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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이야기] 왜 그린이라 말할까?

김학수 편집국장 | 2023-05-0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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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5년 중동의 카타르에 취재차 갔다가 사막 골프를 한 적이 있었다. 푸른 잔디가 하나도 없이 사막의 맨땅 위에 아스팔트에 사용되는 코울타르를 입혀 페어웨이를 만들었다. 골프하는 방법은 특이했다. A4 용지 두 개만 한 조그만 사각형 매트를 들고 다니며 그 위에 볼을 올려놓고 쳤다. 사막 골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그린이었다. 잘 다져진 모래에 기름칠을 해 원형의 그린을 만들었다. 울창한 나무 숲속에 푸른 빛이 넘치는 페어웨이와 그린을 봤던 것과는 너무나 달라 충격적이었다.

수백 년 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한 골프의 초창기 모습도 카타르 사막 골프와 비슷했다. 해안 모래언덕과 황무지라는 뜻의 ‘링크스(Links)’에는 풀과 나무가 자라기 어려웠다. 흙과 모래로 뒤덮인 속에서 사막 골프처럼 골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골프가 스코틀랜드에서 영국 전역으로 확대되면서도 스코틀랜드 링크와 비슷한 골프장이 조성됐다. 흙과 모래로 뒤덮인 거친 잡초와 작은 야생화들만 있는 황야 지역에 그린은 기름칠을 한 흙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골프 백과사전에 따르면 미국 골프도 20세기 초 스코틀랜드와 같이 흙그린 골프장을 갖춘 예가 있었다. ‘미국의 세인트앤드류스’로 불리며 미국 골프의 고향으로 평가받는 파인허스트 골프코스는 1935년까지 기름칠한 네모난 흙그린을 운영했다. 미국의 전통적인 PGA US오픈 대회 등을 개최하기도 한 파인허스트 골프코스는 ‘골프장의 미켈란젤로’로 불렸던 골프장 설계자이자 프로골퍼로 활약했던 도널드 로스(1872~1948)가 처음으로 흙그린을 잔디그린으로 바꾸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세인트앤드류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기도 했던 로스는 미국으로 이주한 후 1900년부터 40년 동안 미국에서 파인허스트 골프코스를 비롯해 400여개 코스를 설계해 1977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그는 기름칠한 흙모래 그린에서 도전적인 잔디 그린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역사적인 인물로 남아 있다.

그린의 기원은 스코틀랜드의 링크스였다. 19세기까지 모래 언덕 링크스코스에 일부 골프장들이 거친 자연적인 잔디 상태 중에서 잘 닦인 푸른 잔디를 그린으로 만들었다. 그린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100여 년 전 기술의 발전으로 잔디 절단 기계가 보급됨에 따라 잔디를 고르게 깎아 조성한 현재와 같은 그린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됐다. 이제 그린은 골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그린은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이다. 일반적인 라운드에서 골퍼들의 최종 목적지이자 승부가 결정되는 곳이다. 파3의 짧은 홀(200야드 안팎), 파4(400야드 안팎), 파5의 긴 홀(600야드 안팎)에서 그린은 공이 최종 안착하는 장소이다. 그린은 공이 떨어지면 표면 위를 잘 굴러갈 수 있도록 잔디가 매끄러운 상태로 관리되어야 한다.

‘골프 신만이 우승자를 점지한다’는 메이저 대회인 마스터스 대회가 매년 정기적으로 열리는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그린은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퍼터로 살짝 공을 건드려도 예측 불허의 경사를 따라 미끄러져 세계적인 골퍼들의 애간장을 태운다. 마스터스 대회가 다른 메이저 대회보다 사랑을 받는 것도 까다로운 그린 때문이기도 하다. 마스터스 대회는 우승자에게 ‘그린 재킷’을 입는 전통을 만들어 그린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린은 영국 왕립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 규칙에 따라 크기와 상태가 주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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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골프장은 대부분 한국 골프장과는 입장료 내는 방법이 다르다. 보통 골프용품을 파는 프로샵에서 입장료를 낸다. 클럽하우스 프론트 데스크에서 내는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미국 골프장을 처음 이용하는 한국인들은 많이 당황한다. 미국 골프장을 몇 번 가면서 느꼈던 것으로 한국골프장과 가장 대표적인 차이라고 생각한다.

골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처음 듣는 골프 용어가 어렵게 느껴진다. 골프가 축구, 야구, 농구만큼 골프가 인기 있는 종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골프 용어는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쉽게 알 수 있다. 골프를 잘 치기 위해 타이거 우즈가 될 필요도 없다. 적당히 시간을 내고 용어에 익숙하면 얼마든지 축구 등 인기종목만큼 흥미진진한 골프에 익숙해질 수 있다. 골프도 축구, 야구 등처럼 용어에 세상사는 사람들의 지혜와 삶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골프장 입장료, 그린피(Green Fee)는 아마추어 골퍼라면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일 것이다. “이 골프장은 그린피가 싸네, 저 골프장은 그린피가 비싸네”라며 그린피 갖고 대화를 많이 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린피는 골프 코스를 이용하기 위해 내는 요금을 말한다. 문자 그대로 그린피는 그린에 오르기 위해 지불하는 수수료이다. 여기서 그린이라는 말은 퍼팅을 하는 그린을 포함해 골프 코스 전체를 의미한다. 즉 골프장 코스 이용료라는 뜻이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전 세계 골프 코스에서는 그린피라는 용어를 써 각각 이용료 가격을 정한다. 일부 골퍼들이 '그린스피(Greens Fee)'라는 복수형으로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그럼 골프장 이용료라는 용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골프는 푸른 잔디 위에서 경기를 하는 운동이다. 골프 경기를 보면 잔디와 나무 등 거의 모든 것이 녹색과 관련한 친환경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사막 지역과 같이 지리적으로 예외적인 곳이 있고, 눈 쌓인 지역에서도 즐길 수도 있지만 대부분 골프는 그린 필드에서 하는 종목이다. 그린피는 골프장과 동의어인 그린에 오르기 위해서 마땅히 내는 이용료라는 의미에서 생겨난 말이다 (본 코너 42회 '그린(Green)'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참조). 한국의 일부 아마추어 골퍼는 그린피라는 말이 퍼팅 그린을 조성하는 데 많은 공사비가 들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미국 골프역사백과사전에 따르면 1913년 미국 골프작가 겸 아마추어 골퍼 버나드 다윈은 ‘버나드 컨트리 라이프(country life)'라는 책에서 “골프클럽들이 좀 더 수입을 올리기 위해 방문자들로부터 그린피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스터스 3회, US오픈 3회, 브리티스 오픈 1회 우승 기록을 보유한 전설적인 미국 골퍼 샘 스니드(1912-2005)는 ’골퍼의 교육‘이라는 저서에서 “밀매업자가 자신의 그린피를 내겠다고 주장했다”라고 소개했다. 이미 1백여전부터 그린피는 골프 용어로 미국에서 널리 사용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그린피는 9홀이나 18홀 골프장을 대상으로 한다. 그린피에 추가되는 요금이 붙일 수도 있다. 코스 사용료 이외에 다른 서비스를 받는 경우이다. 음식과 음료, 카트 수수료, 캐디 서비스 등을 그린피에 포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골프장들은 이러한 부대 요금은 그린피에 포함하지 않고 별도로 청구하는 경우가 많다.

골프장에 예약 전화를 걸어 그린피를 물어보면 대개 18홀 요금을 기준으로 말한다. 일부 골프장은 하루 또는 요일 특정 시간으로 9홀 요금을 지정하기도 한다. 골프 티타임을 예약하려면 전화나 인터넷 등으로 하면 된다. 예약한 뒤 골프치는 당일날, 골프장에 도착하면 골프 가방과 클럽백을 내려놓고 클럽하우스나 프로 샵에서 체크인 및 그린피 결제를 하면 된다.

그린피는 퍼블릭 코스의 경우 비교적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할 때보다 비용이 싸다. 미국의 경우 퍼블릭 코스는 싼 곳은 10달러 파크 골프장부터 비싸게는 500달러 페블비치 코스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이나 한국의 안양컨트리클럽 등 회원제 골프장은 회원권을 갖고 있어야 하며 대부분 회원들에게도 소정의 그린피를 받거나 그린피를 받지 않고 세금 정도만 부과하는 곳도 있다. 비회원이 회원제 골프장을 이용할 경우는 회원보다 심하면 4~5배 이상의 그린피를 받는 경우가 많다.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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