개혁과제 추진을 위해서는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으로,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무시한 개혁이 성공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국민과의 직접 소통 위해 도어스테핑 만들었지만 언론과의 불화로 중단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당선 이후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해왔다. 그 일환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옮기며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각종 현안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했다.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이 직접 육성으로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파격적이었다. 권위를 내려놓은 듯한 대통령의 새로운 소통 방식은 신선했다. 대통령의 메시지는 직접 국민에게 닿았고, 정부 부처에는 책임감을 부여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소통하려는 모습을 직접 보여줬다는 것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긍정적인 부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대통령의 돌발 발언이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제가 대통령이 처음이라”, “과거엔 민변 출신이 도배했다” 등의 대통령 발언은 정쟁거리가 되기도 했다. 또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 징계와 풍자만화 ‘윤석열차’ 논란 등 민감한 이슈에는 즉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발언의 위험성을 제기하며 도어스테핑을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도어스테핑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기도 했다. 초창기 도어스테핑은 취재진의 질문으로 시작됐지만, 8월12일부터는 모두발언을 먼저 실시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이를 통해 대통령의 메시지는 더욱 부각됐고, 도어스테핑도 점차 안정적으로 변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취임 후 6개월, 어느덧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하지만 지난 11월 18일 61번째 도어스테핑 과정에서 논란이 생겼고 결국 잠정 중단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윤 대통령은 MBC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에 대해 설명했고, 이에 MBC 기자가 반발하며 자리를 뜨던 윤 대통령에게 질문했다. 윤 대통령은 질문에 대한 답변 없이 집무실로 향했고, 이후 MBC 기자와 이기정 홍보기획비서관 사이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기자와 비서관이 설전을 벌이는 모습은 언론에 고스란히 보도됐고 대통령실은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대통령실은 당시 논란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로 판단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미 도어스테핑을 마치고 들어가는데 등에 대고 고성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면서 같은 얘기를 두 차례 반복했다. 그것이 정당한 취재활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는 도어스테핑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고, 오히려 국민과의 소통을 저해할 수 있다고 봤다.
대통령실은 MBC 기자에 대한 출입기자에 대한 상응하는 조치를 위해 출입기자단에 운영위원회를 소집해 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기자단은 근거 규정이 미비하다고 판단, 아무런 의견을 제시하지 않기로 했다.
논란으로 대통령실 출입기자와의 소통 및 관리 업무를 총괄해온 김영태 대통령실 대외협력비서관이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실과 MBC간 충돌에 대해 책임지겠다는 뜻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이후 도어스테핑이 실시됐던 1층 로비에 나무 합판으로 된 가벽을 설치했다. 이로 인해 기자들이 있는 복도 공간에서는 대통령실 출입구를 볼 수 없게 됐다. 윤 대통령의 출근길 모습을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대통령실은 ‘보안상’의 이유로 인해 설치한 것이지 도어스테핑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윤 대통령의 상징과도 같았던 도어스테핑은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현재로서는 도어스테핑이 언제 재개될 수 있을지 예상하기 힘들다. ‘소통’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던 윤 대통령이기에 도어스테핑을 이대로 중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윤 대통령의 초당적 협력 호소, 야당은 차가운 반응
윤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야당과의 초당적 협력을 밝혔다. 지난 5월16일 취임 후 처음 국회 본회의에 참석해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바로 의회주의라는 신념을 저는 가지고 있다. 의회주의는 국정운영의 중심이 의회”라며 “저는 법률안, 예산안 뿐 아니라 국정의 주요 사안에 관해 의회 지도자와 의원 여러분과 긴밀히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연금‧사회‧교육 등 3대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나라 안팎의 위기와 도전은 우리가 미루어 놓은 개혁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극복하기 어렵다”며 “지속 가능한 복지제도를 구현하고 빈틈없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려면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세계적인 산업구조의 대변혁 과정에서 경쟁력을 제고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하는 노동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학생들에게 기술 진보 수준에 맞는 교육을 공정하게 제공하려면 교육 개혁 역시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연금 개혁, 노동 개혁, 교육 개혁은 지금 추진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이 위협받게 된다”며 “더이상 미룰 수 없다.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7개월여간 야당과의 협력관계는 공전을 거듭하는 모습이었다. 과반석 이상을 차지한 거대 야당의 벽에 부딪쳐 법안 하나 제대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이재명 민주당 대표 사법 처리 문제를 둘러싸고 정국이 경색되면서 여야간 대화는 난망한 상태였다. 지난 10월말 발생한 이태원 할로윈 참사는 더욱 상황을 어렵게 만들었다. 국정 조사위 구성을 둘러싸고 팽팽한 대결을 보였으며 이 때문에 새해 예산안 심의도 논의조차 안되며 해를 넘길뻔 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의 정치 구도를 고려하면, 야당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국정을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윤 대통령 자신도 통합정치의 제도적 틀을 짜기 위해 2년차를 맞는 내년 초당적 협력관계를 만드는 것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