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지났다. 봄비가 내린다. 하늘나라 천사가 스위스 알프스로 내려와 에델바이스로 환생했다면 우리나라엔 변산으로 내려온 바람꽃이 있다. 남쪽으로 행선지를 정한다. 변산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아씨를 알현하기 위함이다. 변산아씨를 찾으러 길을 나설 때마다 생각나는 모지리의 오도송(悟道頌)이 있다. “종일 변산아씨를 찾아 다녔건만 그녀를 보지 못했네/ 산으로 들로 스틱이 다 닳도록 헤멨네/ 집에 돌아와 옆지기의 된장찌개 냄새 맡으니/ 변산아씨는 우리 집에서 벌써 무르익었네.”
내변산에는 가벼운 산책길도 있지만 어느 산 못지않게 힘을 써야 할 등산로도 있다. 400~500m급 봉우리들이지만 바닷가 해발에서 시작하는 높이라 만만치 않고, 하나의 봉우리를 올랐다가 완전히 내려서서 다른 봉우리를 오르는 코스는 1,000m급 산행의 난도가 있다. 오늘의 산행은 그런 코스, 남여치에서 월명암, 직소폭포를 거쳐 관음봉에 오른 후 내소사로 내려가고 다시 청련암으로 변산아씨 알현하는 6시간 고행(苦行)한다.
들머리 남여치(藍輿峙)는 예전에 어떤 관료가 '지붕이 없는 가마'를 타고 오른 고개라는 뜻이다. 현재의 이곳은 국립공원의 무인안내소다. 작은 주차장과 화장실, 안내판이 있다.
등산로는 처음부터 계속 오르막이다. 10분쯤 지나 등짝에 땀방울이 흥건 흘러 내려 겉옷을 벗는다. 한번 쉬고 갈 만한 지점에 안전 쉼터. 역시 국립공원이다.
월명암 가까운 숲에 너도밤나무, 서어나무, 졸참나무가 살고 있다. 숲의 천이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자라는 나무들이다. 오래되고 깊은 숲에 들어온 것이다. 조용한 산에 낭랑하게 울리는 독경 소리를 들으며 월명암에 들어선다. 월명무애(月明霧靄)라고 칭송할 만큼 달빛이 밝은가 하면, 자욱한 안개와 아지랑이도 일품이고, 뒷산에서 보는 낙조도 천하제일인 절이다. 그중에 제일은 2년만에 찾아와도 모지리를 알아봐주는 삽살개다.
삽살개와 어렵게 헤어지고 월명암을 뒤로한다. 평탄한 오솔길을 내려서다 몇 군데 바위 끝에서 내변산 전망을 한다. 멀리 늘어선 여러 봉우리의 실루엣 중에 오늘 가야 할 관음봉이 뾰족하고, 그 아래에 산중호수 직소보가 손톱만 하게 보인다. 저렇게 멀단 말인가. 급경사 계단과 돌길을 따라 산 하나를 완전히 내려오면서 10년 간 동고동락한 스틱이 저 세상으로 먼저 떠난다. 물건이지만 순간 가슴이 먹먹하여 발을 내딛기가 어렵다. 가까스로 하산하니 내 슬픔만큼 계곡물 소리가 졸졸졸 운다. 사람 소리가 수런수런 들린다. 자연보호헌장비가 있는 삼거리에서 어르신들의 구두와 아이들의 운동화와 산객의 등산화가 섞인다. 봉래산(금강산)처럼 아름다운 아홉 개의 절경이 있어 봉래구곡(九曲)이라 부르는 계곡길이다.
봉래구곡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은 자연적인 구곡을 노닌 후 인간이 만든 직소보(洑) 호수를 맞닥뜨림하는 것이다. 농업용수로 쓰려고 계곡을 막아서 만든 인공호수지만 아름다운 산세 밑에 조용히 담겨 있는 수면과 거기에 투영된 산 그림자가 천하절경인 명경지수(明鏡止水)다. 모지리의 마음도 비춰보고 싶은 곳이다. 오늘 이 호수엔 희디흰 두꺼운 얼음, 투명한 살얼음, 그리고 얼음이 풀린 봄물이 함께 있다.
호수의 테두리를 따라 끝자락에 다가서니, 울퉁불퉁한 암반에 다소곳이 들어선 선녀탕과 분옥담이라는 물웅덩이가 있고, 그 위에 계곡에서 뚝 떨어지는 직소폭포가 있다. 데크 전망대에서 바라본 폭포는, 하늘하늘 작고 연약한 아씨가 30m 높이에서 '서슴없이' 낙화(落花)하는 모습이다.
다시 길을 걷는다. 직소폭포 위 계곡길은 등산로라기보단 숲속의 바람길이라고 할까, 부드러운 흙에 갈색 낙엽이 덮여 푹신하고, 얼음이 풀려 질퍽한 길에는 야자매트가 깔렸다. 햇빛이 깊게 비추는 저 숲 바닥 어딘가에 몸이 근질근질한 씨앗이 막 싹을 틔우는 야생화가 있을 것이다. 봄볕을 쪼이며 다시 땀이 나는 내 몸도 혼건하다. 비가 오기 전에 여기서 도시락을 펼치고 막걸리 한잔 한다.
이런 바람길을 지나, 재백이 고개를 넘어 관음봉을 향한다. 재백(宰伯)이란 직소폭포에서 기우제를 지낼 때 오가던 원님이 쉬던 곳이라는 뜻이다. 인터넷의 다른 해설은 오르고 넘어야 할 재(고개)가 많다는 뜻도 있다고 했는데, 과연 여기부터 관음봉까지는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구간이다. 급경사 암릉에서 쇠난간 로프를 붙잡고 오르는 길, 단숨에 오르기 벅찬 계단, 올라서면 내리막이고 또 올라가야 하는 바윗길을 지나 드디어 관음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모지리의 얼굴에 내변산을 얕잡아 봤다는 오만이 역력하다.
여기서 관음봉을 오르고 내리는 왕복 1.2㎞의 '쉽지 않은' 암릉길을 다녀와야 한다. 관음봉을 오르기 위해 다시 내리막을 내려서고 봉우리의 허리를 빙 둘러 걸어서 천정에 낙석보호망을 설치한 철제 다리를 올라선다. 이 다리를 오르려면 계단입구의 산벚나무 뿌리를 디딤목으로 밟고 올라서야 한다. 아무리 나무를 밟지않으려 해도 밟지 않고 지나갈 수가 없다. 사람이 통과하기 편하게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이 나무에게 미안함이 들어 혹시 환생하면 변산아씨 모시는 시종으로 태어나길 빈다.
어느 인생만큼 정상도 다 비슷하다. 정상 직전에 가장 어려운 오르막이 있다. 직각의 암벽에 붙여 설치한 높은 계단을 오르고, 다시 급경사 흙길 계단을 올라 관음봉(424m) 정상에 섰다. 변산의 최고봉은 의상봉(508m)이지만 산의 외곽에 치우쳐 있고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할 수 없다. 제2봉인 쌍선봉도 출입금지라, 제3봉인 관음봉이 주봉인 셈이다.
오늘의 관음봉은 미세먼지인지, 해무(海霧)인지, 봄 아지랑이인지 '스모그'가 꽉 들어차 조망이 어렵다. 멋진 일출을 보기 어려운 것처럼, 이제는 봄날의 산행도 삼대의 덕이 필요할 듯하다. 멀리 곰소만 바다와 그 아래 어촌과 들녘 풍경이 아른거리고, 뺑 둘러 산 풍경도 능선의 윤곽선만 어른거린다. 허리 높이의 우람한 정상석에서 인증사진만 찍고 내려선다.
올라설 땐 몰랐는데, 잔설과 잔빙과 진흙으로 미끌미끌한 길을 조심조심 내려서서 관음봉 삼거리로 돌아와 내소사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바위길 틈틈이 내소사 전경을 바라본다. 미니어처를 보듯, 장난감 같은 절 지붕들 사이사이로 사람들 움직임이 고물고물하다. 드디어 내소사 전나무 숲에 들어서면서 하산을 완료한다.
전나무 숲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한다. 여름의 강렬한 침엽수 특유의 향내음 만큼은 아니지만 나무도 봄을 느꼈는지 조금씩 향기를 내고 있다.
내변산 관음봉 아래 기암을 병풍 삼아 살포시 내려앉은 능가산 내소사는 633년 두타스님의 ‘모든 이 다 소생하소서“라는 원력으로 창건됐다. 오늘의 내소사는 그 이름처럼 겨울로부터 소생하는 봄 풍경이 완연하다. 천년생 느티나무 거목의 부러진 줄기에서 돋아난 잔가지에 물이 올라 나무 전체가 벌겋게 부풀고 있다. 관음봉 병풍 아래 대웅전과 석탑도, 꽃살문의 꽃들도, 분재같은 소나무와 산수유도, 천왕문 바깥의 단풍나무 노목들도 모두 봄 햇살에 부풀어 '소생하는' 모습이다.
숲이 전해주는 건강함을 느끼며 천천히 걷는다. 참배객을 처음 맞이하는 천왕문을 지나면 1000년 묵은 느티나무가 손님을 맞는다. 해마다 정월보름이면 마을사람들은 연중무병과 평온무사를 바라며 1000세 할머니 당산나무 앞에 모여 당산제를 지낸다. 이곳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당산제로 선정됐으며,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등록됐다. 1000살 된 할머니는 얼마 전에 당산제에 쓴 새끼줄을 꼬아 만든 금줄을 두르고 있다. 대웅전으로 향한다. 봉래루 아래 계단을 오르면 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를 깎아 서로 결합하여 만든 보물 제291호 내소사 대웅전이 모습을 나타낸다.
대웅전을 조성한 도편수는 호랑이가 화현한 대호선사이며, 대웅전 내부의 단청과 그림을 그린 새는 관세음보살의 화현이었다는 대웅전 건조과정에 설화가 전해 온다. 특히 내소사 대웅전 꽃살문은 단청이 퇴색되어 화려함은 덜하지만 문양의 다양한 변화와 조화, 그리고 뛰어난 솜씨로 조각되어 있다.
꽃살문에는 피기 시작한 꽃 봉우리와 만개한 연꽃이 함께 있다. ‘활짝 핀 연꽃… 안 핀 연꽃…’ 꽃살문 연꽃을 바라보니 알 듯 말 듯한 옆지기 잔소리가 떠오른다. ‘종일 봄을 찾으러 개 쏘다니듯 하더니 봄은 찾은 건가? 흐미~ 집에 가면 된장찌개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볼거리 많은 변산반도에는 봄이 되면 아주 작지만 무엇보다도 대접받는 특별한 생명이 있다. 약한 바람에도 흔들리는 높이 10cm의 아주 작은 꽃, 조용히 차가운 눈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우는 모습이 비밀스럽게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다 해서 ‘변산아씨’라고 불리는 변산바람꽃이다. 마이산, 설악산, 한라산 등 전국적으로 자생하지만 변산에서 최초로 발견되어 변산바람꽃이라 불린다.
“바람꽃 찾으러 왔소잉? 저~짝 공양간에서 꼬랑따라 청련암으로 올라가믄 되라.” 내소사에서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본 보살님이 길을 알려준다. 길을 따라 가니 인터넷에서 본 낯익은 장소가 나온다. ‘어디있지?’ 발 아래를 조심히 살피며 걷는다. ‘아 이 꽃인가’ 나무 뿌리 부분에 아주 작은 흰 꽃 다섯 송이가 있다. 오늘따라 변산바람꽃은 생각보다도 너무 작아 쪼그려 앉는 걸로도 부족했다. 바짝 엎드려야 ‘변산아씨’와 눈을 맞출 수 있었다.
5개의 꽃잎과 노란 꽃샘, 자색의 꽃밥, 작고 여린 변산바람꽃이 방긋 웃으며 맞아준다. 눈과 얼음을 뚫고 나온 돌멩이 틈 사이에서 솟아 나온 야생화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제법 시간이 지난 후 일어나서 살펴보니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꽃들이 여기저기 솟아있다. 반가움에 한 송이 한 송이 눈 인사를 나눈다. 황홀(恍惚)하다. 순간의 천국, 극락이라는 곳에 공간 이동된 듯하다.
"급하기도 하셔라 / 누가 그리 재촉했나요 / 반겨줄 임도 없고 / 차가운 눈, 비, 바람 저리 거세거늘 / 행여 / 그 고운자태 상하시면 어쩌시려고요 / 살가운 봄바람은, 아직 / 저만큼 비켜서서 눈치만 보고 있는데 / 어쩌자고 이리 불쑥 오셨는지요 / 언 땅 녹여오시느라 / 손 시리지 않으셨나요 / 잔설 밟고 오시느라 / 발 시리지 않으셨나요.” 이승철 시 <변산 바람꽃>이다.
외변산 바닷가를 스치며 변산을 떠난다. 벌겋게 물든 수평선을 바라보니, 영화 '변산'에서 "장엄하면서도 이쁘고, 이쁘면서도 슬프고, 슬픈것이 저리 고울수만 있다면 더이상 슬픔이 아니겠다 생각하면서 넋을 잃고 보는디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쟈는 언제부터 엄마무덤 앞에 앉아 혼자 노을을 보아왔을까? 김학수! 넌 개새끼여 ~~~근디 난 니가 좋다. ㅜㅜ 그날부터 나도 노을을 사랑하기 시작혔고 작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때부터여"이라고 했던 선미의 말이 생각난다.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