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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9] [권두언] 꿈

이신재 | 2023-02-0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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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이 ‘마틴 루터 킹 데이(Martin Luther King Jr. Day)’였다. 미국에선 매해 1월의 셋째 주 월요일을 공휴일로 지정해 학교를 비롯한 모든 공공기관이 문을 닫고 쉰다. 이 날 미국인들은 서른아홉 살의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비폭력 인권 운동가이자 흑인 해방운동가인 킹 목사의 정신을 기린다.

킹 목사는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의 주도(州都)인 몽고메리에서 주로 활동했다. 몽고메리에는 현대자동차 앨라배마공장이 있어 우리와도 인연이 있는 곳이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연합의 수도로서 노예제 폐지에 반대하는 남부 7개주가 분리 독립을 선언했고, 남부연합 초대 대통령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F. Davis)가 취임선서를 했던 역사 도시다. 1950-60년대에는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성지’였다. 한 주의 주도임에도 불구하고 대형 고층건물이 거의 없어 아담하고 한적한 시골도시의 정취가 짙게 남아 있다.

몽고메리 한복판의 앨라배마 주청사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 대로변 양지바른 언덕 위에 단층의 자그마한 ‘덱스터 애버뉴 킹 메모리얼 침례교회(Dexter Avenue King Memorial Baptist Church)’가 있다. 붉은 벽돌의 외관은 지극히 평범하고, 예배당 내부도 장식물이나 조각상 하나 없어 질박(質朴)한 모습이었다. 보잘 것 없는 이 작은 교회에서 킹 목사가 시무하며 민권운동을 펼쳤다. 필자는 이 교회를 서너 차례 방문해 킹 목사를 추모했는데 그럴 때 마다 늘 가슴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킹 목사는 1963년 8월 28일, 5만 여명의 백인과 20여만 명의 미국 흑인들이 모여 투표권, 노동권, 인종 차별 철폐를 주장한 ‘워싱턴 평화 대행진’에서 연설한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어느 날 모든 계곡이 높이 솟아오르고, 모든 언덕과 산은 낮아지고, 거친 곳은 평평해지고, 굽은 곳은 곧게 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모든 사람이 함께 그 광경을 지켜보는 꿈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이 명연설 이후 미국에서는 1964년에 인종, 민족, 종교, 남녀 등의 차이에 따른 차별을 불법화한 민권법이, 그리고 1965년 투표권법이 통과되어 민주주의가 더 한층 발전하고 인권이 신장되는 위대한 성취가 이루어졌다.

올해 킹 목사의 ‘워싱턴 평화 대행진’ 연설 60주년을 맞았다.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렇지만 킹 목사가 희원(希願)했던 꿈이 아직 이루어지진 않은 것 같다.

흑인에 대한 과도한 공권력 사용을 규탄하는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 Black Lives Matter)’운동이, 잊을만하면 또 다시 재발한다. 마치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다시 살아나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니는 좀비처럼 뿌리가 뽑히지 않는다. 흑백 인종 갈등으로도 모자라, 인종을 가리지 않은 폭력과 파괴행위가 난무했던 1992년 LA폭동도 있다. 애꿎게 우리 교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봤다. 그런가 하면 911테러를 당한 서방이 이슬람 적대세력에 대해 10여 년간 극단적 보복을 가하기도 했다. 거의 1년 동안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CNN이나 NHK 뉴스를 통해서나 그 참상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리들 관심에서 벗어나 있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국가, 민족, 인종, 성별, 세대 간 갈등과 분쟁 소식을 접할 때 마다 진정 킹 목사의 꿈은 애당초 현실세계에선 실현 불가능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이다. 계묘년 한 해만이라도 지구촌 뭇 생명이 화합하고 모두 평안하며 길상여의(吉祥如意)하기를 꿈꾼다.

<글=김도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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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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