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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2] [특별 인문학 기행] 참 신앙 선택한 김대건 신부..."나를 향해 쏴라"던 휴머니스트 체게바라 죽음 연상돼

천주교 첫 김대건 신부의 미리내 성지, 청록파 박두진 시인 문학관, 남사당패 공연 등 안성 주말 나들이

신기섭 | 2023-05-09 16:06
천주교 원로 신자로부터 서강대 ROTC 총동문회 참가자들이 김대건 신부의 순교 이야기를 듣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천주교 원로 신자로부터 서강대 ROTC 총동문회 참가자들이 김대건 신부의 순교 이야기를 듣고 있다.
미리내 성지 돌 표지판.이미지 확대보기
미리내 성지 돌 표지판.


서강대 ROTC 총동문회(회장 천철기. 27기)는 지난 4월22일 토요일, 동문 및 가족 107명이 참석한 가운데 '2023 봄, 총 동문 안성 역사문화유적지 탐방' 행사를 가졌다. 경기고, 서강대 영문과 출신으로 ROTC 12기인 신기섭 시인이 인문학을 바탕으로 쓴 탐방 후기를 소개한다. 신 시인은 현대건설 해외사업 부분에서 오랫동안 일하다가 문단에 등단했다. [편집자 주]

러시아 주재 외교관과 캠프리지대교수를 역임한 영국 역사학자 E.H.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 정의하였습니다. 26기 차휘석 회장으로부터 배턴을 이어받은 27기 천철기 회장 집행부가 혼연일체 되어 안성이 고향인 17기 홍석범(신한은행 지점장 역임) 안내로 3월 사전답사 거쳐 정성껏 밥상 차린 '안성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은 70여 명 서강대 ROTC 선후배 동문과 가족 포함 107명 서강 가족이 붉고 흰 철쭉 만발한 싱그러운 신록의 푸르름 속에 안성 4.1. 독립 만세 운동, 한국 최초 신부로 성자로 추앙된 김대건님을 모신 미리내성지, 자연과 드높은 신앙의 경지를 노래한 청록파 박두진시인 문학관, 안성 풍물놀이패 공연, 보물찾기, 행운권 추첨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가 의미 있고 즐거운 하루를 만끽했습니다.

저 역시 서강ROTC1기(12기) 김문수 정쌍용 동기와 함께 13기 홍순호 조장 인솔 아래 후배님들과 더불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서강대 ROTC 총동문회원들이 안성 3.1운동 기념관에서 문화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
서강대 ROTC 총동문회원들이 안성 3.1운동 기념관에서 문화해설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3·1독립운동이 안성에서는 4.1 항일 독립 남한 유일 무장투쟁으로 2,000여 명 군민들이 주재소(파출소) 우체국, 일본 상가를 파괴해 2일간 일본인 없는 독립을 누렸다는 새로운 역사적 사실에 눈을 뜨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옥고 겪고 순국하신 얼을 기리는 숙연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어 천주교 신자들이 지상 천국같이 가꾼 미리내성지 순례객이 되어 김대건 신부와 안동김씨 세도정치 아래 탄압받던 비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102일간 옥사에 갇혀 목숨을 건질 수 있는 회유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택해 새남터에서 12명 망나니칼에 하늘나라로 가신 순교성인 김대건 신부님 넋은 안성 골짜기 은하수같이 소망의 등불을 켜 든 미리내성지 주민들과 함께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새남터 형장에서 최대한 고통을 주려 12명 망나니가 조금씩 조금씩 김대건 신부님 목을 잘라 8번째 칼날에 목이 떨어졌다는 비화를 천주교 원로님으로부터 들으니 천주교 집안으로 온 가족이 수난을 당한 다산 정약용의 형님 정약종님 순교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을 우러르며 죽음을 맞이하겠다며 하늘 향해 누운 채 두 눈을 뜨고 망나니칼을 받았는데 망나니가 두려워하며 한 번에 목을 자르지 못하고 두 번째 목이 잘려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종교적 신념 앞에 당당했던 인물로 체 게바라도 떠오릅니다.

볼리비아 산골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다 부상 당한 채 포로로 잡힌 체 게바라.

사형집행 명을 받은 하사관이 총구를 향해 치켜뜬 그의 부릅뜬 눈이 크고 위대하게 보여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자 '쏴라! 나를 향해 쏘란 말이야!' 체 게바라는 주저 없이 외치며 채근했는데 하사관은 총구를 내리고 술에 취하고 나서야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다고 술회한 기록이 있습니다. 쓰러진 체 게바라가 순교한 예수님 닮았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저는 체 게바라가 공산주의자라기보다 휴머니스트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예수회가 세운 서강대학에 입학해 신기했던 것은 연세대 같은 의무적 채플 수업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적 신념을 교육사업으로 실천하려 했던 예수회는 노고산 서강언덕 위에 터를 잡고 서구식 자유롭고 진취적인 학풍을 학생들에게 진작시켰으나 정작 종교적 신념을 주입하려 하지 않고 자유롭게 사유하도록 학생들 재량에 맡겼으며 저는 이러한 자유로운 서강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청록파 박두진 문학기념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강대 ROTC 총동문회 참가자 모습.이미지 확대보기
청록파 박두진 문학기념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서강대 ROTC 총동문회 참가자 모습.


저는 목월선생 창간 심상지로 83년 등단했는데 목월, 박두진 시인이 심사위원이었던 1968년 연세대 전국백일장에서 장원(문화공보부장관상)을 해 두 분 축하를 받은 인연이 있어 감회가 새로왔습니다. 안성이 고향인 조병화 시인과는 혜화동 화실 겸 집필실에서 뵌 적 있고 안성 별장 편운재를 두 번 찾았을 정도로 '큰 시인이 될 것이다!'는 격려까지 받았는데 그러지 못해 마음빚을 진 기분이 남아 있습니다.

남사당 풍물놀이패 공연은 흥겨운 놀이 한마당 잔치로 신재효를 낳은 판소리 고향 고창에도 없는 대규모 원형극장을 보유하고 있어 저으기 놀랐습니다.

안성 포도, 안성맞춤 유기, 박지원 '허생전'에서 매점매석으로 돈을 벌었다는 장터로 익히 알려졌으나 남사당 놀이패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경복궁 복원 창건 때 조선을 대표하는 풍놀이패로 대원군으로부터 정삼품 당상관 벼슬을 받았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안성 남사당패 '바우덕이' 공연.이미지 확대보기
안성 남사당패 '바우덕이' 공연.


오금 저리게 하는 줄타기, 기계 체조하듯 어린 아기를 높이 올려 덤블링하는 아슬아슬한 묘기, 우주를 상징하는 크고 작은 원반 돌리기 재주 등 태평소, 북, 꽹과리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지며 팔도 관객들이 얼쑤~! 어깨춤 추렴으로 절로 흥 돋우는 안성 남사당 풍물놀이 공연은 안성 역사 문화탐방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여운을 안고 공연장 주변 보물찾기 놀이는 '심봤다!' 외치는 즐거운 함성이 예저기서 터져 나와 부러움이 느껴지며 축하해 주는 넉넉한 웃음이 와갔습니다.

12기 김문수 동기의 통 큰 기부, 차휘석 전 회장 부인의 밤샘 정성 담긴 커피 내림, 이상돈 동문 텀블러 선물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자발적 찬조로 아이들 데려온 서강 가족들에게까지 선물을 넉넉히 안겨주며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제가 마지막에 호출당할 줄은 정말 예기치 못했습니다.

마음 비우며 관망하던 제게 천철기신임회장이 내놓은 로얄 살루트 행운이 올 줄이야~!

누군가 MVP 당첨이라는데, 그 보답(벌칙?)으로 이렇게 어줍잖은 안성역사문화를 기록으로 남기니 기꺼운 마음으로 읽어 주신다면 백골난망이겠소이다.

[글=신기섭 시인. 서강대 ROTC 12기]

신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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