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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 [박주현의 산행수필] 동강 백운산...동풍과 서풍

김학수 편집국장 | 2023-05-09 16:05
한반도 모양을 닮은 영월 동강이 구비쳐 흐른다. 물줄기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사행천(蛇行川)이라 불린다.  이미지 확대보기
한반도 모양을 닮은 영월 동강이 구비쳐 흐른다. 물줄기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사행천(蛇行川)이라 불린다.
사랑에 빠져보셨는지요? 그래서 그 사람의 노예로 살아본 적 있으신가요?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평소의 소신이나 가치관, 심지어 종교마저 기꺼이 내던져 버린다. 이것만큼 사랑에 빠져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증표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자발적인 노예 상태에 빠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보다 위대한 감정은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의지, 지성, 신념처럼 인간이 자랑스럽게 여기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 것들도 사랑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예가 어떻게 자신의 의지를 주장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자발적인 포기가 가능할까?

사랑이란 기쁨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 볼까, 누군가를 만나 과거보다 더 완전한 인간이 되었다는 기쁨을 느낄 때, 우리는 그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을 떠날 수도 없거니와 그가 떠나는 것도 방치할 수 없다. 그가 떠나는 순간,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백운산 정상에 선 필자이미지 확대보기
백운산 정상에 선 필자


봄바람 살랑살랑하니 동강할미꽃과 노루귀에 빠지지 않고선 '바람둥이'라고 할 수 없죠.

문희마을 백룡동굴 매표소를 들머리로 하여, 완경사로 백운산(白山, 882m) 정상 찍고, 급경사로 칠족령(漆足嶺) 전망대, 문희마을로 원점 회귀하는 5시간 산행했는데 이곳 마을 사람들은 백악산(白岳山)으로 부른다. 악산, 이름값 한다. 종종 발생하는 실족사한 등산객을 간신히 일주일 만에 찾을 정도라 하니 맞는 말이다. 마을 이름 문희는 원래 개 이름이었다 한다.

일반적인 할미꽃은 꽃이 아래로 향하여 피는 것에 비해서 동강할미꽃은 위를 향해 핀다. 엄청난 차이다.

펄 S. 벅의 <동풍 서풍>에서 비유를 한다면, 동강할미꽃은 사랑에 빠지기 전 동풍 상태의 '궤이란'이고, 일반할미꽃은 사랑에 빠진 후 서풍 상태의 '궤이란'이라 할 수 있다.

 등산 중 만난 할미꽃이미지 확대보기
등산 중 만난 할미꽃


일반 할미꽃처럼 동풍의 '궤이란'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양보하고 머리 숙이고 심지어 의지, 지성, 신념도 포기하고 노예가 된다. '궤이란'은 동강할미꽃에서 일반할미꽃으로 변화를 거치는 인물이다.

동강을 따라 여섯 개의 뾰족뾰족한 바위봉(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산이 백운산이다. 악(岳)산 맞다.

동강은 정선군 정선읍 가수리에서 시작해 평창을 거쳐 영월군 영월읍에 이르는 65km의 물줄기로 한 번도 곧게 흘러가는 법이 없다. 장쾌하게 굽이치는 물줄기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해서 사행천(蛇行川)이라 불린다.

휘감아 도는 강을 따라 산이 자리하고 있어 산세도 휘어져 있다.

동강은 겨울에 뼈대만 남았다가 봄에 살이 오른다. 물살이 제법 거센소리가 난다. 봄이라 하지만 아직까지 박하 향의 맑고 차가운 강은 어떤 장식도 없다. 순결한 정신과도 같다. 수직의 직벽을 끼고 휘어져 돌아가는 물은 시리고 푸르다. 봄이 오는 동강에서 만나는 풍경은 이런 것들이다. 여울의 물소리를 내고 흐르는 유장한 물굽이, 사행하는 물이 깎아낸 수직의 푸르고 높은 직벽, 갈대와 억새가 그려내는 물그림자, 깊은 소에서 이따금 날아오르는 물오리 떼, 적막한 강변 마을에 주민들의 괭이로 밭 일구는 소리.....

완경사로 오르니 군데군데 화전민들의 집터인 듯 한 곳에는 돌무덤이 수북이 쌓여있고, 봄이라 붉은 올괴불나무꽃과 노란 생강나무꽃들이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트리니 산은 칙칙한 겨울에서 탈피해 어느덧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정상에 오르니 이제야 동강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칠족령으로 하산 방향을 잡는다.

호텔롯데 스위트 룸보다 몇 배 근사한 곳에서 막걸리와 와인을 곁들여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점심을 한다.

우뚝 솟은 백운산 자락이미지 확대보기
우뚝 솟은 백운산 자락


칠족령까지는 3번 정도의 봉을 넘는다. 주민들이 백악산(白岳山)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듯하다. 동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깎아지른 절벽에 추모비도 세워져 있다. 여기저기 위험 경고판이 세워져 있고, 위험 경계선인 밧줄이 웬만한 곳의 절벽을 가로막고 있다. 조심조심 내려가지만, 다리에 힘이 빠지니 미끄러지기 일쑤다. 실족사할 이유가 충분히 있다. 그래도 힘든 산행의 보상을 할미꽃과 노루귀 그리고 동강의 경관이 마음껏 내준다. 백운산은 그 자체로 깎아지른 절벽을 타고 오르내리는 맛도 있지만 역시 S라인, U라인, O라인 등으로 변화무쌍한 굽이굽이 흐르는 동강을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느 산들과는 다른 아름다운 비경을 연출한다.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봄 동강에서만 볼 수 있는 동강할미꽃과 청노루귀는 모지리의 마음을 흔든다.

노루귀의 전설...

옛날, 함평 이씨 나무꾼이 살고 있었다. 그는 너무 가난했고 나무를 팔아 겨우 연명하였다고 한다. 어느 하루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커다란 노루 한 마리가 포수에게 쫓겨 나무꾼 뒤로 숨었다. 그러자 포수가 헐레벌떡 뛰어와 노루 한 마리가 도망가는 것을 못 봤냐고 물었다. 나무꾼은 시치미를 뚝 떼고 모른다고 했지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노루는 나무꾼의 옷자락을 물고 어디론가 가려고 했다. 나무꾼은 이상하다 싶어 따라갔는데 산 중턱에 이르러 노루가 멈춰 서서 한 자리를 앞발로 치다가는 드러눕는 시늉을 하였다. 그 모습을 본 나무꾼은 "아! 이 자리가 명당이라는 뜻이구나"라고 생각했고 그 자리에 부모의 묘를 썼답니다.

그 후 그의 자손들이 번창했음은 물론이고, 함평 이씨 가문에서 많은 공신이 나왔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 고개를 '노루고개'라고 했고, 그 무덤 주위에 피어나는 꽃을 '노루귀'라고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 고개는 경기도 수원군 봉담면에 위치해 있다고 합니다.

동강의 아름다움을 최고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칠족령 전망대. 이곳에는 그 옛날 산 아랫마을에 살았다는 이 진사와 개에 얽힌 전설도 전해 내려온다. 이 진사가 기르던 개가 어느 날 옻나무 액을 담아둔 통을 엎고 사라졌는데 발자국을 따라 쫓아 올라가 보니 금강산에 버금가는 황홀경이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때문에 옻 칠(漆), 발 족(足) 자를 써서 칠족령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우~와"라는 탄성이 쏟아진다. 산과 강이 태극 모양으로 얼싸둥둥 껴안고 흘러가는 아름다운 광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저 멀리 굵직굵직한 산맥이 릴레이하듯 이어지고 있고 그 아래 서너 번 용틀임하며 흐르는 짙푸른 동강 물줄기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굽이치며 흘러온 물줄기는 가파른 절벽에 막혀 제장마을을 돌아 바새마을을 에워싸고 저 멀리 연포마을로 굽이쳐 돌아나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표어가 ’당신 뜻대로‘인 이유가 있다. 상대방을 붙잡아 두기 위해 우리는 그가 원하는 것을 가급적 해 주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사람을 어떻게 떠날 수 있겠는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해 주는 사람이야말로 기쁨의 대상일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은 헌신적인 것이라고 섣부른 오해는 하지 말자. 상대방의 뜻을 존중하는 것은 상대방을 내 곁에 머물도록 하기 위함이다. 상대방이 내 곁에 있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신 뜻대로’는 일종의 유혹, 내 곁에 있으면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노예로 두고 영원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치명적인 유혹인 셈이다. 어느 누가 이런 매력적인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까.

동강 절벽위에 핀 야생화이미지 확대보기
동강 절벽위에 핀 야생화


펄벅 소설 <동풍 서풍(East West Wind)>의 주인공 궤이란이 동양 여인으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신념과 아울러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전족(纏足)을 버린 이유도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편이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신여성으로 사는 아내였던 것이다. 남편은 서양 의학을 배운 계몽된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서풍을 껴안기 위해 동풍을 버리는 결단이 어떻게 쉬운 일이겠는가. 동풍에 익숙했던 사람이 낯선 서풍을 맞으며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녹록한 일은 아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신을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바꾸어야만 가능한 일이니까. 그래서 소설 속에서 궤이란이 전족을 벗는 사건은 매우 상징적이다. 궤이란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줄곧 자기 발을 감싸고 있는 전족을 벗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물리적 고통으로 괴로우리라는 사실을. 그렇지만 궤이란은 이미 피부가 되어 버린 전족을 기꺼이 벗어던진다. 피부를 억지로 몸에서 베어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말이다. 사랑 때문이다.

신기하게도 내 외적인 아름다움으로는 남편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건만, 내 고통은 그의 마음을 움직였어요. 그는 나를 어린아이 달래듯 위로하려고 했어요. 나는 고통에 못 이겨 그가 누구인지, 그의 직업이 뭔지도 잊어버린 채 종종 그에게 매달렸어요.

남편은 이렇게 말합니다. “궤이란, 우리는 이 고통을 함께 견뎌낼 것이오.” “그토록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차마 보기 힘들지만, 이건 단지 우리 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참는 거예요.

"당신을 위해 신식 여성이 될 거예요.” 남편은 웃음을 터뜨렸어요. 그러나 그 얼굴도 류 부인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처럼 약간 밝아졌어요. 그것이야말로 바로 내 고통에 대한 보상이었어요. 또 이후로는 이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 같았죠.

아! 그러나 궤이란의 사랑에는 어딘지 모르게 서러운 구석이 있다.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그가 원하는 것을 기꺼이 감행하고 있지만, 남편은 단지 아내가 신여성이 되기만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은 상대방의 존재를 마냥 갈망하게 된다. ‘나’와 ‘너’를 제외한 일체의 다른 것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으니까. 그러나 남편은 과연 궤이란을 사랑하고 있기나 한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드는 것은, 그가 얼굴에 쌀가루를 곱게 바르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내에게 “제발 나를 위해 이런 식으로 얼굴에 떡칠하지 마오. 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좋소.”라고 냉소적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남편은 궤이란 자체보다는 그녀의 외양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하고 있으면 관심을 주고 그렇지 않을 땐 무관심하다면, 이것이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겠는가.

 낙옆을 뚫고 나온 새 생명을 피운 야생화이미지 확대보기
낙옆을 뚫고 나온 새 생명을 피운 야생화


그렇게 건성으로 말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던 남편이 갑자기 궤이란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건, 오로지 그녀가 전족을 풀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다. 평생 “달라지고 싶다고 꿈꿔 본 적”도 없는 궤이란이 위대한 사랑의 감정에 깊이 몸을 담그기로 결심한 반면, 남편의 관심은 여전히 궤이란 그녀가 아니라 의학적으로 왜곡된 그녀의 발, 낡은 관습을 상징하는 그녀의 발을 향하고만 있었던 것이다. 지금 남편은 아내를 일종의 계몽 대상으로, 다시 말해 인류애라는 감정에서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지금 남편은 전족으로 상징되는 동풍에 아직도 젖어 있는 아내에게 측은지심을 품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신여성 류 부인에게 지어 보였던 똑같은 미소를 궤이란에게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자신의 뜻대로 궤이란도 미개한 풍속을 버리고 개화의 길을 따랐으니까.

그러나 궤이란과 남편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 그것은 비극이다. 한 사람은 제대로 사랑에 빠져 자신을 상대방이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그저 상대방을 자기한테 걸맞은 아내인지의 여부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사랑에 빠져 노예가 되어버린 '궤이란' .....

백운산에서 동강할미꽃과 노루귀에 사랑에 빠진 '모지리'....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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