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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1]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이야기 3] 왜 컨트리클럽이라고 말할까?

김학수 편집국장 | 2023-04-04 15:09
푸른 잔디와 꽃으로 치장된 컨트리클럽. 사진은 스카이72 모습.이미지 확대보기
푸른 잔디와 꽃으로 치장된 컨트리클럽. 사진은 스카이72 모습.
골프장 이름에는 ‘컨트리 클럽(country club)'이라는 말이 붙어 있었다. 대부분의 골프장들이 도시에서 좀 벗어난 곳에 있어서 처음에는 ’시골‘이라는 의미의 ’컨트리‘와 모임을 뜻하는 ’클럽‘의 합성어쯤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골프를 좀 알면서 컨트리 클럽이라는 의미는 알고 있던 것보다는 좀 더 깊은 내막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시골 동호회’ 정도로 알았던 ‘컨트리 클럽’은 산업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 말이었다.

19세기 말 영국과 미국에서 산업화는 누구도 멈출 수 없는 대세였다. 당시 사람들의 삶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인상주의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대표적인 그림 ‘풀밭위의 식사’는 야외 풀밭 위에서 일상적인 한때를 보내는 젊은이들을 그렸다. 마네 등 인상주의 화가들은 도시에서 기차를 타고 야외로 나가 부지런히 전원 풍경을 그림에 담았다. 이는 전원에 살기를 원하는 욕망을 화폭에 그린 것이다. 산업화가 급격하게 이뤄지며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자 일부 돈 있는 사람들은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전원에서 사는 것을 꿈꾸었다.

20세기 최고의 역사학자로 손꼽히는 영국의 에릭 홉스봄은 자신의 유명한 3부작의 하나인 ‘제국주의 시대’에서 영국과 미국의 신흥 중산층들의 단면을 소개했다. 1900년 즈음에 미국 보스턴 지방 유지들은 자신들의 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고 한다. “보스턴은 무거운 세금과 정치적 혼란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너희들은 결혼하면 교외지역을 선택하여 살 집을 정하고 컨트리 클럽에 가입해라. 그리고 클럽, 가정, 아이들이 너희 인생의 중심이 되도록 하여라.” 점차 교외의 집과 정원이 새로운 생활양식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중산층들은 컨트리 클럽이라는 모임의 공간을 만들게 됐다는 것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서 검색을 해보면 컨트리 클럽은 개인 소유의 클럽으로, 종종 회원 할당과 초대 또는 협찬에 의해 일반적으로 다양한 레크리에이션 스포츠와 식사 및 접대를 위한 시설을 제공하는 곳이라 한다. 대표적인 운동으로는 골프, 테니스, 수영 등이 있다. 컨트리 클럽은 도시 외곽이나 교외에 위치하며, 실외 활동을 위한 장소이고 골프를 주로 한다는 설명이다. 컨트리 클럽은 원래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고 1880년대 초에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컨트리클럽은 백인 앵글로-색슨 개신교도(White Anglo-Saxon Protestant)의 두문자를 따서 줄인 말인 주류층 ‘와스프(WASP)'만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는 사설 클럽이었다. 아프리카, 아시아, 히스패닉계 미국인과 유대교, 가톨릭교도에게는 매우 배타적인 자세를 보였다. 초창기 컨트리클럽의 주된 스포츠는 승마였다. 1890년대부터 골프 붐과 함께 골프가 컨트리클럽의 핵심 스포츠로 등장하게 되었다. 자동차 문화의 성장으로 승마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골프는 다른 스포츠 시설 부지를 밀어내고 최대 공간을 차지했다.

우리나라에서 컨트리클럽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을 통해 골프가 들어오면서 골프장을 뜻하는 이름으로 본격적으로 사용됐다. 1990년대 이후 골프장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컨트리클럽과 함께 ‘골프 클럽(golf club)'이라는 말도 함께 쓴다. 지금은 골프가 대중적인 취미 활동이 됐다. 하지만 골프장을 뜻하는 컨트리 클럽은 당초 부자와 명사들의 안식처였으며, 인종차별, 성차별, 종교차별의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던 곳이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클럽은 스포츠 뿐 아니라 문화, 예술 등에서 모임의 의미로 사용한다. 사진은 프로야구 SK와이번스 유소년야구클럽 선수들. 이미지 확대보기
클럽은 스포츠 뿐 아니라 문화, 예술 등에서 모임의 의미로 사용한다. 사진은 프로야구 SK와이번스 유소년야구클럽 선수들.


클럽은 어떻게 생겨난 말일까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후 숱한 고난과 역경을 딛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웅 오디세우스를 주인공으로 한 그리스 고대 신화속의 이야기이다. 오디세우스처럼 한국스포츠의 원류를 더듬어 가보면 스포츠구락부라는 뿌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스포츠구락부는 구한말과 일제시대 개화기에 스포츠를 주도해나갔던 스포츠단체를 말한다. 1920년 7월 조선체육회를 비롯한 각종 체육단체들이 창립됐던 것은 스포츠구락부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체육회는 조선 사회의 운동단체를 후원하고 장려해 한국인의 생명을 원숙 창달케 하는 것을 목표로 당시 체육계의 통일된 사회적 기관으로 결성되었다. 각 경기단체 운영도 개인들의 후원금과 성금으로 운영됐으며 스포츠구락부를 중심으로 전국 각지에서 활발히 대회를 개최했다. 여러 스포츠 구락부를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있는 운동단체들을 육성하는게 조선체육회의 기본적 취지라는 것을 당시 신문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체육회가 창립된 지 3년 후인 1923년 8월29일자 조선일보에 보도된 체육기사에서 클럽스포츠로 행해지던 당시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다.
‘신막정구시합의 상황’이라는 제목의 2단짜리 기사에서 경의선 신막철도구락부코트에서 벌어진 신막군과 남천군의 정구경기를 보도하면서 ‘관중’들을 ‘관광자’로 표현하고 인산인해를 보인 모습이라든가, 박수갈채를 벌이는 장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 등을 생동감있게 담아냈다. 비슷한 시기 전국 여러 지역의 축구단 창단 소식과 각 종목 후원금 명단과 구락부 창단기사 등을 자주 볼 수 있다. YMCA 구락부를 주축으로 각종 종목별 청년 체육활동이 활발했으며, 경평축구대회가 창설됐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손기정이 마라톤을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구락부를 중심으로 꾸준히 체육활동을 했기 때문이었다.

‘구락부(俱樂部)’는 메이지 유신 시절 신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서양의 ‘클럽(club)'이라는 단어를 일본식 음차로 만든 한자어이다. ’俱樂部‘를 한 글자씩 해석해 보면 '갖출 구', '즐거울 락', '떼 부'로 '즐거움을 갖춘 곳'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어 발음으로 한자를 가차해서 클럽과 뜻을 맞춰 한자어로 만든 신조어이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봐도 당연히 없는 한자어이다. 구락부의 영어 원어인 클럽은 스포츠 관련어로 쓰일 때는 구단 또는 팀이라는 의미로 통한다. 클럽은 기본적으로 공통된 취미나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나 모임을 의미한다. 클럽은 원래 트럼프 카드 중에서는 스페이드, 하트, 다이아몬드에 이어 가장 낮은 서열의 문양을 말한다. 프랑스 등지에서는 '클로버'라고 불러 한국에서는 카드에선 클럽을 클로버라고 한다. 클럽의 어원은 곤봉으로, 중국의 놀이 지패로부터 기원했다고 한다. 곤봉은 지패의 네 가지 모양 중 하나인 동전을 묶는 줄로부터 기원했다고 한다. 일부 학설에서는 노예를 때리던 채로부터 유래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영어 클럽이 골프채 의미를 갖는 것도 곤봉과 관련이 깊다.

일찍이 산업화, 도시화에 성공한 영국에서 수많은 종류의 클럽이 생겼다. 한적한 야외에서 골프를 즐기는 장소를 ‘컨트리 클럽(country club)'이라고 부른 것도 산업혁명 직후였다. 프랑스에선 볼테르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이 클럽에 해당하는 ‘살롱’ 등에서 만나며 사상적 교유를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해방이후 구락부는 한때 스포츠 뿐 아니라 여러 사회 모임체 뿐 아니라 댄스클럽 이름으로도 많이 사용됐다. 소설가 최인훈이 1959년 첫 등단작으로 발표한 ‘그레이구락부 전말기’는 자유당 정권 말기 어둡고 답답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자유를 갈망하는 허무주의적 지식인 청년들의 비밀결사모임인 ‘그레이구락부’에 관한 이야기였다. 1950년 6.25 동란이후 미국의 풍요로운 물질문화가 유입되면서 춤을 추는 댄스홀을 ‘구락부’로 부르기도했다.

지금은 구락부 대신 클럽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모두 스포츠 모임이나 팀, 또는 음악을 듣고 춤을 추는 곳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유소년스포츠클럽과 스포츠클럽시스템 등 스포츠 용어로 쓰이는가 하면 ‘홍대 클럽’, ‘이태원 클럽’ 등 젊은이들이 춤을 추고 술을 먹는 장소를 지칭하기도 한다.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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