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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13] [김학수의 사람 ‘人’] 태권도 소년에서 대학총장까지...한국체대 문원재 총장

김학수 편집국장 | 2023-05-31 13:16
인터뷰 하는 문원재 총장[한국체대 제공]이미지 확대보기
인터뷰 하는 문원재 총장[한국체대 제공]
한국체대 졸업반이던 1984년. 진로 문제를 놓고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태권도 선수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선수 생활을 접고 지도자의 길을 갈 것인가. 당시 군 스포츠팀 상무에서 태권도 선수를 처음으로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국내 최고 태권도 선수들이 입대하는 상무 태권도팀에 들어간다는 것은 선수 생활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무에 입대하지 않고 일반 군으로 간다면 사실상 최고 선수로의 길을 접는다는 의미였다. “상무에 가서 후보 선수 생활을 하느니, 차라리 장교로 입대해 리더십을 배우고 장차 지도자 코스를 밟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사장교(7기) 입대를 결심했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났다.

마침내 그의 꿈이 현실이 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을 맡아 황경선, 차동민 등의 금메달을 조련해 최고 지도자 반열에 올랐다. 모교인 한국체대에서 학생부터 시작해서 조교, 강사, 교수를 거쳐 총장까지 됐다. 지난 4월 4년 임기를 시작한 국립 한국체대 제8대 문원재(60) 총장이다. 그는 태권도 출신으로는 한국체대에서 이승국, 안용규 총장에 이어 3번째 총장에 올랐다. 그만큼 한체대에서 국기 태권도의 역할과 비중이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체대는 역대 동·하계올림픽에서만 메달 126개를 따냈다. 단일 대학이 이러한 성적을 낸 것은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이례적인 일이다. 하계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많은 금메달을 따낸 종목은 태권도이다. 동계 올림픽 종목에서 쇼트트랙이 태권도와 함께 가장 많은 금메달을 획득했다.

그는 비록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 생활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도자로 뛰어난 지도력을 발휘해 금메달 2개를 만들어 내며 한국 태권도와 함께 한국체대를 태권도 최고 명문대학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 기여했다. 지난해 총장 선거에서 '혁신적인 대학 경영을 통해 스포츠 인재를 양성하겠다'고 약속했던 선거 캠페인이 동료 교수들과 학교 관계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졌던 이유였다.

첫 총장 인사에서 혁신 청사진이 잘 반영됐다.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를 제대한 한국 양궁의 ‘스포츠 영웅’ 김진호 교수를 대학원장으로 임명했다. 경기 지도자를 학술 전문성을 가장 우선으로 하는 대학원장에 임명한 것은 파격이었다. 인재 중심으로 대학을 운영하겠다는 신호였다. 문 총장은 “교육은 인재를 가꾸고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친소 관계를 떠나 필요한 사람을 적절한 자리에 앉혀 바람직한 교육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김진호 교수님 같이 스포츠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 분들을 통해 우리가 정말 필요한 인력을 모집하고 교육하는 데 도움이 많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취임식, 취임 인사 등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문 총장을 지난 18일 한국체대 총장실에서 만났다.

문원재 한국체대 총장이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체대 제공]이미지 확대보기
문원재 한국체대 총장이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한국체대 제공]


한국체대를
‘학생 중심 글로벌 대학’으로

지난 2021년 2020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은 금 6, 은 4, 동 10개로 종합 16위를 기록했다. 금메달 7개 이상을 획득해 5개 대회 연속 종합 10위 이내에 진입하겠다는 목표 달성이 무산됐다.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금메달 12개를 수확했던 태권도가 처음으로 ‘노골드’를 기록해 충격을 안겨줬다. 프로선수들이 참가한 야구와 골프, ‘효자 종목’ 유도와 레슬링, 사격 등의 부진이 뼈아팠다. 한국 전문체육의 위기를 진단하는 비판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앞으로 극심한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감소가 예상되는 만큼 한국 체육은 현재보다 더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문 총장도 한국체육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걱정한다. 그래서 한국 전문체육의 본산지인 한국체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인정한다. 문 총장이 한국 전문체육의 부활을 계획하며 내세운 프로젝트가 ‘학생 중심 글로벌 대학’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다.

문 총장은 “우리 대학이 올림픽에서만 메달 126개를 따냈다. 이런 전통을 앞으로도 계속 살려 나가야 우리나라 전문체육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며 “최근 경기지도학과 신설로 여기에 포함된 19개 종목에 대해서 앞으로 더 육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체대에 전문 체육선수로 입학하려면 국가대표나 국가대표급 기량을 갖춰야 한다. 육상, 양궁, 빙상, 체조, 태권도 등에서 최고의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 골프는 임성재, 박현경, 김한별 등 미 PGA와 한국 PGA, KLPGA에서 톱스타로 활약하는 선수들이 한국체대 소속이다. 앞으로 각 종목에서 최고 선수들이 갖고 있는 경험과 훈련 방법 등을 유망주들에게 전수해 전반적인 한국 전문체육 경쟁력을 더욱 키워나가겠다는 것이 문 총장의 계획이다.

문 총장은 또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교과 과정을 늘리고, 학생들에게 전문 지도자 양성을 위한 자격증 등을 얻게 해서 졸업 후에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많이 만들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처럼 최고 선수의 길을 걷지 못한 학생들이 생활체육 등에서 지도자로 활동할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하는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문 총장은 "우리 학교는 학생들이 엘리트 스포츠를 지향한다. 하지만 국민 건강을 지키는 생활 체육에 대해서도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실제로 우리 학교 인근 청소년이나 노인 분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여러 지표를 측정해 드리거나 재활 및 훈련 방법을 알려드리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근대스포츠를 태동시킨 영국에서 2년간 유학 경험을 가진 문 총장은 세계 최고 스포츠 대학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영국 러프버러 대학과 같이 한국체대를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문원재 총장이 한국체대 본관을 뒤로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체대 제공]이미지 확대보기
문원재 총장이 한국체대 본관을 뒤로 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국체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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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는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마치는 '예시 예종'“...학교 운영도 태권도 정신으로

태권도는 무도 스포츠이면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배려를 가장 우선시하는 종목이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 선수들은 심판이 ‘차렷, 경례’라는 말을 하면 정중하게 머리를 숙여 서로 인사를 한다. 태권도 대회에서 하는 공식적인 인사법이다. 문 총장은 태권도인답게 '서로 존경하는 예의'를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꼽았다. 그는 "태권도는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마치는 '예시 예종(禮始禮終)‘을 강조한다"며 "우리 학교도 소통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는 흐름에서 구성원 간의 존경과 신뢰가 있어야 소통도 더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소통할 때 더 행복한 학교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 총장이 태권도를 하게 된 것도 태권도의 ‘예’ 정신을 배우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서울 성북구에서 초등학교 4학년 때 무덕관 소속의 정의체육관에서 수련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것이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차렷 자세를 취하고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얹고 경건한 마음으로 벽면의 태극기를 향해 예를 갖췄던 것이다. 흥미로 시작한 태권도는 6학년 때부터 본격적인 선수의 길로 이어졌다.

문 총장은 “세계에서 태권도만큼 예의를 강조하는 무도 스포츠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태권도가 세계스포츠가 된 것은 도덕과 예를 중시하는 특성을 잘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황경선과 문원재 당시 감독(왼쪽) [연합뉴스 자료사진]이미지 확대보기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황경선과 문원재 당시 감독(왼쪽) [연합뉴스 자료사진]


준비하면 기회는 온다

문 총장은 한국체대에서 학생부터 시작해서 조교, 강사, 교수를 거쳐 총장까지 올랐다. 기본이 잘 갖춰진 경력이다. 한국체대를 1985년 졸업한 뒤 학사 장교로 임관해 “군대에서 힘든 경험을 통해 리더십을 배워보겠다”며 가장 훈련이 세기로 소문난 육군 특전사 13여단에서 3년6개월 근무했다. 천리행군 2번을 경험했으며 태권도 선수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져 여단 태권도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모교인 한국체대에서 조교 생활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공부를 했다. 당시 모교 조교로 근무하면 모교 대학원에 진학하는 기회를 주지 않아 건국대와 단국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1996년 한국체대 교수로 임용됐다. 교수 이후 훈련처장, 대학평의회 의장 등을 역임했다.

문 총장은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야 하는 이유이다. 나 자신도 일찍이 대학 총장까지 생각해 보지 못했다”며 “우리 젊은 학생들도 꿈과 희망을 갖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표를 바로 세우고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학수 월간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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