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로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그 곳의 ‘노포(老舗)’를 찾는다. 노포는 대를 이어 내려온 전통적인 점포나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전통이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천 년 이상이 된다. 일본어로 ‘시니세(老舗.仕似せ)’, 중국에선 ‘라오디엔(老店)’이라 부른다. 우리나라의 ‘노포’는 1990년대 일본에서 가져왔다. 우리나라는 전쟁 등으로 가게를 오래 한 사례가 드물어 걸맞은 단어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 마다 좋아하는 노포들이 다르고, 이유도 다 다를 것이다. 필자도 가장 좋아하는 노포는 서울의 ‘우래옥(又來屋)’이다.
우래옥은 평양냉면집으로, 1946년 개업해 올해 77돌 된 노포다. 1.4후퇴 때 월남한 이북 출신의 아버지 손에 이끌려 6살 어린 나이에 처음 갔던 기억이 난다. 55년 전이다. 원래는 현재의 잘 지은 2층 건물 앞 주차장 자리 단층집에서 영업했다.
갈 때 마다 앉은뱅이 좌식 식탁에 손님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식탁 사이사이 마다 손님들이 선 채 식탁을 내려다보며, 자기보다 일찍 와 냉면그릇을 먼저 받은 손님들이 다 먹기를 기다렸다.
소심했던 필자는 기다리는 분들에게 빨리 자리를 비워주려고 늘 허겁지겁 먹었다. 아버지는 체한다며 제발 좀 천천히 먹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단골이셨던 아버지 따라 우래옥에 갈 때마다 김지억 지배인이 깍듯하게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며 어린 필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후 성인이 된 필자가 우래옥에 갈 때 마다 거꾸로 그 분께 건강하시라고 늘 인사를 드렸다.
김 지배인은 필자가 태어난 해인 1962년에 입사해 58년을 일한 후 2020년에 88세 나이로 퇴직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우래옥을 가도 그 분을 뵐 수 없어 좀 허전하다. 우래옥에 들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그리울 땐 우래옥을 찾는다.
사람의 입맛이란 나이를 먹어 가면 조금씩 변하므로 오랜 손맛을 간직한 노포라도 예전 맛이 잘 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노포는 혀로 느끼는 맛만 보러가는 곳은 아니다. ‘노포’라는 단어 속에는 어린 시절부터 켜켜이 쌓인 옛 추억이 녹아 있다. 그 곳엔 함께 했던 사람들과 행복했던 순간들이 간직되어 있다. 그것이 그리워 또 다시 노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도 노포처럼 나이 들어가면 좋겠다. 은근히, 변하지 않고, 늘 그대로, 푸근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좋은 추억을 쌓아나가자. 오래 묵은 장맛이 좋듯, 그런 장맛 나는 사람이 되어보자.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